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차가운 바람, 붉은 맹세

축축한 공기 속에서 비릿한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지아는 무릎으로 기어가며 손바닥으로 마른 땅을 짚었다. 돌멩이 하나가 손끝에 까슬하게 걸렸다. 그 돌멩이를 치우자, 손톱만 한 크기의 이끼 뭉치가 바싹 말라붙은 채 드러났다. 보름 넘게 이어지는 건조한 날씨는 모든 것을 말려 죽이고 있었다.

“언니, 목말라요.”

뒤따라오던 루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지아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미 어제 나눠 마신 물 한 모금으로 오늘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루아는 겨우 여섯 살이다. 작은 아이의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이 지아의 심장을 찢어놓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저기, 저 폐건물 너머에… 분명 있을 거야.”

지아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분명 있을 거야’라는 말은 이제 주문처럼 되어버렸다. 이 넓고 메마른 땅에서, 살아있는 것은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때 도시였을 곳은 이제 뼈대만 남은 건물 잔해들로 가득했다. 시커멓게 그을린 벽들은 하늘을 향해 앙상한 손가락을 치켜세운 유령 같았다. 지아는 잔해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좁은 틈새를 통과했다. 루아는 지아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아이의 얼굴에는 먼지가 덕지덕지 앉아있었고, 뺨은 햇볕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오래전 누군가가 기록해둔 ‘숲’이라는 곳이었다. 지도에 표시된 작은 초록색 점은 이제 거대한 폐허 속에서 마지막 희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아직 붉은 열매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독성이 없고, 갈증을 잠시나마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열매.

삐걱.

낡은 철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지아는 본능적으로 루아를 자기 등 뒤로 숨겼다. 주변을 살피는 그녀의 눈동자는 날카롭게 빛났다. 이곳은 언제나 조심해야 할 곳이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괜찮아, 루아. 바람 소리야.”

낮은 목소리로 루아를 안심시켰지만, 지아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렸다. 오래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바닥에는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유리 파편들이 널려있었다. 천장을 뚫고 들어온 햇빛이 먼지 섞인 공기를 가로질러 춤추고 있었다.

“언니, 저게 뭐예요?”

루아가 손가락으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지아의 시선이 따라가자,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뒤편으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작고 붉은 점.

지아는 루아의 손을 잡고 몸을 낮췄다. 서서히 기둥 뒤로 움직이며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기척을 죽이고 숨소리마저 삼킨 채,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낡은 방수포 조각이었다. 바람에 살랑이며 마치 작은 생명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은 방수포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덩굴 식물을 발견했다.

“루아, 봐.”

지아는 속삭이듯 말했다. 덩굴은 폐허의 틈새를 비집고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덩굴 사이사이에, 붉은색의 작은 열매들이 마치 보석처럼 매달려 있었다.

“열매다!”

루아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치려 하자, 지아는 황급히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쉿! 조용히. 아직은 몰라.”

지아는 주위를 다시 한번 경계했다. 열매가 있는 곳에는 항상 다른 생명체가 있었다. 경쟁자였다.
주위를 꼼꼼히 살폈지만, 특이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 소리만이 낡은 건물을 맴돌 뿐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아는 루아를 자신의 등 뒤에 두고 열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찢어진 방수포를 걷어내자, 붉은 열매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에 딱 들어올 만한 크기. 그녀의 경험상, 이 열매는 독이 없었다. 목마름과 허기를 동시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귀한 선물이었다.

하나, 둘… 지아는 조심스럽게 열매를 따서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마른 손가락이 열매에 닿을 때마다 기분 좋은 촉감이 느껴졌다. 루아는 옆에서 작은 두 눈을 반짝이며 지아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니, 저거… 먹고 싶어요.”

루아의 갈라진 목소리가 지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조금만 더. 안전한 곳에 가서 먹자.”

지아는 대답하며 마지막 열매를 따냈다. 이제 주머니는 묵직했다. 이 정도면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쩌어어억-!

머리 위에서 건물이 찢어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났다. 지아는 반사적으로 루아를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먼지 구름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천장의 한 부분이 갈라지며 콘크리트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망쳐!”

지아는 루아를 안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무너지는 건물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바닥에 널려있던 파편들이 발에 채이고, 먼지가 눈을 매웠다. 하지만 지아는 멈출 수 없었다. 루아의 작은 몸이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한, 멈출 수는 없었다.

뒤에서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동이 온몸을 때렸다. 루아는 겁에 질려 지아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지아는 겨우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깥의 밝은 햇살이 눈을 찔렀지만, 그녀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건물 잔해는 먼지를 잔뜩 품은 채 솟아올랐고, 그 너머로 희미한 땅거미가 드리우고 있었다.

루아가 흐느꼈다.

“무서워, 언니…”

지아는 루아의 등을 쓸어내리며 그녀를 품에 더욱 단단히 안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붉은 열매 하나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내고, 루아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이거 먹자.”

루아는 작은 손으로 열매를 받아들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옅은 단맛과 함께 시원한 과즙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메말랐던 입안에 생기가 돌았다. 루아는 금세 나머지 열매를 먹어치우고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지아는 그런 루아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 자신도 목이 탔지만, 루아가 먼저였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생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너진 건물에서 느꼈던 공포가 희석되는 기분이었다.

하늘은 붉은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황량한 폐허 위로 드리워진 붉은빛은 마치 끝없이 이어질 고난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색 같기도 했다.

지아는 루아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안전한 은신처로.
주머니 속 열매의 묵직함이 불안한 미래 속에서 작은 위안이 되었다.
고개를 돌려 무너진 건물을 바라봤다. 붉은 노을빛 아래, 폐허는 여전히 거대하고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끝없이 무너지고 또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과 루아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언니, 우리 내일은 뭐 먹어요?”

루아의 질문에 지아는 고개를 들었다. 노을 진 하늘 너머, 보이지 않는 저편 어딘가를 응시했다.

“글쎄… 내일은, 아마 더 좋은 걸 찾을 수 있을 거야. 맹세할게.”

지아의 눈빛에는 지쳐 보이는 기색과 동시에, 꺼지지 않는 붉은 맹세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