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독립적인 단편 소설

하늘이 울었다. 아니, 정확히는 하늘을 뒤덮은 회색 구름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삼한의 심장, 운명비무대회(運命比武大會)가 열린 황궁의 거대한 비무장 위로 그 먹구름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단지 날씨 탓이 아니었다. 북방 황무지에서부터 기어오기 시작한 ‘검은 안개’가 서서히 삼한 전역을 집어삼키고 있었고, 그 안개에 잠식된 땅은 생명력을 잃고,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다. 황제는 무력했고, 조정은 혼돈에 빠졌다.

결국, 삼한의 마지막 희망은 오직 무림에 달려 있었다. 천하제일의 무인을 가려, 검은 안개를 봉인할 힘을 지닌 ‘현천지보(玄天至寶)’를 맡기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비무대회의 목적이었다.

김도윤은 비무장 가장자리, 그늘진 처마 아래 기대어 서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그의 검은 도포 자락을 흔들었다. ‘청운검(靑雲劍)’ 김도윤. 과거 한때 푸른 하늘을 가르는 검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지금은 그저 늙고 지친 그림자 같았다. 허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허리춤의 낡은 검집 속에서 푸른 검기가 미약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다음은 김도윤 대 박무영!”

낭랑한 호명에 김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제법 격렬했던 이전 경기가 막 끝났지만, 비무장은 이전보다 훨씬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의 상대, 박무영은 이미 비무장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칠성권(七星拳)’ 박무영. 북방 무림의 거목, 묵직하고 파괴적인 권법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의 육체는 바위처럼 단단했고, 눈빛은 들짐승처럼 거칠었다.

“하,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김도윤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박무영은 검은 안개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북부 출신이었다. 그만큼 검은 안개에 대한 증오와 봉인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다. 김도윤은 그런 그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검은 안개가 처음 삼한에 드리워졌을 때, 그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었다. 그 상실감은 그를 무림에서 떠나게 했지만, 동시에 그를 다시 이 비무장으로 이끌었다. 현천지보를 얻어 검은 안개를 봉인하는 것. 그것이 그의 유일한 속죄였다.

김도윤이 천천히 비무장으로 걸어 나갔다. 낡은 도포 자락이 그가 움직일 때마다 휘청거렸다. 박무영은 그를 경멸하듯 내려다봤다.
“청운검이라 들었다. 허나 보기엔 그저 병든 노인일 뿐이군. 그렇게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어찌 이 무영의 주먹을 감당하려 하는가?”

박무영의 도발에 김도윤은 그저 피식 웃었다.
“노인네도 늙은 호랑이라지 않던가. 껍데기만 보고 속을 알지 못하는 자는, 언젠가 그 껍데기에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무영의 주먹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칠성파천권(七星破天拳)!’ 그의 권법은 거칠고 직접적이었다. 일곱 개의 별이 밤하늘을 가르듯, 주먹이 공기를 찢고 김도윤의 안면을 향했다. 그 위력은 옆에 서 있던 관중들마저 숨을 들이켜게 할 정도였다.

김도윤은 허리를 숙여 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박무영의 주먹은 그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고, 그 충격파에 김도윤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박무영은 놓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뇌성추(雷星鎚)!’. 그의 팔뚝이 거대한 망치처럼 김도윤의 옆구리를 향해 내려찍혔다.

그러나 김도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마치 바람처럼, 물처럼 유려하게 박무영의 맹공을 피했다. ‘청운유수보(靑雲流水步)’. 그의 발걸음은 마치 구름이 흐르듯 가볍고,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웠다. 박무영의 공격이 격렬할수록, 김도윤의 움직임은 더욱 유연하고 예측 불가능해졌다.

“쳇, 쥐새끼처럼 빠르기만 하군!” 박무영은 짜증스럽게 외쳤다. 그의 공격은 모두 허공을 갈랐다.
“움직임은 빠를지 몰라도, 결국 너의 검은 뽑히지도 않았다. 설마 맨몸으로 이 무영을 상대하겠다는 것인가?”

김도윤은 비로소 허리춤의 검집에 손을 올렸다.
“급할 것 있겠나. 곰은 발톱을 숨겨야 하는 법. 너무 일찍 꺼내면 재미가 없지.”
그의 손가락이 낡은 검집의 끈을 풀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낡은 검 한 자루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청운(靑雲)’. 그의 이름과 같은 검이었다. 검신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맑은 푸른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검이 뽑히는 순간, 비무장의 분위기는 일순간 정지했다. 박무영조차 멈칫하며 김도윤을 응시했다. 검이 완전히 뽑히자, 김도윤의 기운이 변했다. 아까까지의 노인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 자체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의 눈빛은 푸른 검광을 머금었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폭풍 전의 고요함처럼 무겁게 비무장을 눌렀다.

“간다.”

김도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비무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는 발을 내딛는 동시에 사라졌다. 박무영의 시야에 잡힌 것은 오직 푸른 잔상 하나뿐. ‘청운일섬(靑雲一閃)!’ 김도윤의 검이 마치 푸른 섬광처럼 박무영의 옆구리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박무영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지만, 검끝이 그의 팔뚝을 스치자마자 찌릿한 아픔이 전해졌다. 그의 강철 같은 피부가 살짝 베여 피가 맺혔다.

“이런…!” 박무영은 경악했다. 자신의 육신을 베어낸 이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직 늙은 호랑이가 발톱을 완전히 감춘 건 아니었군! 좋아, 그렇다면 이 무영도 전력을 다해주마!”

박무영의 몸에서 검은 오라가 솟아올랐다. ‘칠성폭렬권(七星爆裂拳)!’ 그의 주먹이 일곱 번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폭탄이 터지는 듯한 연쇄적인 충격파가 비무장을 뒤흔들었다. 주변의 돌바닥이 박살 나고,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김도윤은 이 폭풍 같은 공격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검은 폭풍 속을 나는 한 마리 나비처럼 우아하게 움직였다. ‘청운벽해검(靑雲碧海劍)!’ 검이 푸른 바다처럼 일렁이며 박무영의 주먹을 감쌌다. 파도가 바위를 깎듯, 김도윤의 검이 박무영의 힘을 흡수하고 흩뿌렸다. 묵직한 권풍이 검의 유려한 궤적에 걸려 힘을 잃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박무영의 힘은 끝이 없었다. 그는 검의 파도를 뚫고 김도윤에게 돌진했다. ‘칠성귀환권(七星歸還拳)!’ 그의 모든 힘을 담은 마지막 일격이 김도윤의 심장을 노렸다. 그 주먹은 산이라도 부술 기세였다.

김도윤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더 이상 피할 곳도, 피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박무영의 주먹을 향해 곧장 휘둘렀다. ‘청운멸혼검(靑雲滅魂劍)!’ 푸른 검기가 폭발하며 거대한 용오름처럼 박무영의 주먹과 충돌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비무장이 흔들렸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이 맞부딪히는 순간, 시야를 가리는 섬광이 터져 나왔다. 먼지가 가라앉자, 비무장 중앙에 두 인영이 드러났다.

김도윤은 여전히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그의 검끝은 박무영의 가슴팍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박무영은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권풍이 김도윤의 검을 뚫지 못하고 흩어졌고, 오히려 김도윤의 검기가 그의 가슴팍에 깊은 상흔을 남긴 것이다.

“크… 큽…!” 박무영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강철 같은 몸도 김도윤의 검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김도윤은 검을 거두었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잘 싸웠다, 칠성권.”

박무영은 고개를 숙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얼굴에는 분노 대신 옅은 존경심이 서려 있었다.
“청운검… 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군. 이 무영, 패배를 인정하겠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성과 함께 술렁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운검 김도윤의 승리였다. 그는 비무장에서 내려와 다시 처마 밑 그늘에 섰다. 승리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현천지보를 얻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리고 비무장 저 멀리, 신비로운 은월도(銀月刀) 유혜랑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김도윤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점점 더 짙어지는 검은 안개를 바라봤다. 비록 오늘 박무영을 꺾었지만, 진정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될 터였다. 이 비무대회의 끝에는 삼한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낡은 검은, 그 운명을 가를 유일한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