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장: 겨울밤의 밀실, 핏빛 서재

창밖으로는 희미하게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신한제국의 수도, 한성의 밤은 늘 그러하듯 고요했으나, 오늘은 그 고요함 속에 날카로운 비명이 숨어 있었다. 명문가의 고택, ‘청송재’의 대문 앞은 이미 인파로 북적였다. 검은 제복을 입은 황궁수사대의 차량들이 섬광등을 번뜩이며 겨울밤을 수놓았다.

“젠장, 김경위! 대체 무슨 일이냐고!”

굵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정헌 총경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격분과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앞에 선 김준영 경위는 땀으로 축축한 손수건을 쥐고 연신 이마를 닦아냈다.

“총경님, 면목 없습니다. 한인서 대감께서… 서재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셨습니다.”

“시신이라고? 설마… 살인인가?”

최 총경의 눈이 번개처럼 빛났다. 한인서 대감. 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학자이자 정치가.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예, 그렇습니다. 흉기는… 대감님의 소장품인 은장도였습니다. 문제는…”

김 경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최 총경이 재촉하듯 으르렁거렸다.

“문제는 뭐냐! 어물쩍거리지 말고 말해라!”

“문제는… 서재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는 겁니다. 빗장도, 자물쇠도, 모두 안에서 걸려 있었습니다. 창문 또한 안에서 굳게 닫혀 있었고, 워낙 높고 좁아 사람이 드나들 수도 없는 구조였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김 경위의 마지막 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최 총경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다. 밀실. 제국 수사 역사상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였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하필 자신의 관할에서 벌어지다니.

“당장 그 서재로 안내해라.”

최 총경의 명령에 김 경위는 고개를 숙였다. 서재 앞 복도에는 이미 감식반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매화 향 대신 피비린내가 은은하게 감도는 기분이었다. 문은 이미 억지로 개방된 상태였다.

“최초 발견자는 수행 비서인 강민준 씨입니다. 밤늦게까지 작업하시던 대감님께 따뜻한 차를 가져다드리려다 문이 잠겨 있자 이상하게 여겨, 다른 하인들과 함께 억지로 문을 부쉈다고 합니다.”

김 경위의 설명에도 최 총경은 굳은 얼굴로 서재 안을 응시했다. 서재는 고풍스러운 목재 가구들과 빼곡한 서책들로 가득했다. 그 한가운데, 붉은 피웅덩이 위에 한인서 대감이 쓰러져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으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은장도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확인 결과, 서재 안에는 대감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든 잠금장치 또한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문도… 대감님 것과 강 비서, 그리고 하인들 것만 나왔습니다.”

김 경위의 말은 사실이었다. 최 총경은 직접 서재의 문과 창문을 확인했다. 육중한 나무 빗장은 안쪽에서 단단히 걸쇠에 물려 있었고, 최신식 자물쇠 또한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창문은 쇠창살이 박힌 작은 격자무늬 창이었고, 역시 안쪽에서 걸쇠가 채워져 있었다. 도저히 외부에서 침입하거나, 안에서 범인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이건… 대체 누가 벌인 짓이냐… 유령이라도 다녀간 것이냐?”

최 총경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때,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려왔다. 최 총경과 김 경위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곧게 뻗은 자세, 흐트러짐 없는 짙은 감색 정장, 그리고 무엇보다 날카롭게 빛나는 그의 눈빛.

“저분은…?”

김 경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 총경의 얼굴에 일순 희미한 안도감과 함께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

“흥, 그 인간을 부를 줄이야… 결국 내가 졌군.”

그가 도착했다. 제국 수사대의 비공식적인 조력자이자, 황궁에서도 인정하는 천재 탐정. 윤선재였다.

윤선재는 아무 말 없이 서재 문 앞에 섰다. 엉망이 된 현장을 한번 쓱 훑어보는 그의 시선은 그 어떤 장인의 손놀림보다도 섬세하고 정확했다. 서재 안의 모든 것이 그의 뇌리에 마치 사진처럼 박히는 듯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잠시 침묵하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최 총경님, 안녕하십니까. 제국의 밤은 여전히 어둡군요.”

가볍고 장난기 어린 그의 목소리는 현장의 무거운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최 총경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네가 오리라고는 예상했다만, 벌써 와 있을 줄은 몰랐군. 역시 제국 정보부는 자네의 뒤를 캐는 데 일가견이 있어.”

“그들이 저를 ‘캐는’ 것이 아니라, 제가 ‘부름’에 응한 것뿐입니다. 뭐, 그들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할 만큼 제가 매정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윤선재는 어깨를 으쓱하며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러나 능숙하게 시신 주위를 돌았다. 감식반 요원들은 그가 혹여 증거를 훼손할까 노심초사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정확히 시신과 흉기, 그리고 벽과의 최소한의 간격을 유지했다.

그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오직 눈으로만 훑고, 냄새를 맡고, 주변의 미세한 소리까지 듣는 듯했다. 창밖으로 간간이 흩날리는 눈발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계는 멈춰 있었다. 새벽 두 시 사십칠 분을 가리키며.

“사건 발생 시각은 대략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사망 당시 서재 내부 온도는 외부와 비교해 상당히 높았고, 난로는 아직 따뜻했습니다.”

김 경위가 보고했지만, 윤선재는 듣는 둥 마는 둥 시신을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은 은장도가 박힌 가슴팍에 잠시 머물더니, 이내 대감의 손가락과 책상, 그리고 벽 한쪽에 자리한 작은 장식장을 향했다.

“밀실 살인이라…”

윤선재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비웃음도, 냉소도 아니었다.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미소였다.

“최 총경님.”

윤선재가 불쑥 최 총경을 불렀다.

“이 사건의 담당 책임자는 김 경위님이십니까?”

“그렇다만, 왜 묻는가?”

“그럼 김 경위님께 여쭙겠습니다.”

윤선재는 김 경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꿰뚫어 보는 듯했다.

“혹시… 서재 안쪽에, 대감님의 평소 기호품 중에서 유독 눈에 띄게 비어 있는 공간은 없었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김 경위는 물론, 최 총경과 다른 수사관들까지 모두 얼어붙었다. 비어 있는 공간이라니? 살인 사건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김 경위는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비어 있는 공간이요? 글쎄요… 딱히 그런 것은….”

윤선재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돌려 서재의 한쪽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그것은 평범한 수묵화처럼 보였다.

“이 그림 뒤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김 경위님.”

그의 질문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는, 이미 범인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그려지고 있는 듯했다. 김 경위의 등골에는 서늘한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윤선재의 눈은 그림을 꿰뚫어 보듯 빛나고 있었다.

밀실은, 사실 밀실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윤선재의 눈에는 그러했다.
그는 이미 이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극의 가장 중요한 단서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발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