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은 얼어붙은 땅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폐부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차가웠다. 발밑의 축축한 흙도, 찢어진 옷 사이로 스며드는 밤공기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심장이. 심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꽁꽁 얼어붙어, 차가운 앙금만이 남은 듯했다.
이곳은 버려진 탄광의 깊숙한 갱도였다. 악취와 습기가 가득한 지옥 같은 곳. 며칠째 빛 한 조각 보지 못했다. 목은 타들어가고 배는 굶주림에 경련했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은, 지훈의 미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신자의 섬뜩한 미소, 그 아래 숨겨진 탐욕스러운 눈빛. 그것이야말로 서진을 지옥으로 밀어 넣은 진정한 고통이었다.
***
“서진아, 이건 우리가 함께 찾아낸 거야.”
지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오래전, 햇살 좋은 오후였다. 우리는 낡은 고서점에 파묻혀 먼지 쌓인 책들을 뒤적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낡고 기이한 서적들. 우리는 그 속에서 잊힌 지식과 숨겨진 진실을 찾는 것에 미쳐 있었다. 특히, 지훈은 더욱 그랬다. 그는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강했고, 그 갈망은 종종 위험한 호기심으로 변모하곤 했다. 나는 그런 지훈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늘 나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그를 동경했고, 그의 열정은 곧 나의 열정이 되었다.
어느 날,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찾아냈다. 고대 상형문자로 가득 찬, 뱀 가죽으로 엮인 듯한 기묘한 장정의 책. 검붉은 표지는 손끝에 닿는 순간부터 섬뜩한 기운을 흘려보냈다. 책을 펼치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냉기에 절로 몸서리쳤다.
“이건… 우리가 찾던 게 아닐까?” 지훈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롭게 타올랐다. 그의 흥분은 전염성이 강했다. 나는 늘 그의 말에 쉽게 흔들렸다. 그 책은 잊힌 의식과, 이 세상의 균형을 뒤흔들 수 있는 ‘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문을 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나 동시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그 책에 매료되었다. 밤낮없이 해독에 매달렸다. 지훈은 나보다 훨씬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기이한 광채가 서렸다. 밤늦게까지 홀로 책에 매달려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흡사 광인과도 같았다. 나는 그의 변화에 불안감을 느꼈지만, 이미 그의 열정이라는 끈에 단단히 묶여 빠져나올 수 없었다.
“지훈아, 너무 위험해 보여. 이만 멈추는 게 어때?”
내 걱정 어린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가에는 피로 얼룩진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어. 서진아, 생각해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그의 말은 옳았다. 우리는 이미 너무 깊이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학업도, 미래도, 세상의 모든 평범한 행복을 기꺼이 포기하며 이 어둠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되돌아갈 길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책에 적힌 대로, 우리는 폐허가 된 사원 터를 찾아 나섰다. 지도에도 없는 외딴 산골짜기, 달빛조차 들지 않는 음침한 숲 속 깊은 곳이었다. 그곳에 다다르자마자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에 오싹했다. 썩어가는 나무들의 악취와 함께, 귓가를 스치는 것은 바람 소리가 아닌 누군가의 읊조림 같았다.
낡은 석상들, 이끼 낀 제단. 그리고 제단 중앙에 놓인, 검은 피로 얼룩진 듯한 거대한 문양이 새겨진 돌판. 책에서 묘사한 ‘문’이었다. 섬뜩한 기운이 돌판 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우리는 밤을 새워 의식을 준비했다. 지훈은 흥분에 찬 얼굴로 마지막 주술을 외웠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고대어가 섞인 기이한 음률은 숲 전체를 뒤흔드는 듯했다. 검은 돌판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웅장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세상의 모든 생명을 억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소리였다.
“서진아, 이제 마지막 단계야. 네가 필요해.” 지훈이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어릴 적 함께 뒹굴던 추억도, 서로의 꿈을 속삭이던 밤도, 그 미소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제단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등 뒤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크윽!”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깨에 박힌 차가운 칼날. 지훈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은 달빛을 받아 섬뜩하게 빛났다. 뼈를 긁는 소름 끼치는 감각과 함께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고통보다 더 거대한 배신감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훈아… 왜?”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껏 보아왔던 다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악마 같은 미소였다. “미안해, 서진아. 하지만 넌 너무 물러. 이 힘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거야.” 그의 눈은 탐욕과 광기로 번뜩였다. 그는 내 피가 제단에 흐르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나는 힘없이 쓰러졌다. 내 피가 돌판의 문양을 따라 흘러들어 갔다. 문양이 더욱 강렬하게, 붉게 빛났다. 땅이 울리고, 숲의 나무들이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듯했다.
지훈은 비틀거리는 나를 발로 찼다. “사라져, 서진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잊혀버려.”
그는 내 몸을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붉게 빛나는 제단과 그 위에서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던 지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문’이 열리며 뿜어져 나오는 형용할 수 없는 어둠과 빛의 충돌. 그 모든 것이 아득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
서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죽지 않았다. 절벽 아래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걸려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심장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새겨졌다. 그것은 배신과 절망, 그리고 불타는 증오로 인한 상처였다.
며칠 밤낮을 헤매다 발견한 것은 이 버려진 탄광이었다. 쥐들이 우글거리고, 죽은 자들의 한기가 서린 곳. 딱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차갑고 축축한 흙. 손끝에 닿는 것은 진흙 속의 작은 돌멩이였지만, 서진은 마치 지훈의 목덜미를 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지훈… 네놈이 얻은 힘이 무엇이든, 내가 되찾아줄게. 아니, 네놈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줄게.”
서진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더 이상 나약하고 순진했던 서진은 없었다. 그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살아있는 망령이 되어 있었다.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더 이상 피가 아닌, 지훈에 대한 맹렬한 증오였다.
“네놈이 나를 버린 이 지옥에서, 내가 너를 찾아갈 테니… 기다려라.”
그의 귓가에는 아직도 지훈의 비릿한 미소와, “사라져, 서진아” 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 그 목소리는 더 이상 그를 짓누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심장을 더 격렬하게 타오르게 하는 연료가 되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증오였고, 절망이었으며, 동시에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복수의 의지였다.
어둠 속에서, 서진은 자신을 희생시킨 친구에게 갚아줄 대가를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차가웠고, 잔혹했으며,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집어삼킬 듯한 맹렬한 광기를 품고 있었다. 이제, 그의 지옥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복수의 핏빛 서막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