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애니메이션 대본 & 스토리보드: 【피안의 덫】

## 프롤로그: 망자의 도시, 산 자의 악몽

**[장면 1]**
**시간:** 해 질 녘, 붉게 물든 하늘.
**장소:** 폐허가 된 도시의 옥상.
**설명:** 찢어진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무너진 건물 잔해들이 앙상한 뼈대처럼 솟아 있다. 멀리서 도시 전체를 뒤덮은 잿빛 연기가 피어오른다. 낮은 깔때기 구름이 하늘을 휘감고, 그 아래로 무수한 그림자들이 기어 다니는 것이 보인다. 좀비들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카메라:** 폐허를 광각으로 쓸어 보여주다, 한 옥상에 숨죽이고 엎드린 인물들을 클로즈업한다.

**[인물]**
* **강태호 (30대 초반):** 강인하고 묵묵한 성격. 과거에는 다정했지만, 현재는 생존을 위해 모든 감정을 억누르는 듯하다.
* **이준혁 (30대 초반):** 태호의 오랜 친구. 상황 판단이 빠르고 언변이 좋지만, 내면에 잔혹함을 숨기고 있다.
* **서지혜 (20대 후반):** 생존자 무리의 유일한 여성. 침착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졌다.
* **박상호 (40대):** 덩치 크고 힘이 좋지만, 다소 우유부단하다.

**[장면 2]**
**시간:** 해 질 녘.
**장소:** 옥상 가장자리.
**설명:** 태호가 망원경으로 아래를 살핀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절망, 그리고 미약한 희망이 교차한다. 옆에 앉은 준혁은 불안한 표정으로 껌벅이는 태블릿 화면을 응시한다. 태블릿에는 도시의 옛 지도가 희미하게 떠 있다.

**태호** (나지막이, 거친 숨소리)
젠장… 빌어먹을.

**준혁** (태블릿을 보며, 초조한 목소리)
서쪽 길은 막혔어. 어제 폭발로 다 무너졌다고. 동쪽으로 우회해야 하는데… 저기 보이는 쇼핑몰이 문제야. 생지옥일 거야.

**지혜** (차분하게)
다른 길은 없나요? 지도상으로 이쪽이 가장 안전해 보이긴 하지만…

**상호** (고개를 젓는다)
여기로 온 것 자체가 실수였어. 식량도, 물도 바닥이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태호** (망원경을 내리며, 굳은 표정)
버텨야지. 죽을 때까지 버티는 거야. 쇼핑몰… 돌파한다.

**준혁** (눈을 크게 뜨며)
미쳤어? 저긴 감염자들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야. 뚫고 지나가다간 우리 모두 죽어!

**태호**
시간이 없어.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결국 똑같이 죽어. 어차피 죽을 거면, 발버둥이라도 쳐야지.

**지혜**
태호 씨 말이 맞아요. 희망은 저 너머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호** (침묵하다가, 한숨을 쉰다)
좋아… 하지만 너무 무모해.

**태호** (준혁의 어깨를 붙잡으며)
준혁아, 우리에겐 너의 두뇌가 필요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줘.
(준혁은 태호의 눈을 피한다. 그의 눈빛에는 뭔가 불길한 감정이 스친다.)

**준혁**
(마지못해)
알았어… 내가 최선을 다해볼게.

**[장면 3]**
**시간:** 밤.
**장소:** 쇼핑몰 내부, 지하 주차장 입구.
**설명:** 어둠이 짙게 깔린 쇼핑몰 내부. 찢어진 옷가지와 부서진 진열장, 핏자국이 곳곳에 널려 있다. 멀리서 좀비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태호가 선두에 서서 총을 겨누고, 그 뒤를 지혜와 상호, 준혁이 조심스럽게 따른다. 플래시 불빛이 흔들리며 주변을 비춘다.

**상호** (나지막이, 겁먹은 목소리)
젠장… 냄새 봐. 역겨워.

**지혜** (귀 기울이며)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요. 조심하세요.

**태호** (손짓으로 멈춰 세우며)
멈춰.
(좀비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태호가 즉시 방아쇠를 당긴다. *탕!* 좀비는 고꾸라진다.)

**준혁** (벽에 등을 기댄 채, 식은땀을 흘린다)
하아… 하아… 끝이 없어.

**태호**
조금만 더 가면 지하 주차장이야. 거기로 내려가서…
(말을 채 잇기도 전에, 갑자기 위층에서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천장 일부가 무너져 내린다.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고, 무너진 잔해 속에서 수십 마리의 좀비 떼가 쏟아져 나온다.)

**지혜**
(경악하며)
세상에!

**상호**
(뒷걸음질 치며)
이럴 수가!

**태호** (소리친다)
뛰어! 지하 주차장으로! 빨리!

**[장면 4]**
**시간:** 밤.
**장소:** 쇼핑몰 지하 주차장 입구.
**설명:** 태호 일행이 미친 듯이 달린다. 좀비 떼가 바로 뒤까지 쫓아온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비상 계단 입구가 보인다. 태호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지만, 갑자기 무너진 파편에 발목이 걸려 휘청거린다. 날카로운 파편에 종아리가 찢어지며 피가 흐른다.

**태호**
(고통에 신음하며)
크윽…!

**준혁** (태호를 돌아본다)
태호야!

**상호** (태호를 부축하려 다가간다)
괜찮아?!

**태호**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 하지만, 발목이 심하게 꺾인 듯 움직이지 못한다)
빨리… 먼저 가!

**지혜** (망설인다)
하지만… 태호 씨!

**준혁** (지혜와 상호를 밀치며)
시간 없어! 이러다 다 죽어!
(그는 태호의 총을 재빨리 빼앗아 든다.)

**태호** (놀란 눈으로 준혁을 본다)
준혁아?

**준혁** (태호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의 눈은 차갑게 빛난다.)
미안하다, 태호야. 이게 모두를 위한 길이야.
(준혁은 태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는 듯 총구를 기울인다.)

**태호**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한다. 친구의 눈빛에서 본능적인 공포와 함께 생생한 배신감을 느낀다.)
무… 무슨…

**준혁**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섬뜩하다.)
너 혼자 여기 남으면, 우리가 살 수 있어. 너 덕분에. 고맙다, 친구.
(준혁은 태호의 옆구리를 발로 차 넘어뜨린다. 태호가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지혜**
(경악하며)
이준혁!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상호**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한다.)

**준혁** (재빨리 지하 주차장 입구의 철문을 닫는다. 태호가 쓰러진 채 문을 향해 손을 뻗지만 역부족이다.)
다 살자고 이러는 거야! 이해해줘!

**태호** (피를 토하듯 소리친다)
이… 이 개자식아! 준혁아!

**[장면 5]**
**시간:** 밤.
**장소:** 쇼핑몰 내부.
**설명:** 닫힌 철문 밖, 태호는 피투성이가 된 채 좀비 떼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의 눈은 이글거리는 분노와 함께 친구에게 버림받았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가득하다. 좀비들이 그의 몸을 뜯어내려 달려들고, 태호는 맨몸으로 저항한다. 철문 너머로 준혁의 잔인한 미소가 잠시 스치고,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카메라:** 닫힌 문 너머로 태호의 절규하는 얼굴을 클로즈업. 그의 눈은 살아남아 복수하겠다는 처절한 의지로 번뜩인다.
**음향:** 태호의 비명, 좀비들의 울부짖음, 그리고 철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 이 모든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가며 먹먹한 침묵이 흐른다.

## 제 1장: 지옥에서 돌아온 그림자

**[장면 6]**
**시간:** 1년 후, 황량한 낮.
**장소:** 폐허가 된 도시 외곽, 허름한 아지트.
**설명:** 낡은 트럭 옆, 부서진 건물의 잔해 사이로 간신히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누더기 옷을 걸친 태호가 칼을 벼리고 있다. 그의 몸에는 수많은 흉터와 상처가 새겨져 있고, 얼굴은 앙상하게 말랐지만, 눈빛만은 살아있는 불꽃처럼 강렬하다. 그의 주변에는 직접 만든 듯한 허름한 총기와 칼, 석궁 같은 무기들이 널려 있다.

**내레이션 (태호의 목소리, 차분하지만 깊은 증오가 깃들어 있다)**
지옥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었다.
그날, 나는 수많은 이빨과 손톱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할 뻔했다.
하지만 죽음은 나를 거부했다.
아니, 그 빌어먹을 준혁이에게 복수하기 전까진 죽을 수 없었다.
내 심장을 뜯어 먹으려던 그 좀비 떼 속에서, 나는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고통은 나를 단련했고, 배신은 나를 날카롭게 벼렸다.
그리고 1년…
1년 동안 단 하루도 잊지 않았다.
네 얼굴, 네 비열한 미소.

**[장면 7]**
**시간:** 1년 후, 낮.
**장소:** 낡은 지도를 펼쳐 둔 탁자.
**설명:** 태호가 낡은 지도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붉은 펜으로 몇몇 지점을 표시한다. 지도는 찢어지고 구겨져 있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는지 보여준다. 지도의 한 지점에 ‘신안’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그 주위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내레이션 (태호의 목소리)**
놈은… 이준혁은 분명 ‘신안’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곳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생존자들의 거대 캠프.
비열한 기회주의자 새끼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지.
그곳에서 놈은 또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까.
어떤 희생을 딛고 제 한 몸 편하게 살고 있을까.

**태호** (지도의 ‘신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제… 게임을 시작할 시간이다.

**[장면 8]**
**시간:** 낮.
**장소:** 폐허가 된 고속도로.
**설명:** 태호가 개조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오토바이에는 여러 개의 무기와 장비가 단단히 묶여 있다. 그의 얼굴은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무표정하다. 뒤로는 무너진 도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카메라:** 오토바이를 탄 태호의 뒷모습을 보여주다,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황량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음향:** 엔진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그의 복수심이 타오르는 듯한 비장한 배경 음악.

## 제 2장: 재회, 그리고 가면

**[장면 9]**
**시간:** 며칠 후, 낮.
**장소:** 신안 캠프 입구.
**설명:** 높은 철조망과 망루, 그리고 삼엄한 경계 태세를 갖춘 생존자 캠프 ‘신안’. 규모가 상당해 보인다. 태호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먼발치서 캠프를 응시한다. 그의 눈은 매처럼 날카롭다. 경비병들이 왕래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레이션 (태호의 목소리)**
놈을 찾기 위해선… 저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놈이 쌓아 올렸을 그 위선을 무너뜨려야지.
서서히, 그리고 처절하게.

**[장면 10]**
**시간:** 낮.
**장소:** 신안 캠프 내부, 공동 식당.
**설명:** 간신히 ‘신안’ 캠프에 잠입한 태호. 그는 평범한 생존자 복장을 하고 있다. 캠프 내부는 비교적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사람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안과 경계심이 서려 있다. 태호는 일부러 허름한 차림으로 사람들과 섞여 앉아 주위를 살핀다.
음식을 배급받아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 틈에서, 태호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다.

**낯선 생존자 1**
이준혁 팀장님 말씀이 맞았어. 어제 그 구역은 위험하다고 가지 말랬는데…

**낯선 생존자 2**
그러게 말이야. 이 팀장님 덕분에 우리가 여기서 이만큼이라도 버티는 거지. 카리스마도 있고, 머리도 좋고… 이만한 리더가 또 어디 있겠어.

**태호** (음식을 먹던 숟가락을 멈춘다. 그의 눈빛이 순간 섬뜩하게 변한다.)
…팀장?

**[장면 11]**
**시간:** 낮.
**장소:** 신안 캠프 중앙 광장.
**설명:** 왁자지껄한 시장 같은 분위기의 광장. 사람들이 모여 물물교환을 하거나 정보를 나눈다. 그때, 훤칠한 키의 이준혁이 호위 몇 명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그는 깔끔한 제복을 입고 있으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의 모습은 1년 전의 초조하고 비열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준혁**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모두들, 안녕하세요! 오늘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엔 추가 식량이 배급될 예정입니다!

**사람들** (환호한다)
와아! 이 팀장님 최고!

**태호** (멀리서 준혁을 응시한다. 그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떠오른다.)
이준혁… 팀장님이라. 역겹도록 잘 살고 있었군.
(그의 손이 무심코 허리춤의 칼자루를 만진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굳히고 침착하게 숨을 고른다.)
아니, 아직은 때가 아니야. 더 처절하게.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줄 테다.

**[장면 12]**
**시간:** 낮.
**장소:** 캠프 내 물자 창고 앞.
**설명:** 태호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물자를 나른다. 그는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평범한 생존자로 위장한다. 창고 관리자에게 불평하며 짐을 나르다, 우연히 창고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창고 관리자 (목소리, 짜증 섞인)**
이 망할 놈의 물건들은 대체 누가 발주한 거야! 품목도 엉망이고, 수량도 안 맞아!

**준혁 (목소리, 능글맞게)**
하하, 이 실장이 뭘 모르네. 이건 다 ‘큰 그림’을 위한 거지. 위에서는 우리가 자원 조달에 얼마나 유능한지 알아야 하잖아? 조금 과장해야 투자를 더 받을 수 있지 않겠어?

**창고 관리자 (목소리, 비아냥거리는)**
그래서, 또 누구 목숨을 팔아서 그 ‘투자’를 받으시려고요?

**준혁 (목소리, 싸늘하게)**
쓸데없는 소리 마. 입은 무거울수록 좋은 거야. 이 캠프가 이만큼 유지되는 건 전부 나 덕분이라는 걸 잊지 마. 그날… 그 쇼핑몰에서 우리를 구원한 것도 나였다고.

**태호** (짐을 들다 멈칫한다. 그의 눈빛이 흔들린다. 주먹을 꽉 쥔다.)
(내레이션)
뻔뻔한 거짓말. 남의 희생을 딛고 자신의 위상을 세우다니.
그래, 준혁아. 잘했어. 네가 쌓아 올린 탑이 높으면 높을수록, 무너질 때의 쾌감은 더 짜릿할 테니.

## 제 3장: 균열, 그리고 진실

**[장면 13]**
**시간:** 며칠 후, 밤.
**장소:** 신안 캠프 내 순찰로.
**설명:** 태호가 야간 순찰조에 자원해 캠프 외곽을 돈다. 그의 목표는 캠프의 약점과 준혁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그때, 망루 위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서지혜가 망루 위에서 망원경으로 밖을 살피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어둡다.

**태호**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지혜 씨?

**지혜** (화들짝 놀라며 돌아본다)
누구세요?! 아… 당신은…

**태호**
(마스크를 살짝 내린다. 지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오랜만이네, 지혜 씨.

**지혜**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한다. 눈가가 촉촉해진다.)
태… 태호 씨?! 살아있었군요! 세상에… 어떻게…

**태호** (씁쓸하게 웃는다)
운이 좋았지.
(그의 시선이 캠프 한가운데 있는 준혁의 숙소를 향한다.)
준혁이는 잘 지내는 것 같더군.

**지혜**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표정이 굳어진다)
태호 씨… 준혁 씨는…

**태호** (말을 끊으며)
아니, 됐어. 다 알아. 놈이 여기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그의 목소리에 뼈아픈 분노가 실려 있다.)
너도 그날 그곳에서 모든 걸 봤을 테니, 진실을 알겠지.

**지혜** (고개를 숙인다.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
그날…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준혁 씨가 그렇게 변할 줄은… 상호 씨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 폐인처럼 지냈어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캠프 밖으로 나갔고… 돌아오지 못했어요.

**태호** (눈을 감는다. 상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상호 형마저.

**지혜** (고개를 든다. 그녀의 눈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하다.)
저는 준혁 씨가 두려웠지만, 동시에 그가 너무나도 역겨웠어요. 그 비겁한 행동을 영웅담처럼 꾸며서 떠벌리고 다니는 걸 볼 때마다… 숨이 막혀요. 태호 씨, 준혁 씨를 막아주세요. 그가 진실을 숨긴 채, 사람들을 기만하며 점점 더 많은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어요.

**태호** (어둠 속에서 지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막는다고? 아니. 나는 놈을 막는 것만으론 부족해. 놈이 겪어야 할 고통을, 반드시 치르게 할 거야.

**지혜** (태호의 변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희망을 본다.)
…어떻게든 돕겠습니다.

**[장면 14]**
**시간:** 며칠 후, 낮.
**장소:** 캠프 내 물자 창고.
**설명:** 태호와 지혜가 창고 안에서 몰래 물건들을 확인한다. 지혜는 캠프의 물자 관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태호는 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어 자료들을 확인한다. 수많은 물품이 실제로는 부족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태호**
이거 봐. 구호품 목록에 분명 ‘항생제 200개’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50개도 안 돼. 이 많은 차이는 다 어디로 간 거지?

**지혜** (숨을 들이쉰다)
맙소사… 몰랐어요. 준혁 씨가 직접 관리한다고 해서 믿었는데… 이게 다 자기 배를 불린 거였군요.

**태호**
아니, 단순한 횡령이 아닐 거야. 놈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
(태호는 다른 파일을 열어본다. 거기에는 다른 생존자 캠프들과의 교역 내역, 그리고 의심스러운 자원 이동 경로가 기록되어 있다.)
이건… 주변 소규모 캠프들의 자원을 흡수해서, 이 신안 캠프를 지배하려는 계획 같아.

**지혜**
그럼, 준혁 씨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영웅이 아니라… 그저 이 혼란을 이용해서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는 독재자인가요?

**태호** (비열한 미소를 짓는다)
정확해. 그리고 그 왕국은… 네가 무너뜨려야 할 거야. 내가 씨앗을 뿌려줄 테니.

## 제 4장: 복수의 설계

**[장면 15]**
**시간:** 며칠 후, 밤.
**장소:** 신안 캠프, 회의실.
**설명:** 준혁과 캠프의 주요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 준혁은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보고를 듣고 있다. 지혜는 회의록을 작성하는 비서 역할을 맡아 참석해 있다.

**준혁**
(건방진 태도로)
그래서, 다음 주에 예정된 동쪽 구역 수색 작업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건가? 그쪽에서 귀한 자원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는데.

**간부 1**
예, 팀장님. 하지만 그 구역은 감염자 밀집도가 너무 높습니다. 무리하게 진행하다간 대규모 희생이 예상됩니다.

**준혁** (손을 휘저으며)
희생 없는 발전은 없는 법이야. 그리고… 이 캠프를 유지하려면 ‘명분’이 필요해. 자원을 찾아왔다는 명분. 동쪽 구역은 그 명분을 제공할 가장 좋은 장소지.

**지혜** (태호에게서 받은 USB를 몰래 회의실 컴퓨터에 꽂는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장면 16]**
**시간:** 밤.
**장소:** 캠프 내 방송실.
**설명:** 태호가 몰래 방송실에 침입한다. 스피커와 마이크가 놓여 있다. 그는 시스템을 능숙하게 조작한다.

**내레이션 (태호의 목소리)**
놈은 거짓으로 쌓아 올린 탑에서 영웅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럼 나는… 그 탑의 기반을 흔들어줘야지.
진실이라는 날카로운 칼날로.

**[장면 17]**
**시간:** 밤.
**장소:** 신안 캠프 전체.
**설명:** 캠프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갑자기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모든 생존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준혁과 간부들은 회의실에서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본다.

**태호** (방송실 마이크에 대고,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여러분, 잠시 주목해주십시오. 저는 이 캠프의 진실을 알고 있는 한 생존자입니다. 그리고… 1년 전, 이준혁 팀장이 저질렀던 비열한 배신을 목격한 자이기도 합니다.

**준혁** (회의실에서 벌떡 일어난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이… 이건 뭐야?! 당장 방송 끊어!

**태호** (스피커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1년 전, 쇼핑몰에서 대규모 좀비 떼에 갇혔을 때, 이준혁은 부상을 입은 동료 강태호를 버리고, 철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제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살길을 열었던 겁니다. 그는 그날의 희생을 자신의 영웅담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캠프 사람들** (술렁이기 시작한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본다.)

**태호**
그리고 최근, 이준혁은 캠프의 귀한 물자를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우고, 주변 소규모 캠프를 협박하여 자원을 강탈했습니다. 다음 주에 예정된 동쪽 구역 수색 작업 역시, 무수한 희생을 담보로 한 그의 또 다른 ‘영웅 놀이’에 불과합니다! 증거는… 지금 회의실 컴퓨터에 있습니다. 서지혜 씨가 업로드한 파일들을 확인하십시오!

**준혁** (회의실에서 뛰쳐나간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공포로 일그러져 있다.)
강태호! 네가 어떻게…!

**[장면 18]**
**시간:** 밤.
**장소:** 신안 캠프 중앙 광장.
**설명:** 모든 생존자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태호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이윽고 회의실에서 뛰쳐나온 간부들이 놀란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한 간부가 회의실로 다시 들어가 컴퓨터 화면을 확인한다. 화면에는 준혁의 비리가 낱낱이 기록된 파일들이 떠 있다.

**간부** (광장으로 나와 충격에 빠진 목소리로 외친다)
이건… 전부 사실이야! 이준혁이… 우리가 아는 그 준혁이 아니었어!

**사람들**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찬 표정들.)
말도 안 돼! 이 팀장님이 그럴 리 없어!
거짓말이야!
아니야, 저 방송이 사실이면… 우리를 속인 거야!

**준혁** (광장에 도착한다. 사람들 앞에 서서 변명하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눈빛은 차갑게 변해 있다.)
아니야! 모두 거짓말이야! 누가 나를 모함하는 거야! 저 자는… 저 자는 좀비에게 죽었어야 할 녀석이었어!

**태호** (방송실 마이크에 대고,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죽었어야 할 내가… 살아 돌아와서 네 가면을 찢는 건… 어떠냐, 이준혁.

**[장면 19]**
**시간:** 밤.
**장소:** 방송실.
**설명:** 태호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뒤돌아선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다. 그저 오랫동안 준비해온 계획이 성공했음을 확인하는 듯한, 싸늘한 만족감만 서려 있을 뿐이다. 그의 손에는 작은 리모컨이 쥐어져 있다.

**[장면 20]**
**시간:** 밤.
**장소:** 캠프 외곽, 망루.
**설명:** 태호가 조용히 망루를 벗어난다. 그는 캠프의 상황을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본다. 광장은 혼란에 빠져 아수라장이다. 사람들이 준혁을 향해 돌을 던지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욕설을 퍼붓는다.

**준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비명을 지른다)
아니야! 다들 진정해! 내가 아니야!

**태호** (먼발치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제… 놈의 지옥은 시작될 거야.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폭발물을 꺼내, 캠프 외곽 철조망 한 부분을 향해 던진다.)
이곳을 지키는 놈의 허세와 거짓말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장면 21]**
**시간:** 밤.
**장소:** 캠프 외곽.
**설명:**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철조망 한 부분이 폭발하며 무너진다. 경비병들이 혼란에 빠진다. 폭발음과 함께 주변을 배회하던 좀비 떼가 굉음을 듣고 캠프를 향해 달려든다.

**경비병** (비명을 지른다)
방벽이 무너졌어! 감염자들이 몰려온다!

**캠프 사람들** (준혁을 공격하던 사람들도 좀비 떼의 출현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아수라장이 된 광장은 패닉에 휩싸인다.)

**준혁** (혼란 속에서 넋이 나간 듯 허둥지둥한다. 그의 눈에 공포가 가득하다.)
안 돼! 안 돼!

**[장면 22]**
**시간:** 밤.
**장소:** 캠프 외곽.
**설명:** 태호가 무너진 방벽을 넘어 캠프 안으로 진입하는 좀비 떼를 유유히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는 복수의 완성을 예감하는 차가운 만족감이 떠오른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다정한 강태호가 아니다.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그림자일 뿐이다.

**태호** (준혁을 향해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다.)
이제… 내가 너에게 보여줄 차례다.
지옥이 어떤 건지.

**[장면 23]**
**시간:** 밤.
**장소:** 캠프 중앙 광장.
**설명:** 좀비 떼가 캠프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사람들은 사방으로 도망치며 비명을 지른다. 준혁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좀비 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는 공포에 질려 넘어지고,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태호가 나타난다. 태호의 손에는 좀비들을 처리하며 피로 얼룩진 칼이 들려 있다.

**준혁** (태호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른다)
강… 강태호! 살려줘! 제발!

**태호** (차가운 눈빛으로 준혁을 내려다본다. 그의 목소리는 냉기마저 느껴진다.)
살려달라고? 네가 날 버렸던 그날, 내가 빌었던 소리다.
네가 날 버리고 살았던 1년 동안, 내가 매일 밤 꿈에서 되뇌이던 복수다.

**준혁** (넘어진 채 뒷걸음질 친다)
잘못했어! 내가 미안하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줘!

**태호** (칼을 들어 올린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용서? 그건 죽은 자들의 몫이지.
너는… 살아있는 지옥을 맛봐야 해.

**[장면 24]**
**시간:** 밤.
**장소:** 캠프 중앙 광장.
**설명:** 태호는 준혁의 옆구리를 칼로 찌른다. 깊지 않은 상처지만, 준혁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태호는 쓰러진 준혁을 일으켜 세운다. 준혁의 얼굴에는 공포와 고통, 그리고 과거의 비열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주변에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태호** (준혁의 귀에 속삭인다)
네가 버렸던 내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네가 죽음으로 내몰았던 내가… 네 지옥의 문을 열었다.
이제, 나처럼 살아남아서… 이 고통을 느껴봐.

**준혁** (몸부림치지만, 태호의 힘을 이길 수 없다)
크윽… 젠장…

**태호** (준혁을 좀비 떼가 몰려오는 방향으로 밀어 던진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잘 가라, 친구.
그리고… 살아남아라. 나처럼.
(좀비들이 준혁에게 달려든다. 준혁의 비명소리가 캠프의 혼란 속에 묻힌다.)

**[장면 25]**
**시간:** 밤.
**장소:** 캠프 외곽.
**설명:** 태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뒤로는 불타는 신안 캠프와 좀비들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뒤섞인 지옥도가 펼쳐진다. 그의 발걸음은 가볍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복수의 허무함인지, 아니면 더 깊은 어둠이 자리 잡았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스친다.

**내레이션 (태호의 목소리)**
복수는 달콤했지만, 동시에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친구의 배신은 나를 괴물로 만들었고, 그 괴물은 또 다른 지옥을 만들어냈다.
이게 내가 원했던 복수의 끝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이제, 영원히 이 지옥 속을 헤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날, 그 친구가 나를 버렸던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죽어버린 건지도.

**[장면 26]**
**시간:** 밤.
**장소:** 멀리서 불타는 캠프를 바라보는 태호의 뒷모습.
**설명:** 태호의 뒷모습은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폐허가 된 캠프의 불길과 좀비들의 끔찍한 울음소리뿐이다.
**카메라:** 태호의 뒷모습을 잡다가, 점차 멀어지며 불타는 캠프를 광각으로 보여준다.
**음향:** 잔혹한 복수의 여운을 남기는 비장하면서도 쓸쓸한 음악이 흐른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