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계장치의 밤 – 제 3화. 톱니바퀴의 속삭임**
김현우는 낡은 아파트 건물 입구에 서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증기기관차의 둔탁한 기적 소리가 늦은 밤 공기를 찢고 지나갔다. 이 거대한 황동과 강철의 도시는 그에게 늘 피로와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오늘 하루도 다를 바 없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애써 웃는 기계 인형들 사이에서 온종일 삐걱이는 톱니바퀴처럼 일하다 돌아온 참이었다.
낡은 철제 난간을 짚고 계단을 올랐다. 매 층마다 흐릿하게 빛나는 가스등 겸용 전등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삐걱이는 문을 열고 들어선 그의 아파트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스위치를 올리자 천장의 에디슨 전구가 힘없이 깜빡거리다 간신히 희미한 빛을 토해냈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오늘따라 왜 이래.”
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넥타이를 풀었다. 주방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이 멈췄다. 거실의 커다란 벽시계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단순한 초침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뚜렷한 금속성 음이었다.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낡은 황동으로 장식된 태엽 시계는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째깍, 째깍. 규칙적인 소리. 하지만 방금 들린 소리는 명백히 달랐다. 마치 시계 안의 톱니바퀴가 제멋대로 엇나가려는 듯한, 억지스러운 마찰음이었다.
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피곤해서 예민해진 것이리라. 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똑, 똑 하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분명히 수도꼭지를 잠그고 나왔던 기억이 있었다. 손잡이를 돌려 잠갔지만, 몇 초 뒤 다시 똑, 똑 하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젠장, 또 말썽이네.”
짜증스럽게 손잡이를 더 세게 돌렸다. 이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현우는 물을 따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선들이 마치 거대한 벌레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시의 밤은 언제나 부산하고, 기계적인 굉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오늘 밤은 유독 그 모든 소음이 흡수된 듯, 아파트 안은 기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거실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현우는 몸을 굳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주방에서 거실로 향하는 복도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거실 중앙, 앤티크한 서류함 위에 놓여 있던 낡은 증기 압력계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압력계 바늘은 ‘위험’ 구역을 넘어선 지점에 박혀 있었다.
“이게… 어떻게.”
현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히 저 압력계를 서류함 깊숙이 넣어두었을 터였다. 아무도 만질 사람이 없었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다.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럽게 방 안을 살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듯했지만, 무언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거실 테이블 위, 늘 똑바로 세워져 있던 은제 액자가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 안의 사진 속, 앳된 현우의 얼굴이 삐딱하게 그를 노려보는 듯했다.
갑자기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벽난로 대신 설치된 거대한 증기 난방기에서 ‘쉬이이익…’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보일러를 켜지도 않았는데. 차가운 공기 속에서 습기 머금은 금속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누구… 없어?”
현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침묵이 깊어질수록 아파트 벽 속의 파이프들이 ‘쿵, 쿵’ 하고 미세하게 울리는 소리가 선명해졌다. 마치 건물 자체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심장이라도 된 것처럼.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책들, 그리고 그가 직접 조립한 자그마한 태엽 인형들이 놓인 선반. 조용히 숨어들면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서재 문을 열자마자, 현우는 얼어붙었다.
선반 위, 그가 아끼던 태엽 인형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정교하게 조립된 작은 기계 팔다리들이 부러져 너덜거렸고, 맑은 유리 눈알은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중 하나, 가장 아끼던 태엽 비행사 인형이 책상 위, 열려 있는 그의 일기장 위에 놓여 있었다.
일기장 페이지는 찢겨져 있었고, 그 위에 핏자국처럼 번진 기름 얼룩이 선명했다. 그리고 기름 얼룩 옆, 갈색 크레용으로 삐뚤빼뚤하게 쓰인 글씨가 있었다.
**[나가.]**
현우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더 이상 피로에서 오는 착각도, 낡은 건물의 노후화도 아니었다. 명백한 ‘무언가’의 흔적이었다.
그때, 서재 안쪽에서 ‘덜그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작은 기계 부품들이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현우는 숨을 죽였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덜그럭, 덜그럭… 소리의 근원은 그의 낡은 책상 아래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 아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붉은 점이었다. 마치 작은 기계 생명체의 눈처럼. 그 점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현우를 향해 움직였다. 덜그럭, 덜그럭… 기계적인 마찰음이 서재를 가득 채웠다.
현우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서, 붉은 점들이 점점 더 선명해지며,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닳고 닳은 황동과 녹슨 강철 조각들이 엉성하게 엮인, 거미 같은 형태의 작은 기계였다. 여섯 개의 다리가 톱니바퀴 소리를 내며 책상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그 기계 거미의 등 부분에 박힌,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진 듯한 작은 눈이 현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 속에서, 마치 증기가 끓어오르는 듯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으아악!”
현우는 마침내 비명을 내지르며 서재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복도를 가로질러 현관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기계적인 ‘덜그럭’ 소리가 미친 듯이 쫓아오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잡고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돌렸다. 쾅! 문이 열리고, 그는 영문도 모르는 채 밤의 도시 한복판으로 내던져졌다.
뒤를 돌아보자, 굳게 닫힌 아파트 문 틈새로, 아주 희미하게, 증기 압력계의 바늘이 미친 듯이 떨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 너머, 섬뜩한 톱니바퀴의 속삭임이 메아리쳤다.
**[…나가야 할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