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언제나 같았다. 아니, 같으면서도 매번 달랐다. 넝쿨과 이끼로 뒤덮인 낡은 창문 틈으로 새벽 공기가 스며들었다. 축축하고 서늘한 습기 속에서 풀 내음이 진하게 풍겼다. 나는 삐걱이는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다 눈을 떴다. 얇은 이불이 차가워진 공기에 한기를 띠고 있었다.
“흐음…”
길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내 침대 발치에서는 먼지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먼지는 회색빛 털을 가진 고양이로, 잿더미와 폐허 속에서 나를 만나 내게 왔다. 내 유일한 가족이자, 이 고요한 세상 속에서의 위안이었다.
“먼지야, 일어났니?”
내가 묻자 먼지는 눈만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귀찮다는 듯 느리게 꼬리를 한 번 흔들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잠꾸러기.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벽돌과 흙으로 대충 만든 화덕에 불을 지폈다. 밤새 꺼져 있던 불씨가 마른 나뭇가지에 옮겨붙으며 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장작 타는 냄새가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섞여 공중에 퍼졌다. 보온병에 남은 물을 작은 냄비에 붓고 어제 말려둔 약초 몇 조각을 넣었다. 쌉쌀한 향이 피어올랐다.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니 몸속 깊은 곳부터 온기가 퍼지는 듯했다. 화덕 옆에 둔 작은 철제 통을 열자, 잘 익은 들열매 몇 개가 보였다. 어제 숲에서 따온 것들이다. 먼지에게 몇 개 던져주자, 녀석은 낼름 받아먹고는 다시 내 발치에 앉아 그르렁거렸다.
오늘의 할 일은 명확했다. 식량 탐사. 그리고 가능하면, 폐허가 된 도시 외곽에 있다는 ‘푸른 샘’을 찾아보는 것. 소문으로만 듣던 곳인데, 다른 곳보다 훨씬 깨끗하고 물이 풍부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소문 대부분이 그렇듯, 부풀려졌거나 아예 허구일 수도 있지만,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직접 확인해봐야 했다.
나는 허리에 작은 칼을 차고, 어깨에 천으로 만든 가방을 멨다. 가방 안에는 어제 남은 들열매와 낡은 수통이 들어 있었다.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햇살이 두꺼운 구름 사이를 뚫고 쏟아져 내렸다.
“다녀올게, 먼지야.”
내가 말하자 먼지는 고개를 살짝 들고 “야옹” 하고 짧게 울었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처럼 들렸다.
내가 사는 곳은 과거 ‘도서관’이었다고 했다. 거대한 벽들과 부서진 책장들, 그리고 읽을 수 없는 언어로 가득한 낡은 책들이 그 증거였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에는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지식을 찾고 위안을 얻었겠지. 지금은 그저 나 혼자, 그리고 먼지 혼자 지내는 조용한 쉼터일 뿐이었다.
도서관의 낡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퀴퀴한 실내와는 다르게 바깥 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온통 녹색이었다. 한때 거리를 메웠을 아스팔트는 두꺼운 이끼와 풀뿌리에 갈라지고 덮여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앙상한 철골 구조물만 남은 건물들 사이로 굵은 넝쿨들이 거대한 줄기를 뻗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인간의 흔적은 이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익숙하게 폐허의 길을 따라 걸었다. 발밑에는 부서진 유리 조각과 깨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밟혔지만, 대부분은 부드러운 흙과 풀잎이 감싸고 있었다. 발걸음마다 풀잎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오늘의 목표는 푸른 샘을 찾아내는 것. 숲은 짙고 미로 같아서 길을 잃기 쉬웠다. 나는 나무에 매달린 낡은 표지판이나, 희미하게 남아 있는 도로의 흔적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저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른 샘?”
가슴이 두근거렸다. 발걸음을 재촉해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나뭇가지와 넝쿨을 헤치고 나아가자, 눈앞에 작은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수는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었다. 바닥에는 푸른 이끼들이 촉촉하게 깔려 있었고, 물은 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다. 햇살이 폭포수에 비치자, 수많은 무지개 조각이 춤을 추듯 일렁였다.
나는 조용히 그 풍경을 바라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아직 남아 있었다니.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수통을 꺼내 깨끗한 물을 가득 채웠다. 한 모금 마시자, 차가우면서도 달콤한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온몸의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샘 주변을 둘러봤다. 바위틈에는 이름 모를 작은 보랏빛 꽃들이 피어 있었고, 그 옆으로는 굵고 윤기 나는 열매가 가득 달린 나무가 서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열매 몇 개를 땄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탐스럽고 묵직했다. 도서관으로 돌아가 먼지에게도 맛을 보여줘야지. 먼지가 좋아할까?
돌아가는 길은 좀 더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푸른 샘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맛있는 열매를 얻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숲은 여전히 고요했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따뜻했다. 가끔씩 들려오는 새소리가 유일한 배경음악이었다.
도서관 입구에 다다르자, 먼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낡은 문틈으로 코를 킁킁거렸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지는 다리에 몸을 비볐다.
“먼지야, 봐! 내가 뭘 가져왔는지 알아?”
나는 가방에서 열매를 꺼내 먼지 앞에 내밀었다. 먼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열매를 바라보더니, 낼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맛있지? 나도 먹어봤는데, 정말 달콤해.”
나는 먼지 옆에 앉아 열매를 먹었다. 푸른 샘의 물을 마셨을 때처럼, 열매는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밖에서 싸늘하게 식은 몸이 천천히 데워지는 기분이었다.
화덕에 다시 불을 지피고, 남은 열매는 작은 그릇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낮에 채워 온 푸른 샘의 물을 끓여 차를 우렸다. 어둡고 황량한 세상 속에서 이런 작은 기쁨들이 나를 살아있게 했다.
밤이 되자, 창밖은 온통 어둠에 잠겼다. 낡은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별들이 반짝였다. 숲의 밤은 소리로 가득했다. 벌레들이 울고,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소리, 가끔씩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 하지만 이곳 도서관 안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나는 화덕 옆에 앉아 먼지를 쓰다듬었다. 먼지는 내 무릎 위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내 손길에 맞춰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오늘도 살아남았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폭풍이 몰아치거나, 음식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작은 발견과 행복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었다.
먼지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이 황폐해진 세상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삶 속에는 여전히 아름다움과 희망이 존재했다. 푸른 샘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는 작고 소중한 기쁨들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또다시, 깊은 밤의 품으로 잠겨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