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27화: 찢겨진 맹세의 메아리

찬란한 도시의 불빛은 강진우의 눈동자 속에서 그저 차갑고 무의미한 점멸에 불과했다. 발아래로 펼쳐진 현무빌딩 옥상의 칼날 같은 난간. 거센 바람이 그의 검은 코트를 휘감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마치 그 자신이 거대한 암석처럼, 세상 모든 소음과 진동으로부터 유리된 듯했다.

손 안에는 낡은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화면에는 김도윤의 얼굴이 확대되어 있었다. 황금빛 트로피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는 그 얼굴. 도심 한복판 대형 전광판을 가득 채운 그의 모습은 흡사 개선장군 같았다. ‘길드 연합 최연소 의장 취임.’ ‘새로운 던전 시대의 개척자.’ ‘인류의 영웅.’ 화려한 수식어들이 화면 가득 춤을 추고 있었다.

진우는 피식,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영웅. 개척자.

“웃기는군.”

그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서늘했고, 그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응축되어 있었다. 1년. 뼈를 깎는 고통과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며 버텨온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김도윤은 그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 * *

회색빛 기억의 조각들이 순식간에 진우의 의식을 파고들었다.

어둠과 습기가 뒤섞인 던전 심층부. 고대 거미 병기 ‘아라크네’의 맹독에 온몸이 마비되어 쓰러져 있던 자신. 마지막 남은 정신력으로 손을 뻗었을 때, 김도윤이 보였다. 언제나 자신을 형이라 따르던, 심지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던 그 ‘친구’.

“진우 형! 조금만 버텨요! 내가 반드시… 반드시 당신을 구해낼 거야!”

그의 목소리는 절박했고, 그의 눈동자는 동요로 일렁였다. 진우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친구다. 그 순간, 도윤의 손에 들린 단검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의 방어막을 뚫고 심장 부근에 깊숙이 박혔다.

고통보다 더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미안해, 형.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어.”

도윤의 목소리는 이제 차분했다. 동정심도, 후회도 없었다. 오직 차갑게 계산된 이기심만이 그 눈빛에 가득했다. 그의 등 뒤에는 다른 길드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모두가 공범이었다.

“형이 죽어야… 내가 살 수 있어. 형이 독차지했던 그 ‘심장석’… 그건 이제 내 거야.”

심장석. 던전의 핵이자, 고대 병기의 동력원. 그것은 이 던전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유물이었다. 그리고 진우는 그것을 이미 손에 넣은 상태였다.

“도윤…아…”

마지막으로 내뱉은 그 한마디는 비명이 아니었다. 찢어질 듯한 분노와, 동시에 인간에 대한 깊은 절망이 담긴 울음이었다. 진우의 의식은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다.

* * *

몸을 휘감는 차가운 바람이 진우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얼음처럼 단단했다. 김도윤. 너는 그날 나를 죽였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는 돌아왔다. 죽음의 문턱에서, 너의 탐욕이 나에게 불어넣은 힘으로.

그는 옥상 난간에서 몸을 돌렸다. 섬광처럼 시야에 들어온 것은 현무빌딩 바로 건너편, 최상층에 위치한 김도윤의 개인 집무실이었다. 불이 환하게 켜진 창문 너머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심장석을 가졌다 한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모양이군.”

진우는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조각을 꺼냈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파편이었지만, 그 속에는 심연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었다. 아라크네 던전의 가장 깊은 곳, 죽음의 늪에서 간신히 회수한 ‘심장석의 잔해’였다. 온전한 심장석을 도윤에게 빼앗겼지만, 그 조각 하나로도 충분했다. 아니, 어쩌면 이 조각이, 완전한 심장석보다 더 강력한 힘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우는 생각했다. 던전의 모든 생체 에너지를 흡수하고 진화한, 불완전하지만 살아있는 핵이었으니까.

그는 그 잔해를 꽉 쥐었다. 손바닥 안에서 미세한 떨림과 함께 붉은 빛이 일렁였다.

“김도윤. 네가 가진 그 모든 것, 내가 하나도 남김없이 부숴줄 테니.”

그의 눈은 집무실 창문을 꿰뚫는 듯했다.

“준비해라. 너는 이제… 망자에게 쫓기게 될 테니.”

진우는 몸을 낮춰 현무빌딩 옥상의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어둠 속, 그의 발밑으로 도시의 불빛이 아득히 멀어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은 옥상 난간 너머로 사라졌다. 공중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추락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바람을 가르는 미세한 진동음만이 허공에 울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날개를 가진 존재처럼, 그는 밤하늘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의 그림자는 김도윤의 집무실을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복수의 서막이, 그렇게 다시 열렸다. 김도윤은 아직, 그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