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마법 공학 아카데미의 하늘은 언제나 푸르고, 그 아래 펼쳐진 건물들은 은은한 마법의 광채를 뿜어냈다. 수백 미터 상공에 떠 있는 수정 첨탑들은 태양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고, 그 사이를 유유히 오가는 개인 이동 포드들은 바쁜 학구열의 상징이었다. 고작 17세, 나는 그 압도적인 풍경의 일부였다. 물론, 이젠 아무 감흥도 없지만.
서하준. 이 이름은 아르카디아에서는 평범 그 자체였다. 특별히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뒤처지지도 않는, 딱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학생. 아마도 그런 애매함이 나를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 밖에서, 나는 종종 이상한 것들을 보았다.
“젠장, 또 공지야?”
점심 식사를 막 마치고 중앙 홀로 향하던 길, 옆을 걷던 리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거대한 홀 중앙의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긴급 전체 공지’라는 문구가 붉은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리안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번엔 또 무슨 쓸데없는 규제가 추가될지 궁금하네. 저번엔 ‘마법 회로 보호를 위한 드론 비행 고도 제한’ 이딴 거였잖아.”
나는 말없이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늘 그렇듯 교장 선생님의 홀로그램이 묵직한 위엄을 과시하며 나타났다. 길고 지루한 서론이 이어졌고, 학생들은 지루해하며 삼삼오오 귓속말을 나누거나 마나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나온 내용에 홀 안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줄어들었다.
“…따라서, 본 아카데미의 심층연구구역, 즉 제7 지하기반시설에 대한 접근은 금일부터 모든 학생 및 일반 교직원에게 전면 금지된다. 해당 구역은 오직 인가된 소수의 상위 마법공학 연구진만이 출입할 수 있으며, 어떠한 예외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위반 시 아카데미 규율에 따라 엄중히 처벌받을 것임을 명심하라.”
홀 안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심층연구구역. 제7 지하기반시설.
그곳은 아르카디아의 심장부 아래, 수십 미터 아래에 묻힌 미지의 공간이었다.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로 그곳에 가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늘 ‘미사용 시설’ 혹은 ‘고대 유물 보관소’라는 모호한 설명만 붙어 있을 뿐이었다.
리안이 경직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뭐야? 저긴 원래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 아니었어? 왜 새삼스럽게 금지령을 내린대?”
“그러게.”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금지령이라기보다는, 이번엔 ‘절대 침범 불가’에 가까운 것 같은데.”
늘 그래왔듯, 아카데미의 모든 공지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동반했다. ‘마법 회로 보호’라든지, ‘고대 마법 물품의 안정화’ 같은 그럴듯한 명분. 하지만 이번 공지에는 그런 ‘이유’가 없었다. 그저 ‘전면 금지’와 ‘엄중 처벌’뿐이었다.
공지가 끝나고 홀로그램이 사라지자, 학생들 사이에서 와글와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은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어차피 가지도 못할 곳인데, 금지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는 묘한 불길함이 고개를 들었다.
며칠 전부터였다. 나는 종종 도서관의 자료실이나 고문서 보관소를 지나갈 때, 아주 희미한 진동을 느끼곤 했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거대한 심장 박동 같은. 처음엔 그저 아카데미 지하의 마나 펌프 소리려니 했다. 아르카디아는 거대한 마나 증폭기를 지하에 설치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진동은 펌프 소리치고는 너무 불규칙했고, 무엇보다 기분 나빴다. 마치 내 정신을 갉아먹는 듯한 불쾌감.
“야, 서하준. 너 표정이 왜 그래? 혹시 저번에 심층연구구역 내려가려다 걸린 적 있어?” 리안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왠지 저 공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이상하긴. 그냥 교수님들이 연구하다가 사고라도 쳤나 보지.” 리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마나 태블릿으로 최신 홀로그램 게임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뭐, 어차피 우린 갈 일 없잖아. 난 그보다는 다음 학기 마법 결투 대회 라인업이 더 궁금하다.”
리안에게는 모든 것이 평범했다. 하지만 내겐 아니었다. 나는 심층연구구역 쪽을 흘끗 보았다. 중앙 홀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가장 큰 통로. 평소에는 그저 회색빛의 강철 문으로 닫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위에 푸른색의 마법 장벽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단순한 물리적 차단을 넘어선, 강력한 마법 보호막.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아주 오래된 속삭임이 스쳤다.
아주 어렸을 때, 내가 막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밤중에 혼자 기숙사를 나서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마주친 고학년 선배가 만취한 채 중얼거렸던 말.
‘지하… 지하에선 말이야… 절대, 절대 뭘 묻지 마… 그건… 금기야…’
당시에는 그저 술주정으로 흘려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 못 이루고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밖으로는 수정 첨탑의 빛이 아련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요동쳤다.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분명,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심층연구구역의 입구 쪽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모든 시설은 마법공학적으로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미세한 마나 흐름의 변화조차 감지할 수 있는 센서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심층연구구역의 입구 주변은 마치 모든 감지기가 작동을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마나 흐름도, 온도 변화도, 심지어는 공기의 미세한 진동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곳만이 아르카디아의 현실에서 잘려 나간 듯한 이질적인 침묵.
어느 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인적이 드문 복도를 통해 심층연구구역 입구에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봤다. 푸른 마법 장벽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고, 그 앞에는 고도로 훈련된 보안 드론 세 대가 규칙적으로 순찰하고 있었다. 그 드론들의 마나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평범한 보안 드론의 몇 배는 되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죽이고, 마법 장벽에 손을 뻗어 보았다. 물론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손끝이 장벽의 푸른빛에 닿으려는 찰나, 차가운 전율이 온몸을 훑었다. 피부에 닿는 차가움이 아니었다. 심장과 폐, 그리고 뇌를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본능적인 공포.
그리고 들렸다.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속에서 외치는 듯한 소리.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인 듯한 혼란스러운 속삭임.
고통, 절망,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갈망.
그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비명처럼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커헉…!”
나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솟구쳤고,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마치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이 한꺼번에 내게 쏟아져 들어온 것 같았다.
보안 드론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달아났다. 복도를 정신없이 달려 기숙사로 향했다.
침대에 쓰러지듯 눕자마자, 나는 온몸을 벌벌 떨며 눈을 감았다.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속삭임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공포스러웠다.
아카데미 지하에 잠들어 있는 것은 단순히 ‘연구 구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곳에는…
나는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손이 땀으로 축축했다.
그것은 금기였다.
엘리트 마법 학교의 완벽한 가면 뒤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
그리고 나는, 이제 막 그 진실의 틈새를 엿본 것이었다.
더 깊이 파고들면 안 된다는 이성과, 무언가에 홀린 듯 끌리는 미지의 힘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결국, 나는 알게 될 것이다.
아르카디아가 그토록 숨기려 했던 금기의 정체를.
그것이 무엇이든, 분명 나의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다.
나는 눈을 떴다. 창밖의 수정 첨탑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제 그 빛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무덤을 밝히는 등불처럼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