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김현우는 낡은 카메라를 들고 폐허가 된 산정상 천문대의 철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녹슨 경첩이 삐걱이는 소리가 음산한 정적을 갈랐다. 한때 별들의 비밀을 탐구했을 이 거대한 구조물은 이제 시간과 망각의 무게에 짓눌려 묵묵히 부서지고 있었다. 먼지 낀 렌즈 없는 망원경은 텅 빈 눈동자처럼 검은 하늘을 향해 있었고, 거미줄은 은하수처럼 천장을 가로질렀다.

“젠장, 이건 예술이잖아.”

현우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렌즈 너머로 보이는 부패의 아름다움을 쫓았다. 낡은 복도를 따라 걸으며 셔터를 눌렀다. 삐걱이는 마룻바닥과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 소리만이 그를 반겼다. 메인 관측실을 지나 자료 보관실로 보이는 곳에 들어섰을 때였다. 곰팡이 핀 서류와 해묵은 책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현우의 시선은 한쪽 벽에 고정되었다.

다른 벽들과는 이질적인 나무 패널. 묘하게 어긋난 색과 무늬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조심스레 다가가 패널을 더듬었다. 낡은 나무 틈새로 손가락을 넣어 힘을 주자,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패널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차가운, 습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그 안은 천문대 건물 어느 곳보다도 더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현우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좁은 통로를 따라 걸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통로는 작은 원형의 방으로 이어졌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고 낮은 석조 제단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현우가 더 가까이 다가가 플래시를 비추자, 제단 중앙에 놓인 검은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돌멩이 같기도 했고,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 같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빛을 삼킨 듯 새까만 표면은 매끄럽게 윤이 나 있었고, 언뜻 보면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검은 표면 깊은 곳에서 희미한, 보라색에 가까운 빛이 아주 느리게, 숨 쉬듯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미약하게 고동치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현우는 홀린 듯 손을 뻗어 그 검은 조각에 손끝을 댔다.

그 순간, 온 세상이 정지하는 듯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러나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눈앞에서 천문대의 낡은 벽들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거미줄이 춤추는 대신, 불가해한 기하학적 무늬로 변형되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플래시 빛은 희미해졌다가 다시 강렬해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귀에는 수십, 수백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속삭이는 듯한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어떤 언어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속삭임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별들의 이름, 영원의 차가운 숨결,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공포가 담겨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현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검은 조각은 여전히 그의 손에 닿아 있었다. 아니, 그의 손이 조각에 달라붙은 듯했다.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보랏빛은 그의 피부 아래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초였을까, 아니면 몇 시간이었을까. 현우는 정신을 차리고 손을 떼어냈다. 검은 조각은 여전히 제단 위에 놓여 있었고, 미약하게 고동치는 보랏빛은 이제 그의 눈에만 보이는 듯했다. 방금 일어난 모든 일은 악몽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생생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황급히 패널을 닫고 천문대를 나섰다. 햇살 아래로 나오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더 이상 온전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현우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의 눈을 감자, 아까 보았던 검은 조각의 잔상이 망막에 선명하게 박혔다. 보라색 고동. 그리고 알 수 없는 목소리들. 그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속삭임은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날 밤부터 현우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잠자리에 들면 꿈속에서 불가사의한 우주 공간을 유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촉수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셀 수 없는 눈동자들이 그를 응시하는 환영에 시달렸다. 현실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거리의 표지판 글자가 갑자기 뒤틀려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의 얼굴이 일순간 낯선 그림자로 변했다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섬뜩한 명료함으로 모든 것을 인지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속삭임이었다. 처음에는 희미하고 혼란스러웠던 목소리들이 점차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지식’을 전달하려 애쓰는 듯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형태로, 하지만 그의 정신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을 뒤흔드는 것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우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다. 술을 마시고, 잠을 자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속삭임은 더 강렬해졌고, 환영은 더 선명해졌다. 그의 손목에는 검은 조각을 만졌던 자리에 희미한 보랏빛 문신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건… 미쳐가는 게 아니야…”

어느 날 새벽, 현우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지만, 동시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어떤 깊이와 어둠을 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건물들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비인간적인 형상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알 수 없는 기운들,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 사실은 거대한 눈알들이라는 끔찍한 진실을 보았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그는 책상에 놓인 스케치북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은 펜을 쥐고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케치북 위에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그려졌다. 구불구불한 선들과 날카로운 각들이 얽혀, 거대한 눈동자와 촉수,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별들의 지도를 만들어냈다.

속삭임은 이제 하나의 통일된 목소리가 되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목소리는 그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잠들어 있던 힘을 깨우는 방법이었고, 봉인된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는 의식이었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의식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그의 의지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 나는… 준비되었어…”

현우는 스케치북에 마지막 선을 긋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온전히 검은 조각의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밤하늘을 향했다. 그곳에는 달이 떠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평범한 달. 하지만 현우의 눈에는 달 뒤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촉수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광활하고 차가운,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웃었다. 너무나도 차갑고,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웃음이었다.

이제 그 검은 조각은 그의 손목에 완벽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피부와 하나가 된 듯한 보랏빛 문신은 희미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집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낯선 어둠 속을 향하고 있었다. 영원의 부름에 응답하듯, 검은 별의 속삭임에 이끌려. 그는 더 이상 김현우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단지 하나의 ‘문’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