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한밤의 기척

지훈은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좁은 현관에 몸을 구겨 넣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길고 지루한 하루였다. 열다섯 평 남짓한 아파트는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낡고 좁긴 해도, 세상의 온갖 소음과 피로로부터 그를 보호해주는 작고 안전한 요새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거실 한가운데 놓인 낡은 소파에 그대로 쓰러졌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오래된 형광등이 미미하게 깜빡였다. ‘이것도 조만간 갈아야 할 텐데.’ 그는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는 것. 그것이 그에게 허락된 하루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간단히 몸을 씻고 나온 지훈은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탄산 기포가 터져 나왔다. 한 모금 들이키자 고단했던 몸에 미미하게 생기가 도는 듯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를 아무렇게나 펼쳤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동자를 움직일 무언가가 필요했다.

밤 열두 시, 고요한 아파트는 적막 속에 잠겨 있었다. 옆집에서 들려오던 늦은 시간의 드라이기 소리도, 위층 아이들의 쿵쾅거리는 발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지훈의 숨소리와 잡지 넘어가는 소리, 그리고 간헐적인 냉장고 컴프레서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때였다.

‘툭.’

아주 작고 미미한 소리였다. 마치 손톱깎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가벼운 소리. 지훈은 고개를 들었다. 소파 옆 작은 협탁 위에 놓여있던 도자기 컵이 미세하게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가장자리에 바싹 붙어 있었다.

“내가 밀었나….”

술기운에 자신이 무심코 팔로 건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잡지로 시선을 돌렸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번엔 좀 더 확실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덜컹.’

거실 베란다 문이, 아주 느리게, 그리고 소름 끼치도록 조용하게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소리였다. 지훈은 순간 몸을 움찔했다. 분명히 잠그고 나왔다. 창문도 닫혀 있었다. 바람이 들어올 리도 없었다.

“뭐지?”

몸에 솟아나는 섬뜩한 기운을 애써 무시하며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란다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만져봤다. 잠금장치는 굳게 잠겨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열린 흔적은 없었다.

‘헛것을 들었나.’

피곤해서 예민해졌다고 생각했다. 다시 맥주를 마시려던 순간, 이번에는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다.

테이블 위에서 잡지가 스르륵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잡지를 잡아채듯, 아주 매끄럽게, 그리고 천천히 테이블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그리고 이내 바닥으로 ‘펄럭’ 떨어졌다.

지훈의 등골을 차가운 무언가가 기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맥주캔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술기운은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뭐야… 이게….”

그는 더듬거리며 잡지를 주우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잡지에 닿기도 전에, 잡지가 다시 스르륵, 테이블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깔린 카펫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소파 아래 어두운 틈새로 사라져 버렸다.

지훈은 굳어버린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건 단순한 착각도, 피로에 의한 환각도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이었다.

그때였다. 닫혀있던 부엌 수납장의 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서 굴러 떨어진 숟가락 하나가 바닥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곧이어 그릇들이 흔들리는 소리, 컵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 없이 울려 퍼졌다. 마치 누군가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분주하게 수납장 안을 휘젓는 소리였다.

지훈은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다리는 땅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 누구세요…?”

갈라진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부엌에서 나는 그릇들의 소리만이 점점 더 격렬해질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분노에 차서 마구잡이로 던지는 듯한 소리였다.

‘콰앙!’

갑자기 거실 정면에 걸려있던 액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벽에서 떨어져 내렸다. 유리가 박살나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액자 안에는 평화롭게 웃고 있는 지훈의 가족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은 이제 깨진 유리 조각들 사이에서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지훈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눈앞에서, 명백한 물리적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귀신이 아니라, 어떤 강력한 ‘힘’이었다.

그때였다.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던 낡은 좌식 테이블이 공중으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테이블은 마치 중력을 거부하듯, 흔들림 없이 수십 센티미터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섬뜩할 정도로 우아하게, 지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눈앞에는 테이블 하부의 낡은 나무 결이 선명하게 보였다. 퀴퀴한 나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테이블은 지훈의 얼굴 바로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미미하게, 아주 미미하게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고개를 젓는 것처럼.

그 순간, 지훈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단순히 차갑거나 섬뜩한 기운이 아니었다. 너무나 거대하고, 너무나 오래되고, 너무나 강력한 무언가. 인간의 것이라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태초의 자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웅장하고도 신비로운 기운이었다. 그의 몸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전율하게 만드는,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이 가장 강렬해지는 순간, 떠 있던 테이블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거실 벽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콰자자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은 벽에 박힌 채 산산조각 났다. 나무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벽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낡은 벽지가 너덜너덜하게 찢겨 나갔다.

지훈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의 작은 안식처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의 평범한 일상은, 이 끔찍하고 기괴한 현상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헐떡였다. 두려움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깨진 테이블, 부서진 액자, 열려진 수납장.

그리고 그 모든 혼돈의 중심에서, 그의 눈은 작은 베란다 문을 향했다. 아까 분명히 잠겨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 문.

베란다 문은 이제 활짝 열려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거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 지훈의 귓가에 닿는, 아주 미약하지만 또렷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마치 수천 년을 기다려온 듯한, 아주 오래된 언어의 조각들이었다.

*…기…운…*
*…찾…아…라…*
*…나…의…것…*

지훈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 속에서, 그 낯선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애썼다. 베란다 밖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깥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아파트를 넘어, 이 도시의 밤 속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무서웠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