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천룡산맥. 아홉 개의 봉우리가 용처럼 솟아 천공을 가르는 그 웅장한 기세는 예로부터 신령한 기운이 깃들었다 하여 속세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신비로운 침묵은 수십만 인파의 웅성거림과 진동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하늘에 닿을 듯 치솟은 주작 문. 붉은 칠이 벗겨지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거대한 목조 문을 통해, 사람들은 드넓게 펼쳐진 대연무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돌과 나무, 그리고 알 수 없는 신비한 광물로 지어진 연무장은 거대한 원형 경기장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정중앙에는 백여 장 길이의 거대한 비무대가 굳건히 자리하고, 그 주위를 겹겹이 에워싼 관중석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져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다시 한번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릴 대사건이 시작된다.
운룡대회(雲龍大會).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 고수들의 무술 대회.

그 이름 앞에 어느 누구도 경외심을 숨기지 못했다. 수백 년 전, 중원과 강호가 수십 년에 걸친 전란으로 피폐해지고 제국과 문파들이 모두 멸문에 이를 지경에 처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신비로운 무림맹이 제시한 평화의 해법이었다.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려 들지 말고, 열강과 각 문파를 대표하는 최고수들이 겨루어 그 승자가 향후 오십 년간 천하의 질서를 주도할 권한을 갖는다는 기상천외한 제안. 처음에는 비웃음과 반대가 빗발쳤으나, 그 제안을 거부하고 무력만을 숭상하던 세력들이 하나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운룡대회는 점차 정례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오십 년의 시간이 흘러 아홉 번째 운룡대회의 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대연무장 서남쪽, 일반 관중석보다 한층 높이 솟아오른 귀빈석.
비단 장막이 드리워진 그곳에는, 중원 제국 ‘천조(天朝)’의 황제를 대리한 대사(大使)와 북방 유목 민족 ‘철가(鐵伽)’의 대칸, 동해를 건너온 ‘일도(一道)’ 제국의 쇼군 대리, 그리고 강호 무림의 정파와 사파를 대표하는 문파의 수장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겉으로는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은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대회의 판세는 예측 불가로군.”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천조의 대사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옆에는 황실 직속의 최고수로 이름 높은 금위대장이 시립해 있었다.

“정파는 청룡파의 맹주, 혁무진이 출전하고, 사파에서는 혈마교의 교주, 염라가 직접 나왔습니다. 북방에서는 철가십왕 중 최강으로 불리는 야수왕이, 일도 제국에서는 천 년 검성이라 칭송받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나섰으니,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균형입니다.”

금위대장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는 대회에 출전하는 고수들의 이름을 읊는 것만으로도 살벌한 기운을 느꼈다. 모두가 천하의 명운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절대자들이었다.

그때였다.
정적만이 가득했던 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리는 징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웅성거리던 군중이 일제히 침묵했다. 수십만 명이 내쉬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한 완벽한 고요.

수십 명의 붉은 도포를 두른 의장대가 위엄 있는 걸음으로 비무대 정중앙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선두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그의 등에는 낡았지만 기품 있는 검 한 자루가 짊어져 있었다. 굳게 닫힌 눈, 메마른 얼굴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으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여덟 번째 운룡대회의 심판이자, 천룡산맥에 자리한 무명(無名) 문파의 마지막 전승자로 알려진 ‘운암도인’이었다.

운암도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이 허공을 가르며 관중석을 훑는 순간, 모든 이들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압도적인 기운을 느꼈다.

“오늘, 아홉 번째 운룡대회의 서막이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늙었으나, 산맥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기백이 서려 있었다.

“오십 년 전, 우리는 피로써 맹세했다. 무력은 억압이 아닌, 질서를 세우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그 질서마저도 오십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흔들리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가!”

운암도인의 말에는 깊은 한숨과도 같은 탄식이 묻어 있었다.

“이번 운룡대회의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취할 수 있다. 땅과 재물은 물론이요, 문파의 존립까지도. 오로지 승자만이 새로운 천하의 질서를 논할 자격을 얻을 것이다!”

장내에 다시 한번 술렁임이 일었다. 이전 대회와는 차원이 다른 살벌한 조건이었다. 승자가 패자의 모든 것을 취한다? 그것은 사실상 승자의 의지대로 천하가 재편된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단순한 무위의 겨룸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건 생존 경쟁이 된 셈이었다.

“규칙은 단 하나다.”
운암도인이 엄숙하게 선언했다.
“비무대 위에서 죽음 외에는 어떤 것도 승패를 가를 수 없다. 승자는 오직 단 한 명,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뿐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거대한 연무장 전체를 뒤흔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광기에 가까운 열기, 그리고 차가운 피 냄새가 뒤섞인 듯한 기운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그때, 귀빈석의 가장 구석,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그림자 속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깊은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눈빛은 칼날처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그의 이름은 진무영(陳武影).
무림의 그 누구도 그의 정확한 신분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기이한 행적 때문에 ‘무영객(武影客)’이라 불릴 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 있었다.

그는, 팔황(八荒)의 그 어떤 고수보다도 강하다는 것.
그리고 그는, 이번 운룡대회의 숨겨진 아홉 번째 참가자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해서는 안 되는 존재.

“첫 번째 비무! 천조 제국의 금위대장, ‘철혈신검’ 묵운과 북방 철가십왕 중 한 명인 ‘폭풍광전사’ 아타르의 대결이다!”

운암도인의 목소리에 이어, 연무장 입구에서 두 명의 거한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한 명은 단정한 검은 제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 다른 한 명은 짐승 가죽을 걸치고 거대한 전곤을 든 사내였다.
둘은 비무대 중앙에서 마주 섰고, 그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연무장 전체를 얼어붙게 할 듯했다.

진무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이 대회가 단순한 무술 대회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전쟁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한복판에, 그 자신이 서 있어야만 했다.

‘나의 검이… 과연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까.’

그의 시선은 비무대 위에 선 두 고수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잊고 싶었던 과거의 잔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와 절규, 그리고 비극으로 얼룩진 기억들이.

운룡대회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