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도시 한복판, 숲의 왕자님은 위험하다
**작가: 현성아**
하나의 심장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갈 길을 잃은 고양이처럼 두근거렸다. 어젯밤, 류진의 눈빛은 너무나 선명해서 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깊고 푸른, 마치 태초의 숲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한 그 눈동자. 그리고 그가 살짝 기울였던 몸, 닿을 듯 말 듯했던 숨결…
침대 위에서 이불을 발로 뻥 차며 몸을 뒤척였다.
“흐아악! 미쳤어, 이하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누가 보면 실성한 줄 알 정도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젯밤 일은 분명 ‘썸’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기묘한 잔상을 남겼다. 그의 피부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 찰나였지만 귓가를 스치던 묘한 풀내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잠시 스쳐 지나갔던 벽에, 연한 푸른빛의 덩굴이 스르륵 피어나는 것을 그녀는 분명 보았다.
*설마,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아니야, 아니었어!*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켰다. 평범한 연애도 버거운 그녀에게, 이제는 비범한 남자라도 나타난단 말인가. 그것도…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는 존재?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설마 내 삶에?
그때, 휴대폰이 ‘톡’ 하고 울렸다. 액정을 확인하자 ‘류진’이라는 이름과 함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오늘, 저와 함께 도시를 탐험해 주시겠습니까?]
간결하면서도 묘하게 권위적인 문장. 이모티콘 하나 없는 깔끔한 폰트는 오히려 류진스러운 느낌이었다.
하나의 심장이 또다시 쿵, 하고 떨어졌다. 탐험이라니. 마치 그녀를 가이드 삼아 이 도시를 관찰하려는 듯한 어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설렘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인간이 아니든, 외계인이든, 요정이든! 이 남자가 좋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좋아, 탐험해 주지! 네 정체를 파헤쳐 주겠어!”
비장하게 선언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
약속 장소는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꽤 유명한 카페였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커피 향, 그리고 온갖 인공적인 향수 냄새가 뒤섞인 공간. 류진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그의 은발 머리카락에 부서져 반짝였고, 마치 그림처럼 완벽한 옆모습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그녀에게 향하자, 심장이 또 한 번 발작했다.
“오셨군요, 이하나 씨.”
“네, 류진 씨.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단 3분 17초만이었습니다.”
그의 칼 같은 답변에 하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류진스러웠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류진의 앞에는 왠지 모르게 한 번도 손대지 않은 듯한 에스프레소 잔이 놓여 있었다.
“류진 씨, 주문 안 하셨어요?”
“했습니다. 이 검고 쓴 물이 인간이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라고 하여… 시도해보았습니다만.”
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제게는 그다지 유익하지 않은 맛이군요.”
하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솔직함은 늘 예상 밖이었다.
“크흠… 그럴 만도 해요. 에스프레소는 좀 쓰고 강하죠. 제가 다른 거 추천해 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과일향이 나는 에이드와 달콤한 케이크를 추천했다. 류진은 그 모든 과정을 흥미로운 관찰자처럼 지켜봤다. 케이크가 나오자 그는 포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망설였다.
“이것이… 인간의 달콤한 유혹이라는 것인가요?”
“네, 맞아요. 한 번 드셔보세요. 스트레스 풀리는 맛이에요.”
류진이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놀랍군요. 이… 기묘한 단맛은… 숲의 달콤한 이슬보다도 강렬하군요.”
그는 그 ‘기묘한 단맛’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케이크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하나는 그의 의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에 고정됐다.
“류진 씨?”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작은 파리가 테이블 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 순간, 류진의 눈동자에 찰나의 푸른 섬광이 스쳤다. 그의 손이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갈 뻔했지만, 이내 멈칫하며 컵을 잡는 시늉을 했다. 하나는 그 미묘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저건… 벌레를 잡으려던 동작이었나? 파리 한 마리에 저렇게까지?*
왠지 모를 위화감에 하나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류진 씨는… 혹시 특이한 취미 같은 거 있으세요?” 하나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류진은 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특이한 취미라… 밤에 숲을 거니는 것?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 혹은… 풀잎의 성장 과정을 관찰하는 것?”
그의 진지한 답변에 하나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숲, 밤, 풀잎… 누가 봐도 도시인과는 거리가 먼 취미였다.
*정말 농담이 아니었어. 이 남자… 심상치 않아.*
그녀의 머릿속에서 ‘비인간설’의 조각들이 점점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
카페를 나와 두 사람은 공원으로 향했다. 류진은 복잡한 도심의 소음보다 훨씬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눈은 마치 고향을 찾은 듯 푸른 나무들과 풀밭에 고정되었다.
“이곳은… 좋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군요.”
그가 만족스러운 듯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도시의 탁한 공기 속에서도 그는 마치 숲속에 온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류진의 시선이 옆쪽 화단에 멈췄다. 작은 데이지 꽃 한 송이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 꽃잎을 살짝 쓰다듬었다. 놀랍게도,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꽃잎의 색이 조금 더 선명해지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꽃송이가 미약하게나마 생기를 되찾는 듯 보였다.
하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류진 씨… 방금… 뭐 하신 거예요?”
류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거두며 말했다.
“시들어가기에, 잠시 생기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생기를 나누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녀의 등골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건 정말 단순한 우연이나 착각이라고 둘러댈 수가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꽤나 사납게 생긴 길고양이였는데, 류진을 발견하자마자 발걸음을 멈추더니 털을 바짝 세우고 경계했다. 그런데 류진이 고양이를 향해 손을 살짝 뻗자, 고양이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털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류진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다리에 몸을 비비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오랫동안 따르던 주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하나가 입을 떡 벌렸다.
“우와… 류진 씨, 고양이들이랑도 친하세요? 저 고양이, 원래 엄청 경계심이 심하거든요!”
류진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저… 제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뿐입니다.”
*누구인지 알아봤다고? 그럼 이 고양이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말이야?*
이제는 의심을 넘어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분명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하나의 머릿속이 수많은 의문표로 가득 찼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끌림이 뒤섞여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하나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류진 씨… 저 솔직히 말할 게 있어요.”
류진은 고양이에게서 손을 떼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그녀의 심장을 꿰뚫는 것 같았다.
“네.”
“류진 씨… 솔직히 말해주세요. 류진 씨, 사람… 맞아요?”
정적이 흘렀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마저 멈춘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류진의 표정에는 아주 미세한 떨림이 스쳤다. 마치 파도 없는 호수에 작은 돌멩이가 던져진 것처럼.
그는 천천히 하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시원하면서도 미묘하게 온기가 느껴졌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낯선 감각에 하나의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렸다.
“하나는… 때때로 위험한 질문을 하는군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궁금해하는 것만큼… 나 역시 궁금한 게 많아요. 인간의 세상, 그리고 당신의… 감정들.”
그의 시선이 하나의 눈동자에 깊숙이 박혔다.
“우리 종족에게… 인간과의 깊은 교류는 금지되어 있어요. 특히, 마음을 나누는 것은… 더더욱.”
그의 말에 하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금지된 사랑.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단어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끓어오르는 도전의식과 사랑의 감정이 그녀를 지배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나눠버렸다면요?”
하나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에는 단단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그림자가 스쳤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하나의 뺨을 감쌌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스치자, 묘한 떨림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이하나.”
그의 목소리가 숲의 속삭임처럼 귓가를 간질였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듯 공원 전체에 섬뜩할 정도의 한기가 스쳤다. 나무들이 맹렬하게 흔들리고, 저 멀리서 천둥소리 같은 묵직한 울림이 들려왔다. 새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솟구쳤고, 고양이는 털을 바짝 세우고 류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류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요.”
그는 하나의 손목을 꽉 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돌아가야 해, 지금 당장.”
하나의 심장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전율이 그녀를 감쌌다.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은,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류진에게 이끌려 공원을 벗어났다. 도시 한복판, 눈부신 햇살 아래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이 남자는, 사실… 가장 위험하고도 가장 아름다운 숲의 왕자님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금지된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