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톱니바퀴
아르카나의 붉은 노을이 고대 브론즈와 증기로 얼룩진 도시의 첨탑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수천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증기 기관이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 그리고 어딘가에서 터져 나오는 기계장치들의 마찰음이 거대한 심포니처럼 도시를 감쌌다. 이 거대한 기계 도시의 심장부, 가장 높고 웅장한 곳에 자리한 것이 바로 엘도리아 마법 공학원이었다.
이안은 삐걱거리는 강의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창밖으로 펼쳐진 아르카나의 전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증기와 연기로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 너머로, 수십 개의 거대한 비행선들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도시 곳곳의 굴뚝에서는 끈끈한 검은 연기가 쉼 없이 솟아올랐다. 이곳 엘도리아 학원은 그 모든 소란과 오염 위에 군림하는, 순수하고 정제된 지식의 전당처럼 보였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이안, 내 말 듣고 있나?”
묵직한 목소리가 이안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눈을 돌리자, 발레리우스 교수님의 싸늘한 시선이 자신에게 꽂혀 있었다. 교수의 날카로운 턱선과 팽팽하게 당겨진 수트 차림은 언제나 완벽했지만, 그만큼 숨 막히는 위압감을 풍겼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이안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교수는 흠, 하고 콧소리를 냈다.
“좋다. 다시 설명하지. 에테르 전류의 유동성을 제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학적 동조화다. 자네의 실기 능력은 칭찬할 만하지만, 이론적 기반이 흔들리면 결국 한계에 부딪힐 게다. 이안, 자네는 특기생으로서 다른 학생들보다 더 노력해야만 한다.”
이안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학원 대부분의 학생들은 귀족이거나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 가문 출신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달랐다. 도시의 변두리, 낡은 공방에서 아버지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우연히 발견한 고물 시계 태엽으로 정교한 자동 인형을 만들어 엘도리아 입학 시험에 합격했다. 이곳에서 이안은 언제나 ‘외부인’이었고, ‘특기생’이라는 꼬리표는 그에게 끊임없는 압박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흩어졌다. 이안은 늘 그렇듯 마지막까지 남아 노트 정리를 했다. 교실을 나서려는데, 저편에서 클라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 오늘 도서관에 들를 예정이니? 새로 발굴된 증기 제련법에 대한 고문서가 나왔다는데, 함께 볼까?”
클라리스는 금발을 정갈하게 묶고 반짝이는 브론즈 안경을 쓴 소녀였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과 귀족 가문의 배경을 모두 가진, 엘도리아의 전형적인 우등생이었다. 이안과 달리 이론에도 강했고, 실기에도 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이안에게 친절했다.
“아, 미안.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아. 개인 프로젝트 때문에.”
이안은 손에 들린 작은 톱니바퀴를 만지작거렸다. 어제부터 그의 조그만 자동 올빼미 ‘틸리’가 이상 증세를 보였다. 틸리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낡은 시계 부품으로 만든 이안의 유일한 친구이자 조수였다. 학원 내에선 자동 인형 소유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틸리는 워낙 작고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어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틸리의 눈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이상하게 깜빡거렸고, 날개짓도 불안정했다. 어쩌면 핵심 동력 장치의 교체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클라리스는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다음에.”
클라리스가 떠나자, 이안은 틸리를 꺼내 살폈다. 틸리는 이안의 어깨에 앉아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어디 보자, 뭐가 문제일까.” 이안은 틸리의 배 부분에 있는 작은 패널을 열었다. 복잡한 마이크로 톱니와 에테르 전도체가 섬세하게 얽혀 있었다. 그 중 하나의 나사가 살짝 풀려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틸리의 작은 몸체가 크게 한 번 흔들렸다.
“어이쿠!”
틸리는 이안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틸리의 몸에서 핵심 동력 장치인 에테르 코어가 튕겨 나왔다. 코어는 바닥을 굴러, 복도 끝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젠장.”
이안은 급히 코어를 쫓아 달려갔다. 코어는 복도의 구석, 잘 쓰이지 않는 낡은 문틈으로 굴러들어갔다. 먼지가 가득 쌓인 문은 덩굴 문양의 복잡한 놋쇠 장식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녹이 슬고 낡아 있었다.
“이런 문이 있었나?”
이안은 엘도리아 학원의 모든 구조를 꿰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 문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마치 건물 외벽과 동떨어진 듯,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문 위에는 낡은 표지판이 걸려 있었지만,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글자가 희미하게 지워져 있었다. 겨우 ‘출입 금지. 지하 통로’라는 단어만 읽을 수 있었다.
출입 금지? 엘도리아에는 연구실, 기계 공방, 실험실 등 수많은 금지 구역이 있었지만, 이런 낡고 초라한 문은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이안은 문고리를 잡았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서는 눅눅하고 축축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오래된 금속과 곰팡이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풍기는 알 수 없는 약품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문 안쪽은 길고 좁은 나선형 계단이었다. 낡은 촛대만이 희미하게 길을 밝히고 있었고, 촛불의 깜빡임에 따라 벽에 걸린 거미줄 그림자가 춤을 췄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의 돌은 축축했고,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학원 건물 전체가 기계적인 정교함과 깔끔함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이 지하 통로의 원시적인 분위기는 더욱 이질적이었다.
“틸리… 코어…”
작게 중얼거리며 내려가던 이안은, 문득 이상한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아주 희미하게, 저 아래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였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느리게 움직이는 듯한 둔탁한 윙윙거림, 그리고 그 사이에 섞인 규칙적인 ‘두근거림’. 마치 심장 박동과 거대한 톱니바퀴가 동시에 돌아가는 듯한 소리였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더 내려갔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졌다. 축축한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고, 이안의 폐 속으로 쇠 비린내 같은 것이 스며들었다. 계단의 벽에는 희미한 빛을 내는 이끼 같은 것이 붙어 있었고, 간간히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마법 문양과는 확연히 달랐다. 원시적이고, 불길하며,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주는 기호들이었다.
이안은 마침내 계단의 끝에 다다랐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기계장치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곳은 온통 낡은 브론즈와 녹슨 철근으로 뒤덮인 거대한 동굴 같았다. 습기 찬 공기 속에서 기계장치들이 느릿하게 움직였고, 간헐적으로 희미한 푸른빛이 번쩍이며 그림자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서, 거대한 쇠사슬에 묶인 채 축 늘어져 있는 거대한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기계이면서도 동시에 살아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불규칙한 금속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마치 혈관처럼 보이는 굵은 튜브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튜브 안에는 푸른 액체가 느리게 순환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이안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물체는 규칙적으로 ‘두근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이안의 심장 박동과 동기화되는 듯했다. 불쾌하고 기괴한 느낌이었다. 그때,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주변의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번쩍였다. 동시에, 이안은 코어를 발견했다. 그의 손에서 떨어졌던 틸리의 에테르 코어가 바로 그 거대한 물체 아래, 차가운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었다.
이안은 무의식적으로 코어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포효가 지하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안의 귀가 먹먹해지고, 몸이 휘청거렸다. 바닥이 진동하고, 천장의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그 포효는 단순한 짐승의 소리가 아니었다. 기계적인 금속음과, 피에 굶주린 생명체의 울부짖음이 뒤섞인, 끔찍하고 불경한 소리였다.
이안은 얼어붙었다. 그 소리는 정확히, 거대한 물체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쇠사슬에 묶인 그 기괴한 존재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몸부림쳤다. 금속판들이 뒤틀리고, 굵은 튜브들이 찢어질 듯 팽창했다. 거대한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쩍였고, 이안의 존재를 향해 무언의 경고를 보내는 듯했다.
이안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공포가 온몸을 마비시켰다. 그는 코어를 줍는 것도 잊은 채,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계단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금속 마찰음과, 점점 더 커지는 ‘두근거림’이 그의 등을 쫓아왔다.
“젠장… 젠장!”
나선형 계단을 미친 듯이 오르던 이안은, 마침내 지상의 문턱에 다다랐다. 쿵, 하고 문을 닫자, 바깥의 평화로운 복도와 안쪽의 지옥 같은 공간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문에 기대선 이안은, 떨리는 손으로 겨우 틸리를 품에 안았다. 틸리는 여전히 눈을 깜빡였지만, 그 빛은 이전보다 더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이안은 문득, 자신의 손에 흙먼지와 함께 묻어 있는 희미한 푸른 액체를 발견했다. 튜브 속을 흐르던 바로 그 액체였다. 그것은 차가웠고, 이상한 금속성의 비린내가 났다. 그리고 그 냄새는 왠지 모르게, 그의 심장을 죄어오는 듯한 기분 나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엘도리아 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안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곳은 결코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이었고,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을.
그의 등 뒤, 낡은 문 너머에서 여전히 희미한 ‘두근거림’이 전해져 오는 듯했다. 마치 학원 건물 전체가 그 거대한 심장 위에 세워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심장은, 마치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