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과 고대 암석이 뒤섞인 ‘청룡루’의 거대한 돔형 천장이 어둠을 뿜어내고 있었다. 밖은 망자들의 비명과 썩어가는 살 냄새로 가득한 지옥이었지만, 이곳만큼은 과거의 영광을 억지로 부여잡은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지배했다. 수만 개의 좌석을 가득 메운 무림인들은 저마다 창백한 얼굴로 아레나 중앙을 주시했다.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패왕전, 그 세 번째 맹주 결정전의 서막이 지금 막 오르려 하고 있었다.
아레나 중앙, 거대한 원형 투기장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한쪽에서는 화산파의 차세대 검선(劍仙)이라 불리는 ‘천뢰검’ 단우명(丹宇明)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눈매, 도도하게 치켜든 턱, 그리고 허리에 매달린 뇌광검(雷光劍)이 그의 젊은 혈기와 오만을 동시에 내뿜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한 손을 들어 관중들에게 인사했지만, 그 몸짓에는 존중보다는 ‘나는 이미 승리했다’는 확신이 짙게 배어 있었다.
“쳇, 저 자만심 넘치는 꼬맹이 좀 봐라.”
관중석 한 켠에서, 낡은 가죽 갑옷을 걸친 중년의 사내가 혀를 찼다. 그는 과거 녹림의 거두였던 ‘흑풍대도’ 마광휘(馬光輝)였다. 그의 옆에 앉은, 온몸을 검은 도포로 가린 의문의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의 눈은 단우명의 오만함을 넘어,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운 검기(劍氣)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윽고, 반대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아레나 위로 드리워졌다. ‘흑수룡’ 백도건(白道建)이었다. 그의 별호처럼 검고 육중한 몸집은 마치 거대한 바위 같았다. 한 손에는 쇠사슬로 연결된 거대한 철퇴, ‘용아추(龍牙錘)’가 덜렁거렸다. 그는 단우명과는 달리 관중들에게 아무런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오직 상대를 향해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풍파와 망자들과의 사투가 새겨진 듯 거친 흉터가 가득했다.
두 사내가 아레나 중앙에서 마주 섰다. 팽팽한 기싸움이 허공을 갈랐다.
“화산파의 이름에 먹칠할 생각은 마라, 애송이.” 백도건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중압감이 실려 있었다.
단우명은 피식 웃었다. “녹림의 잡배가 무림패왕전의 아레나에 서는 것도 모자라, 감히 화산파의 후예에게 입을 놀리는군. 그 썩어가는 도복처럼 자네 무공도 녹슬었을 텐데.”
백도건의 눈이 번뜩였다. “녹슬었다고? 그래, 한번 시험해 봐라. 네놈의 그 건방진 검 끝으로 말이야.”
심판의 징이 울리고, 대결 시작을 알리는 묵직한 외침이 아레나를 뒤흔들었다.
“자, 시작한다!”
단우명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몸은 한 줄기 섬광처럼 아레나를 가로질렀다. ‘화산삼십육검(華山三十六劍)’의 첫 초식인 ‘청풍쾌검(淸風快劍)’이 작렬했다. 번개처럼 빠르게 뿜어져 나오는 검 끝은 마치 수십 개의 검이 동시에 춤추는 듯했다. 공기마저 찢어지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백도건을 향해 몰아쳤다.
그러나 백도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거대한 용아추를 든 팔을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묵직한 쇠사슬이 허공을 가르며 단우명의 검풍을 휘감았다. ‘흑수룡파(黑水龍派)’의 ‘용아교란추(龍牙攪亂錘)’였다. 단순한 파괴력뿐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궤적으로 상대를 혼란시키는 녹림의 교활함이 엿보이는 초식이었다.
챙! 챙! 챙!
뇌광검과 용아추가 부딪히는 쇠붙이 소리가 아레나를 가득 채웠다. 단우명의 검은 빠르고 날카로웠지만, 백도건의 용아추는 그 모든 공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쳐내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튕겨냈다.
“겨우 그 정도인가, 화산의 후예?” 백도건이 비웃듯 물었다. “이런 느려 터진 움직임으로는 망자들의 발톱 하나 베지 못할 게다.”
그 말에 단우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내공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뇌광검의 검기가 더욱 선명해졌다.
“건방진!”
‘화산파 일출검(華山派 日出劍)’! 햇살이 솟아오르듯 강렬하고 압도적인 검기가 백도건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 기세에 아레나 바닥의 견고한 암석조차 금이 가는 듯했다.
백도건은 짧게 기합을 내지르며 두 팔로 용아추를 번쩍 들어 올렸다. “흑수룡 파도추(黑水龍 波濤錘)!”
꽈아아앙!
용아추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강기(罡氣)가 파도처럼 일출검의 검기를 집어삼켰다. 두 무공의 충돌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아레나 전체를 뒤흔들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먼지가 걷히자, 두 사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만 단우명의 뇌광검은 날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백도건의 용아추를 쥔 팔뚝에는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라 있었다.
“꽤 하는군. 하지만 잔재주는 여기까지다.” 백도건이 다시 먼저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앞서보다 훨씬 빨라졌다. 용아추의 쇠사슬이 거대한 흑수룡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며 단우명을 포위했다. ‘흑수룡 승천추(黑水龍 昇天錘)’!
철퇴는 무섭게 회전하며 단우명의 사방을 봉쇄했다. 그 거대한 질량과 회전력은 마치 작은 회오리바람 같았다. 단우명은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막아냈지만, 사슬의 압박과 철퇴의 중압감에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크윽!”
단우명의 등 뒤로 아레나의 벽이 느껴졌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백도건의 비웃음 섞인 표정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젊은 검객의 오만함은 순식간에 분노와 초조함으로 변했다.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단우명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의 눈빛이 번개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뇌광검에서 푸른빛의 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화산파 최종 비기(秘技)… 뇌광참(雷光斬)!”
단우명이 짧게 외치자, 그의 몸에서 엄청난 내공이 터져 나왔다. 뇌광검은 빛을 집어삼킨 듯 푸른색으로 빛났고, 그가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 섬광이 번개처럼 번뜩였다. 단 하나의 검격이었지만, 그것은 마치 수십, 수백 번의 검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찌이이이잉-!
전기의 폭음과 함께, 단우명의 검이 백도건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절대적인 속도와 파괴력이었다.
백도건의 얼굴에서도 여유가 사라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모든 내공을 용아추에 집중했다.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철퇴에서 검은 강기가 폭발하듯 솟아올랐다.
“이 몸의 모든 것을 받아라! 흑수룡 벽력추(黑水龍 霹靂錘)!”
쿠구구구궁!
뇌광참의 번개와 벽력추의 거대한 파괴력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아레나의 바닥이 솟구치고, 대기는 비명을 질렀다. 관중들은 경악에 찬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이 무공의 격돌은 단순한 대결을 넘어선, 자연재해와도 같은 위력이었다.
잠시 후, 모든 소리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자욱했던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고, 아레나 중앙의 모습이 드러났다.
단우명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뇌광검은 그의 손에서 힘없이 떨어져 나갔고, 그의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 사이로 피가 흘렀다.
그의 앞에 선 백도건은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 특히 가슴팍에는 거대한 검붉은 화상 자국이 선명했고, 용아추의 쇠사슬은 중간이 끊어져 너덜거렸다. 하지만 그는 꼿꼿이 서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결국… 애송이는 애송이일 뿐이군.”
그리고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경기장 전체가 침묵에 잠겼다. 승자는 백도건이었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흡사 패배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관중들은 경악과 감동, 그리고 절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두 사내를 바라봤다.
“백도건 승!”
심판의 외침이 아레나를 울렸다. 그러나 그 외침은 승리의 환호성보다는, 이 처참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처럼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저 밖의 망자들의 세상처럼, 무림 또한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또 다른 거대한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었다. 최후의 결전, 무림패왕의 자리를 향한 끝없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