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최신 화.

아파트의 밤은 늘 그랬듯 눅진했다. 희미한 달빛조차 뚫지 못하는 두꺼운 커튼 뒤로, 저 아래 도로를 스치는 자동차들의 나른한 소리만이 가끔 침묵을 깨곤 했다. 지혜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린 채 침대에 웅크렸다. 잠을 잘 수 있을 리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서 마치 곧 폭발할 것 같은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렸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거실 테이블 위에 분명히 올려두었던 머그컵이 식탁 모서리까지 밀려 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도, ‘내가 깜빡하고 옮겼나?’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침실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바람이 불었나?’ 하고 애써 합리화했다. 하지만 바람 한 점 없는 고층 아파트에서, 그것도 안쪽으로 잠긴 문이 스스로 열릴 리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지혜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일은 도저히 눈을 감아 넘길 수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뒤로, 어렴풋한 그림자가 지나갔다. 분명 아무도 없었다. 혼자 사는 집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어붙은 채 거울을 노려봤지만, 이제는 희뿌연 수증기만 가득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에 몸을 떨며 서둘러 옷을 입었다. 그리곤 욕실 문을 잠그고 나왔는데…

쾅!

닫았던 욕실 문이 다시 거칠게 열렸다. 틈새로 보이는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보일러를 돌리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지혜는 그대로 현관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닫힌 문틈으로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 긁히고 찢어진 소리였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분명 한국어였다. 하지만 억양이 이상했다. 마치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간신히 재현해낸 듯한 어색함. 지혜는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무… 뭐야… 대체… 누구야…!”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 단어씩 내뱉었다. 욕실 안의 어둠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 기이한 목소리만 반복될 뿐이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 순간, 거실 쪽에서 “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깨진 유리 파편이 흩어지는 소리였다. 지혜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 거실의 불빛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얼핏 보이는 것은…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유리 화병이었다. 바닥에 산산조각 난 채, 물과 꽃잎이 흥건히 흩어져 있었다. 지혜는 화병이 저절로 깨졌다는 사실보다, 그 주위에 흩어져 있는 흙먼지 더미에 시선이 꽂혔다. 분명 몇 시간 전에 청소기로 밀었던 곳인데, 마치 오랫동안 방치된 낡은 집처럼 먼지가 수북했다. 그리고 그 먼지 사이로, 이상한 형태의 조각들이 보였다.

나무 조각? 아니, 좀 더 고대적인 질감이었다. 누군가 흙으로 빚은 듯한, 깨진 토기 조각 같았다.

“이게… 뭐야…?”

지혜가 흐릿한 불빛 아래로 한 발짝 다가갔다. 차가운 공기가 더 강하게 몸을 에워쌌다. 욕실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들려오는 찢어진 목소리는 이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듯했다.

“…돌아와… 제자리로… 돌아와… 잘못… 됐어…”

토기 조각들을 집어 들려는 순간, 거실의 불빛이 완전히 꺼졌다. 순식간에 암전된 공간. 지혜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그녀의 발치로 미끄러져 왔다. 차갑고, 길쭉한 것. 지혜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손을 뻗어 더듬거리자, 그것의 감촉이 느껴졌다. 낡은 실크였다.

“으아아악!”

그녀의 손에 잡힌 것은 낡고 해진 저고리 한 자락이었다. 분명히 오래된 옷이었다. 잿빛으로 바래고, 해진 실밥이 튀어나온. 마치 땅속에서 방금 파낸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지혜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것을 던져버렸다.

그때, 갑자기 집 전체의 전기가 나간 것처럼 모든 불이 꺼지더니, 다시 한 번 번쩍! 하고 들어왔다.

놀라운 것은, 거실의 풍경이었다. 깨진 화병도, 흙먼지도, 낡은 저고리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지혜가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낡은 서랍장이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서랍장 위에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유리 화병이 원래 있던 것처럼 놓여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혜는 굳은 몸으로 거실을 둘러봤다. 욕실 문은 완전히 닫혀 있었다. 심지어 잠겨 있었다. 방금 전까지 들렸던 찢어진 목소리도, 차가운 공기도, 깨진 화병도, 흙먼지도, 낡은 저고리도… 모두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꿈… 이었나…?”

하지만 심장이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지혜는 휘청거리며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대체 이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환각? 아니면…

그녀의 눈에, 닫힌 욕실 문 옆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벽지 위,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희미한 얼룩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진흙 묻은 손으로 짚고 간 듯한, 손자국 같았다.

그리고 그 손자국 옆으로, 붓으로 휘갈겨 쓴 듯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니, 글자가 아니었다. 문양이었다. 복잡하고 기괴한 형태의 문양. 마치 고대 주술에서나 볼 법한 상징이었다.

그녀가 그 문양에 손을 뻗는 순간, 집 안 전체에 섬광이 터졌다. 눈을 감을 새도 없이 강렬한 빛이 지혜의 시야를 잠식했다.

“크악!”

눈을 떴을 때, 지혜는 자신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이불은 목 끝까지 덮여 있었고, 밖에서는 자동차 소리가 나른하게 들려왔다.

모든 것이 제자리였다. 심지어 잠옷도 방금 전 입었던 것이었다.

“내가… 잠든 건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머리맡 협탁 위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이 갑자기 번쩍이며 화면이 켜졌다.

잠금 화면에는 수십 개의 부재중 전화 기록이 떠 있었다. 모두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이었다.

그리고 그 부재중 전화 목록 아래, 메시지 알림이 하나 깜빡였다.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 *새로운 메시지*

지혜는 손을 뻗어 겨우 스마트폰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잠금 해제를 하자, 메시지 창이 열렸다.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

보낸 시간: *방금*

내용: *네가… 그곳에 있는 한… 우리는… 계속… 만날 거야…*

그 순간, 거실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가깝고, 생생하게.

동시에, 지혜의 침대 아래에서 섬뜩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침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침대 밑 어둠 속에서, 낡은 저고리 한 자락이 스르륵 미끄러져 나오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