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심연의 노래 (제23화)

공기는 끈적했다. 익숙한 흙먼지 냄새나 축축한 암반의 비린내가 아니었다. 차갑고 비릿하면서도, 동시에 코끝을 스치는 희미한 금속성 향이 미로처럼 얽힌 폐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강민준은 후드를 더 바싹 조여매며 미지의 감각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게… 대체.”

윤세아의 목소리는 드물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다기능 스캐너의 액정은 난리라도 난 듯 붉은 경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주파수, 에너지, 심지어는 미세한 자기장까지 모든 수치가 비정상적인 범위를 뚫고 치솟는 중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거대한 육각형의 공간이었다. 전등도 없는 어둠 속에서도 육중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헤드랜턴이 비추는 빛의 가장자리 너머로 끝을 알 수 없는 흑요석 같은 벽면이 아득하게 이어졌다. 지금까지 탐사했던 그 어떤 고대 유적과도 달랐다. 투박한 돌과 흙, 오랜 세월이 빚어낸 퇴락의 미학은 이곳에 없었다. 대신 완벽하게 매끄럽고, 이질적이며, 살아있는 듯한 건축물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서는 손가락 굵기의 가느다란 홈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그 홈들 사이로는 파르스름한 빛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생물의 혈관 같았다. 그 빛은 우리를 향해 느리게 뻗어 오기도 하고, 다시 안쪽으로 스며들기도 하며 미묘한 리듬을 탔다.

“스캐너가 완전히 맛이 갔어. 이런 에너지 패턴은 처음 봐요. 이건… 자연적인 게 아니야.” 세아는 허공에 대고 손을 젓더니, 급기야 스캐너를 끄고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아예 시스템 오류가 날 지경이야. 뭔가가 전자기기를 방해하고 있어.”

민준은 헤드랜턴을 위로 비춰 올렸다. 까마득히 높은 천장, 육각형의 모서리마다 거대한 기둥들이 솟아 있었다. 기둥들은 복잡한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문양들 사이에서도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흡사 잠들어 있는 거대한 기계 장치의 코어 같았다.

“잠깐.” 민준은 걸음을 멈췄다. “여기… 노래가 들려.”

“노래요?” 세아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난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아니, 정확히는… 소리 같은 게 느껴져. 아주 낮고, 느린 울림. 심장에서 울리는 것처럼.”

세아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민준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예민했던 그의 감각은 이런 미지의 공간에서 유독 빛을 발하곤 했다. 그는 알 수 없는 ‘울림’을 따라 움직였다.

육각형 공간의 중앙, 거대한 바닥에 틈새가 나 있었다. 마치 땅이 벌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틈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이음매 없이 연결된 육중한 판이었다. 그 판의 가장자리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은 점멸하는 게 아니라, 마치 수증기처럼 미묘하게 움직였다.

민준은 판 가까이 다가섰다. 발 밑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이 아까 그 ‘노래’의 근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여기 뭐가 있어.” 민준이 손을 뻗어 판의 표면을 쓸었다. 차갑고 매끄러웠다. “들어봐, 세아. 이 진동.”

세아가 귀를 바닥에 대고 한참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희미하게 느껴져요. 박동 같아요. 거대한 심장이 뛰는 것처럼.”

“맞아. 딱 그 느낌이야.”

그때였다. 민준의 손이 닿았던 판의 표면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기묘한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려한 곡선과 기하학적인 도형이 뒤섞인 문양이었다. 순식간에 판 전체로 퍼져나가며 빛을 뿜었다.

“이게 뭐야?” 세아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문양이 만들어내는 빛이, 놀랍게도 민준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혈관을 따라 미지근한 에너지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고통은 아니었지만, 압도적인 감각이었다.

“강민준 씨! 괜찮아요?” 세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눈앞의 문양이 순식간에 변화하며 마치 거대한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었다. 어떤 지도 같기도 했고, 어떤 기계의 설계도 같기도 했다. 복잡하고 난해한 정보들이 민준의 뇌리에 강제로 주입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노래’가 더욱 강렬해졌다. 낮고 웅웅거리던 진동이 이제는 귀청을 때리는 듯한 굉음으로 변했다.

콰앙!

천장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육각형 공간의 모서리에 솟아 있던 기둥들에서 파란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섬광이 걷히자, 기둥의 벽면이 열리며 거대한 틈새가 드러났다.

틈새 너머에는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크으으으…”

낮고 굵은 신음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소름 끼치도록 이질적인 소리였다. 헤드랜턴의 빛이 미약하게나마 어둠 속 존재의 일부를 비췄다. 매끄럽고 검은 금속질의 몸체, 그 사이에 박혀 있는 붉은색의 섬광. 분명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기계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문명에서도 본 적 없는, 거대하고 위협적인 형태의 기계였다.

“저게… 뭐야?” 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민준은 온몸에 흐르는 에너지를 느끼며, 동시에 섬뜩한 예감을 받았다. 거대한 심장이 뛰는 이 공간, 그리고 깨어난 미지의 존재.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이 판을 건드린 대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문양은 여전히 그의 눈앞에서 격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 문양 속에 숨겨진 메시지가 절박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도망쳐. 혹은, 맞서 싸워라.*

어둠 속에서 깨어난 기계 존재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우리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거대한 철골이 비틀리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세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튀어! 세아!”

하지만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안에 스며든 미지의 에너지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의 시선은 허공에 떠오른 문양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문양 속에, 이 상황을 타개할 열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쿵, 쿵.

거대한 기계 존재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거대한 육각형 공간을 뒤흔들었다. 발소리 하나하나에 심연의 노래가 맞춰 울리는 듯했다. 민준은 이를 악물었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야 한다.

“세아, 저 기계… 어디가 약점인지 보여?”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세아는 스캐너가 먹통이 된 상황에서 맨눈으로 어둠 속 존재를 응시했다. 공포에 질려 있으면서도, 그녀의 눈은 이미 분석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그녀였다.

“몰라요! 하지만… 저 붉은 빛. 뭔가 중요해 보여요!”

어둠 속에서 붉은 섬광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그 빛은 마치 거대한 기계의 눈동자처럼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민준은 자신에게 스며든 알 수 없는 힘을 느끼며, 다시 한번 홀로그램 문양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문양의 한 귀퉁이에서, 방금 세아가 말했던 ‘붉은 빛’과 유사한 형상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설마… 이 힘을 써서 저 녀석을 막으라는 건가?*

민준은 전신의 힘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손끝으로 모여드는 것을 자각했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심연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 고대 유적의 심장부에서, 잊혀진 문명의 비밀과 함께 새로운 위협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신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