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이 무자비한 대지를 긁어대는 소리가 황량한 공기 속으로 찢어졌다. 우주선 ‘황금빛 새벽 호’는 붉은 황무지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착륙 준비 완료를 알리는 제로의 건조한 목소리가 함선 내부에 울렸다.
“선장님, 대기권 진입 완료, 착륙 직전입니다. 대기 성분 분석 결과, 호흡에는 지장 없으나 외부 기온 영하 40도, 강한 플라즈마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알았어, 제로. 비상용 히트팩 단단히 챙겨. 클레어, 유적 데이터 다시 한번 확인해.” 선장 이사벨의 목소리는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조종석 앞 유리 너머로 펼쳐진 붉은 행성의 풍경을 응시했다. 거대한 협곡과 기이한 암석들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이곳은 은하계 지도에서도 지워진, 이름 없는 행성이었다.
“네, 선장님. 기록상으로는… 이곳은 ‘잊혀진 자들의 행성’으로 불렸습니다. 마지막 탐사선이 접근한 게 3천 년 전, 이후 모든 기록이 소멸되었고 행성 자체도 삭제되었죠. 저희가 포착한 미약한 에너지 신호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잊혔을 겁니다.” 클레어는 홀로그램 패드를 조작하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은 고대 문명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흥미롭군. 이렇게 철저하게 숨기려는 흔적이 역력해. 대체 뭘 감추고 싶었던 걸까?” 카이가 감탄하듯 읊조렸다. 그는 젊은 탐사 전문가로, 언제나 새로운 발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시선은 벌써부터 함선 외부의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착륙 충격음이 한 번 울리고, 선체가 고요해졌다.
“자, 이제 나갈 시간이다. 장비 점검. 카이, 선두에 서.” 이사벨이 짧게 명령했다.
카이는 즉시 반응하며 개인 무장과 휴대용 스캐너를 챙겼다. 헤비 아머 슈트를 입고 외부로 연결된 램프를 따라 나섰다. 살을 에는 듯한 플라즈마 바람이 굉음을 내며 그를 휘감았지만, 슈트의 보호막은 끄떡없었다. 멀리, 거대한 협곡의 벽면에 거뭇한 그림자처럼 박혀 있는 인공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스캐너가 발신지를 그곳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선장님, 제로, 클레어! 이쪽입니다! 스캐너 반응이 확실해요!” 카이가 송신기로 외쳤다.
얼마 후, 사지가 튼튼한 이사벨 선장과, 눈을 가린 바이저 속에서 푸른빛이 번뜩이는 제로, 그리고 침착하게 고대 언어 데이터 패드를 들여다보는 클레어가 그의 옆에 합류했다. 그들은 붉은 모래를 밟으며 거대한 협곡을 향해 걸어갔다.
수십 미터를 더 나아가자,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암반에 뚫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입구. 그것은 단순한 동굴이 아니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검은 현무암 벽, 상단에는 고대 문자처럼 보이는 기이한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위엄은 압도적이었다.
“세상에… 이게 정말 고대 문명의 유적이라고요?” 카이의 눈이 경이로움으로 휘둥그레졌다. 그의 스캐너는 이미 그 거대한 구조물 내부를 향해 광선을 쏘아대고 있었다.
“고대 시그나리아 문명의 것과 유사하지만, 훨씬 정교하고 복잡해. 이 문양들은… 은하계의 지도가 아닌,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 것 같아.” 클레어는 벽에 손을 짚으며 희미하게 빛나는 문양들을 더듬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미약한 에너지가 감지되는 듯했다.
“입구 봉쇄막 감지. 물리적인 봉쇄가 아닙니다. 에너지 역장으로 보입니다. 고유 주파수 해킹 시도 중…” 제로가 자신의 조작 패드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바이저 속 눈동자가 더욱 푸르게 빛났다. 잠시 후,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봉쇄막이 파동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거대한 현무암 문이 서서히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수천 년간 잠들어 있던 침묵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내부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습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내부는 지독하게 어두웠다. 카이의 헬멧 라이트와 이사벨 선장의 전술 라이트만이 칠흑 같은 어둠을 찢었다. 그들이 들어선 공간은 거대한 홀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했고, 사방은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들로 가득했다. 먼지가 가득한 공기 속에서 그들의 숨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제로, 내부 스캔. 에너지 잔류 패턴 확인해.” 이사벨 선장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스캔 중…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구조입니다. 지하로 수십 층은 이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잔류 패턴 확인. 꽤 강력한 동력원이 아래쪽 깊은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로의 보고에 탐사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클레어는 벽에 가까이 다가섰다. “이 벽화… 이건 ‘성좌’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우리가 아는 별자리와는 달라요. 그리고 이 문양은… 확실히 고대 시그나리아 문명의 것과 유사하지만, 더 원시적이면서도, 어딘가 신비로운 힘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벽화의 선을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들이 홀을 가로질러 나아가자, 중앙에 놓인 거대한 받침대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 빛을 발하는 그것은, 수정과 금속이 기묘하게 결합된 형태였다. 공중에 미세하게 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게 뭐지?” 카이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 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미지의 힘이 그를 잡아끄는 듯했다.
“카이, 함부로 만지지 마!” 이사벨 선장이 단호하게 제지했다. “제로, 에너지 레벨 측정해.”
“측정 불가… 아니, 측정치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버틸 수 없어요, 선장님!” 제로의 목소리가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의 스캐너가 지직거리며 불안정한 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 순간, 유적 전체가 거대한 굉음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먼지가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균열이 벽을 따라 뻗어나갔다. 진동은 점점 격렬해졌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젠장! 무슨 일이야?” 카이가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클레어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벽화의 문양들을 다시 한번 빠르게 훑어보았다. “이 진동은… 일종의 ‘경고’예요. 우리가 이곳의 잠자는 무언가를 건드렸어요. 벽화에 쓰인 경고문이… 활성화되었어요!”
콰아앙!
거대한 현무암 홀의 맞은편 벽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며,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 안에서, 수천 년간 봉인되어 있던 고대의 수호자 같은 기계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여섯 개의 거대한 팔을 가진 거미 형태의 기계였는데, 금속의 몸체 곳곳에 푸른빛 에너지 회로가 번개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젠장, 환영 인사가 너무 거창한데?” 카이가 중얼거렸다. 그의 손은 이미 라이플의 방아쇠에 놓여 있었다.
선장 이사벨의 얼굴에 전술적인 긴장감이 서렸다. “전투 태세! 제로, 클레어, 후퇴 준비해! 카이, 엄호해!”
기계 수호자의 붉은 눈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 동시에, 유적 전체가 불길한 굉음과 함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밑에서, 새로운 통로가 열리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미지의 나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