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흙냄새는 강현에게 늘 익숙한 것이었다. 아니, 익숙하다 못해 이젠 지겨울 지경이었다. 뜨거운 초여름 햇볕 아래, 그는 낡은 솔로 유적의 파편을 털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이곳은 신라 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는 곳. 벌써 두 달째, 교수님은 ‘역사의 숨결’을 운운했지만, 강현의 눈에는 그저 닳고 닳은 돌멩이와 깨진 기와 조각들뿐이었다.
“강현아, 거기 그렇게 대충 하면 되겠니? 조심스럽게 다뤄야지!”
뒤에서 들려오는 조교 선배의 잔소리에 강현은 어깨를 움찔했다. “네, 선배.” 대충 대답하며 시선을 멀리 옮겼다. 발굴 현장의 가장자리,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잡목림 뒤편에 희미하게 드러난 낡은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은 발굴 구역에서도 벗어나 있어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그저 무성한 칡넝쿨과 잡초에 뒤덮여 있을 뿐. 하지만 묘하게, 강현은 저곳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은 기분.
점심시간, 동료들이 왁자지껄 도시락을 까먹는 동안, 강현은 그 묘한 이끌림에 못 이겨 조용히 잡목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냐, 강현아?” 멀리서 누군가 물었지만, 그는 못 들은 척 더 깊숙이 들어갔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자, 햇빛도 제대로 닿지 않는 어둑한 공간이 나타났다. 습하고 서늘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드디어 눈앞에 드러난 돌담. 발굴 현장의 다른 석축과는 확연히 다른, 거칠고 불규칙한 형태였다. 마치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듯하지만, 틈새마다 끈끈한 흙과 이끼가 달라붙어 견고하게 버티고 있었다. 강현은 손으로 칡넝쿨을 걷어냈다. 넝쿨에 감춰져 있던 돌담의 일부가 드러나자, 그는 숨을 들이켰다.
돌담의 한가운데,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틈이 있었다. 인위적으로 파낸 것 같기도, 아니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생긴 동굴 입구 같기도 했다. 틈새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어딘가 모르게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강현은 아무런 도구도 없이 조심스럽게 그 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깊었다. 초입은 좁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넓어졌다. 흙과 돌멩이가 뒤섞인 통로를 따라 몇 미터쯤 걸었을까, 갑자기 발밑의 흙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쇠비린내와 함께, 주변의 어둠이 미묘하게 짙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햇빛 한 점 없는 곳인데도,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듯했다.
강현은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좁은 빛줄기가 주위를 밝혔다. 통로의 끝은 의외로 넓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작은 동굴이었다. 벽면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고, 천장은 아치형으로 높았다. 그리고 그 공간의 정중앙에, 그의 심장을 쿵 떨어뜨릴 만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돌로 깎아 만든 제단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 위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금속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표면은 기묘한 문양들로 뒤덮여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금속 조형물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약하게 깜빡이는 빛.
“이게… 뭐야?”
강현은 홀린 듯이 조형물에 다가갔다. 플래시 빛에 반사되어 금속의 표면이 번쩍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차가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손끝에 닿은 것은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의 체온에 데워져 있었던 것처럼.
손가락이 조형물의 표면, 가장 중앙에 위치한 원형 문양에 닿는 순간이었다.
*쉬이이익-*
정적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조형물에서 강렬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강현의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격렬한 감각이 엄습했다. 고통은 아니었다. 오히려 의식을 휩쓸어버리는 거대한 에너지의 폭풍 같았다. 눈앞이 번쩍이고, 세상의 모든 색깔이 한데 섞여 녹아내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웅- 쿵!*
귀청을 때리는 굉음과 함께, 주변의 시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고, 그의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거대한 도시에 솟아오른 기이한 탑,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빛 기계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고대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뒤틀리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혼돈 속에서, 강현은 자신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숨 막히는 감각. 존재의 근원이 뒤흔들리는 것 같은 경험.
그리고, 모든 것이 멈췄다.
푸른빛은 잦아들었고, 동굴 안은 다시 희미한 어둠으로 돌아왔다. 금속 조형물은 여전히 제단 위에 놓여 있었지만, 아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태양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그의 손길로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것처럼.
강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온몸은 땀으로 축축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방금 일어난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오른손 손바닥에서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희미한 푸른 빛이 깜빡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조형물에서 나오던 것과 똑같은 빛.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빛은 선명하게 느껴졌고, 그 빛의 근원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뜨거운 에너지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몸 안에 새로운 힘이 자리 잡은 듯한 이질적인 감각.
강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빛나는 금속 조형물을 응시했다.
“이게… 도대체….”
그는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충격과 혼란, 그리고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뒤섞여 반짝이고 있었다. 평범한 발굴 현장에서 시작된 그의 하루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고대의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강현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알 수 없는 거대한 물결에 휩쓸린 듯한 기분뿐이었다. 동굴 속에서, 금속 조형물은 강현의 새로운 운명을 비추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