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룡시(鐵龍市) 지하미궁은 한때 영광스러운 증기 시대의 잔해들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유기체였다. 수만 개의 톱니바퀴와 놋쇠 파이프, 구리선이 얽혀 거미줄처럼 펼쳐진 이 도시는 위로는 높이 솟은 증기탑과 날아다니는 비행선들이 오가는 화려한 상층부와는 달리, 밑바닥은 영원한 석탄 먼지와 기름때, 그리고 증기음의 불협화음 속에서 살아 숨 쉬었다.
강 지환은 그 불협화음 속에서 가장 낮은 음을 연주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의 직업은 고철 처리공. 다른 이들이 미련 없이 버린, 혹은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기계 잔해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일이었다. 낡은 작업복과 기름때 묻은 장갑은 그의 두 번째 피부나 다름없었다. 그의 작은 작업실은 지하미궁의 가장 깊숙한 곳, 더 이상 증기압이 도달하지 않아 낡은 가스등만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곳에 있었다.
오늘도 지환은 한숨을 쉬며 묵직한 고철 더미를 뒤적였다. 삐걱거리는 크레인이 거대한 증기 엔진 블록을 옮기는 소리, 어딘가에서 터져 나오는 증기 분출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상층부 비행선의 웅장한 엔진 소리가 그에게는 배경음악과 같았다.
“젠장, 또 이걸 갖다 버렸군.”
그의 손에 들린 건 녹슨 강철 시계추였다. 분명히 한때는 거대한 시계탑의 심장이었을 터. 이제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었다. 그는 시계추를 다른 고철 더미 위에 던져버렸다. ‘끼이잉’ 하는 둔탁한 금속 마찰음이 작은 작업실을 울렸다.
그때였다. 뭉툭한 고철 더미 사이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다른 금속들과는 다른, 낡았지만 어딘가 범상치 않은 광택이었다. 지환은 호기심에 이끌려 손을 뻗었다. 묵직하고 차가운 감촉. 손에 쥐어진 것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낡은 황동 회중시계였다.
다른 시계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보통의 증기식 시계들은 복잡한 파이프와 밸브, 증기 압력 게이지가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시계는 매끈하고 단순했다. 겉면에 새겨진 문양은 흔히 볼 수 있는 톱니바퀴나 용 문양이 아니었다. 고대어로 보이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시계 테두리에는 푸른빛을 띠는 작은 광석들이 박혀 있었다. 용두(龍頭)라고 불리는 태엽 감는 꼭지는 일반적인 시계보다 훨씬 두툼하고 묵직했으며, 그 위에도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야…?”
지환은 그 시계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태엽을 감는 부분은 굳게 잠겨 있는 듯했고, 시간 조절 나사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흔들어도 째깍거리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완전히 죽은 시계였다. 하지만 버려진 고물 더미 속에서 이렇게 멀쩡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게 이상했다. 무엇보다, 손바닥 위에 올려두니 희미하게 맥박처럼 두근거리는 미열이 느껴지는 듯했다. 착각인가?
그는 시계를 작업대 위로 가져왔다. 낡은 가스등 아래서 황동 시계는 묘한 빛을 발했다. 그는 작은 나사들을 풀기 위한 도구들을 꺼냈다. 증기시대의 모든 기계는 분해와 조립이 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이 시계는 달랐다. 아무리 찾아도 분해할 만한 틈새나 나사가 보이지 않았다. 겉면은 하나의 완벽한 황동 덩어리처럼 매끄러웠다.
“젠장, 이건 또 무슨 조립 방식이야?”
그는 작은 망치로 시계의 이음새를 찾아 살살 두드려 보았다. 텅, 텅, 텅. 묵직하고 울림 있는 소리가 났다. 그때였다. 시계 표면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듯했다. 마치 시계 안에서 빛이 샘솟는 것처럼. 지환은 숨을 멈췄다.
그는 다시 시계를 들어 올렸다. 손에 느껴지는 미열은 이제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 시계는 스스로 열을 발하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그 열은 규칙적이었다. 그는 무심코 용두를 만졌다. 태엽이 감겨 있지 않았음에도 용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의 손가락이 용두에 흡수되는 듯한, 미약한 자기장 같은 기운.
지환은 조심스럽게 용두를 왼쪽으로 돌려보았다. 보통의 시계는 오른쪽으로 태엽을 감는다. 하지만 이 시계는 처음부터 비범했다. 덜컥! 하는 소리 대신, 그의 손끝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계 표면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푸른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작업실의 낡은 가스등 불빛마저도 그 푸른빛에 흡수되는 듯했다.
웅-
낮고 깊은 공명이 작업실을 울렸다. 그것은 증기 엔진의 진동음과는 확연히 다른, 훨씬 더 고요하고 순수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시계의 유리판 안에 멈춰 있던 시침과 분침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꾸로.
“미쳤나…?”
지환은 눈을 비볐다. 분명히 시계 바늘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 빛은 그의 손을 타고 올라와 작업실 전체를 휘감았다. 낡은 작업실의 풍경이 미묘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녹슨 공구들이 마치 오래된 기억을 되찾은 듯 희미하게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작업대 한구석에 놓여 있던, 수십 년간 녹슬어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거대한 톱니바퀴가 갑자기 ‘움찔’했다. 지환은 깜짝 놀라 시계를 놓칠 뻔했다. 그 톱니바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녹슨 표면에 쌓인 먼지들이 푸른빛 속에서 미세하게 흩어졌다.
지환은 다시 시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계 바늘은 여전히 거꾸로 돌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가 내뿜는 푸른빛은 작업실의 모든 금속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녹슨 쇠붙이들이 미세하게 떨리고, 낡은 놋쇠 파이프에서는 아주 희미하게, 고대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맥동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것은 증기 기관이나 톱니바퀴의 물리적인 힘이 아니었다. 증기의 뜨거운 압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힘이었다. 훨씬 더 오래되고, 훨씬 더 근원적인.
그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낡은 황동 시계는 이제 그의 손 안에서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시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작업실의 모든 사물들을 관통하며,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했다. 낡은 벽돌 틈새로 흐르는 지하수, 땅속 깊이 박힌 고대 유적의 잔해들까지. 모든 것이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계 용두를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덜컥. 작은 진동이 멈추자, 시계의 푸른빛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시계 바늘도 멈췄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작업실은 다시 가스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녹슨 고철과 기름때로 가득한 지환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환은 알았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세계가 바뀌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단순한 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증기 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의 숨겨진 마법의 힘이었다. 그는 이제 철룡시 지하미궁의 고철 처리공이 아니었다. 그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우연히 열어버린 탐험가였다. 그의 심장은 고철과 증기로 가득 찬 도시의 심장 박동보다 더 강하게, 알 수 없는 설렘과 두려움으로 뛰고 있었다. 이 작은 황동 시계가 앞으로 어떤 운명을 가져올지, 그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