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 벽 속의 비명

### 1. 고립

민준은 창밖을 내다봤다. 칙칙한 회색빛 하늘 아래, 고층 빌딩들이 빽빽이 들어선 도시는 어쩐지 평소보다 조용했다. TV에서는 연일 ‘신종 인플루엔자’의 확산 소식을 떠들었지만, 민준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지 오래, 그의 세상은 24평 아파트 내부로 축소되어 있었다. 키보드 소리, 냉장고의 규칙적인 저음, 그리고 이따금씩 들리는 위층 아이들의 발소리가 전부였다.

“젠장, 오늘도 마감인가.”

모니터 속 빽빽한 코드들을 노려보던 민준은 허리를 꺾어 기지개를 켰다. 그 순간, 거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람에 창문이 흔들렸나? 하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주방 쪽에서 들린 것 같기도 했다. 별일 아니겠지, 민준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요즘 스트레스가 심해서 환청이라도 들리나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명확했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유리컵이 미묘하게 움직인 것 같았다.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앉았다.

“피곤하다, 진짜.”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어갔다. 자정 무렵, 민준은 마지막 코드를 저장하고 침실로 향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 순간, ‘삐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낡은 장롱 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였다.

“으음?”

민준은 몸을 일으켰다. 장롱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아까 분명히 닫았는데.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장롱 문을 닫았다. 묵직한 나무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불안한 기시감이 민준의 등골을 스쳤다.

### 2. 속삭이는 벽

다음 날 아침, 사태는 더욱 기괴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데,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펜꽂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용물인 펜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몇 개는 부러져 있었다.

“이게 뭐야!”

민준은 순간 울컥했다. 밤새 누가 침입이라도 했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 잠금장치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어젯밤 장롱 문도 그렇고, 뭔가 이상했다.

그날 오후부터는 소리마저 들리기 시작했다. 벽 안에서, 혹은 바닥 아래에서 긁는 듯한 소리. 처음에는 쥐라도 있나 싶었지만, 소리는 점점 커지고 불규칙해졌다. 마치 거대한 손톱으로 콘크리트 벽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드드득, 득득…’ 뼈를 긁는 듯한 섬뜩한 소리였다.

“이봐, 위층인가? 아니면 옆집인가?”

민준은 신경질적으로 벽을 두드렸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잦아들었다가, 더 거칠게 이어졌다. 마치 그의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TV를 켰다. 뉴스는 온통 비상사태를 알리고 있었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미확인 전염병’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감염된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보도가 속출했다. 통제 불능의 폭동과 약탈이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속보가 끊이지 않았다. 민준은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 거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짤랑, 짤랑!’ 유리 조각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동시에 냉장고 문이 ‘덜컥’ 하고 저절로 열렸다.

“미쳤어! 뭐야, 이거!”

민준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공포에 질려 TV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 아나운서는 창백한 얼굴로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도시가,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파트 또한 그 광란의 중심에 서 있는 듯했다.

### 3. 침범하는 공포

밤이 되자 아파트는 완벽한 지옥으로 변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사이렌 소리는 이제 먼 배경음악이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 건물 안에서도 섬뜩한 울림이 들려왔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추가 천장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반복됐다. 동시에 그의 아파트 내에서도 기이한 현상이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주방의 모든 찬장 문이 일제히 ‘쾅!’ 하고 열렸다. 접시들이 쏟아져 내리며 산산조각 났다. 거실의 소파는 푹 꺼진 채 찢어지고, 그 안의 솜들이 마치 내장처럼 삐져나왔다. 벽에 걸려있던 액자들이 떨어져 유리가 깨지고, 사진 속 웃는 얼굴들은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안 돼! 제발, 그만!”

민준은 침실 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아래로 숨었다. 온몸이 떨렸다. 이건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바깥세상의 혼돈이, 죽음과 광기가, 그의 안전한 공간마저 잠식하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이번에는 침실 벽에서 나는 소리였다. 마치 드릴로 벽을 뚫는 듯한 소리. 이내 옅은 시멘트 가루가 벽 틈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썩은 철과 피가 뒤섞인 듯한 역겨운 냄새였다.

“으읍… 콜록, 콜록!”

민준은 입을 틀어막았다. 냄새는 삽시간에 방 안을 채웠다. 벽 틈새에서는 이제 검붉은 액체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마치 벽이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그는 공포에 질려 숨을 헐떡였다. 저 액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것은 바깥세상의 오염이자, 침투였다.

액체가 스며 나오는 곳을 무심코 바라본 순간, 그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시멘트 가루와 함께 붉은 액체가 흐르는 벽 틈새로, 아주 희미하게, 검은 무언가가 비쳤다. 그것은 단단한 콘크리트가 아닌, 흐물거리는 살덩이 같았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혹은 꺽꺽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륵… 크르르륵…’

그 소리는 분명히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마치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짐승 같은 소리였다. 민준은 자신이 숨어있는 침대 아래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이 아파트는, 그의 집은, 더 이상 외부와 단절된 안식처가 아니었다. 바깥세상의 끔찍한 바이러스가 물리적으로, 그리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의 벽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그저 벽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침투의 예고편에 불과했던 것이다.

침실 벽이 좁은 틈을 따라 미세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며, 민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벽 너머에서, 어떤 존재가 이쪽으로 넘어오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의 집은 이미 감염된 시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벽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의 심장 박동은 광기 어린 망치질처럼 귀를 때렸다. 그의 세상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