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밀폐된 창고의 살인
황량한 대지 위, 새벽 기지는 굳건히 서 있었다. 녹슨 강철과 시멘트로 얼룩진 벽은 살아남은 인류의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었다. 낮에는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밤에는 사냥꾼들의 발소리와 돌연변이들의 울음소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 으르렁거렸다. 이곳 새벽 기지에서조차 평화는 잠시 빌려 온 꿈에 불과했다.
“경보! 긴급 상황 발생!”
정적이 흐르던 새벽녘, 기지 중앙 통제실에서 터져 나온 다급한 외침이 모든 꿈을 산산조각 냈다. 비상등이 붉게 번쩍이며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령관 윤아가 상황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부관들은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다.
“무슨 일이야?” 윤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깔려 있었다.
“사령관님, 보급 창고에서… 김영수 물자 관리 책임자가… 살해당했습니다.”
정적. 잠시 후 윤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영수는 식량 배급을 총괄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이런 시기에 그가 죽었다는 건 기지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일이었다.
“누가? 어떻게?”
“그게… 창고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밀폐된 공간이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부관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말 그대로… 밀실 살인입니다.”
윤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들었다. “당장 보존 처리반을 투입해. 현장을 훼손하지 말고 완벽히 보존해. 그리고… 류신을 불러.”
부관은 잠시 망설였다. “류신 말입니까? 하지만 그는…”
“알아.” 윤아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사람은 그 녀석밖에 없어.”
***
류신은 새벽 기지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버려진 통신탑 기둥 아래에 임시로 만들어진 자신의 거처에서 막 잠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 낡은 단파 라디오에서 간신히 희미한 잡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무심히 손가락으로 벽의 낡은 회로도를 훑었다. 기지 사람들은 그를 ‘탐정’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정신 나간 천재’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어쨌든, 기지에 심각한 사건이 터지면 그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류신 씨!”
낡은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윤아의 부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류신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말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김영수 관리 책임자의 죽음인가?”
부관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아셨습니까?”
“새벽 기지에서 ‘긴급 상황’이라는 말은 보통 물자 관리나 핵심 인물의 문제와 직결되지. 그리고 어젯밤부터 김영수 관리 책임자의 창고 쪽에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어. 일종의 ‘불협화음’ 같은 거지.” 류신은 그제야 몸을 돌려 부관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어두운 공간에서도 빛나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밀실 살인이라고 들었어. 맞지?”
부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예, 맞습니다. 당장 현장으로 가주셔야 합니다.”
류신은 낡은 외투를 걸치며 말했다. “사령관님은 현장에 계시겠지?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가장 먼저 불 속에 던지는 타입이니까.”
***
보급 창고 입구는 이미 삼엄한 경비로 통제되고 있었다. 류신이 도착하자, 윤아 사령관이 직접 그를 맞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결의가 서려 있었다.
“왔군, 류신.”
“사령관님도 여전하시군요. 이런 상황에선 직접 발로 뛰는 게 답이라는 걸 아시니까.” 류신은 김영수의 보급 창고 문을 힐끗 보았다. 육중한 강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주변에는 아무런 훼손 흔적도 없었다.
“상황을 설명해 주지. 김영수 책임자는 오늘 새벽, 보급품 점검을 위해 창고에 들어갔어. 그리고 아침 순찰을 돌던 경비병이 창고 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지. 문을 두드리고 불러봐도 대답이 없어서 비상 개방을 시도했지만, 안에서 단단히 걸려 있어 열리지 않았어. 결국 특수 장비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이미 그는 차가운 시신이 되어 있었네.”
“시신 상태는?” 류신은 문에 귀를 기울이며 물었다.
“목 부위에 정확하고 깊은 칼자국이 하나. 치명상이었어. 문제는 현장에서 어떤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야.” 윤아는 한숨을 쉬었다. “창고 안은 완벽히 밀폐되어 있었어. 환기구는 너무 좁아서 사람이 통과할 수 없고, 창문은 애초에 없어. 외부로 통하는 어떤 통로도 없어. 게다가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류신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는 눈을 뜨고 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특수 장비로 이미 뜯겨 나간 문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창고 안은 차갑고 어두웠다. 정돈된 보급품 상자들이 질서정연하게 쌓여 있었지만, 그 모든 질서는 중앙에 쓰러져 있는 김영수의 시신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시신 주변으로는 핏자국이 어지럽게 퍼져 있었고, 그의 옆에는 낡은 손전등 하나가 불쌍하게 놓여 있었다.
류신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시신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시선을 김영수의 핏기 없는 얼굴, 그리고 목 부위의 깊은 상처로 향했다. 그는 손전등을 들어 시신 주변을 천천히 비췄다. 바닥, 벽, 그리고 쌓여 있는 보급품 상자들…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윤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가 발견했나?”
류신은 대답 없이 바닥에 웅크려 김영수의 시신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그의 손은 시신 옆에 떨어진 손전등에 닿았다. 켜져 있는 채로 떨어진 손전등의 빛은 희미했지만, 그 빛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비추고 있었다. 김영수의 손가락 끝에 묻어 있는 미세한 흙먼지들. 그리고 그의 낡은 작업복 소매에 묻은 보랏빛 얼룩.
류신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창고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손이 닿지 않는 환기구 철망을 향했다.
“사령관님, 이 창고는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공간이라고 하셨죠?” 류신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안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 무슨 의미지?” 윤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건 밀실 살인이 아닙니다.”
모두의 시선이 류신에게 집중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밀실 살인은 맞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밀실 살인이 아닙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왔고, 김영수 관리 책임자를 죽였습니다. 하지만 칼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류신은 시신 옆의 흙먼지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이 흙먼지는 어제 기지 외부에서 가져온 보급품 상자들에서 묻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보랏빛 얼룩… 이건 새벽 기지 주변에 극히 드물게 자라는 ‘밤의 꽃’이라는 식물의 즙이죠. 김영수 관리 책임자는 어제 외부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의 옷에 이 얼룩이 묻어 있을까요?”
류신은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의 긴장감을 즐기는 듯했다.
“범인은 이 방에 칼을 남겨두고 나갔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이 방에 칼이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이 완벽한 밀실 살인의 트릭은, 사실 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칼을 찾지 못하게 숨겨진 것에 불과합니다.”
그의 눈은 다시 한번 창고의 높고 어두운 구석을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그 트릭을 간파하는 단서는 바로… 김영수 관리 책임자가 죽기 직전까지 이 손전등으로 비추려 했던 것, 그 자체에 있습니다.”
윤아는 류신의 시선을 따라 창고의 어두운 천장과 벽을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류신의 얼굴에는 이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은 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의 다음 한 마디는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범인은… 이 밀폐된 창고에서 칼을 *사용하여* 김영수를 죽인 후,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칼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이 창고의 특징을 완벽하게 이용한 것이죠. 마치 처음부터 칼이 없었던 것처럼.”
모두의 눈빛에 혼란과 경외가 동시에 스쳤다. 새벽 기지의 가장 안전한 곳에서 벌어진 이 불가사의한 살인 사건은, 류신의 말 한마디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과연 칼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그 트릭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