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덧없이 흐르는 시간, 희미한 빛을 찾아서
낡은 철문은 오래된 뼈처럼 삐걱거렸다. 지아는 무릎까지 차오른 잔해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뒤따라 들어오던 하루가 마른기침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지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괜찮아?”
지아는 고개만 돌려 하루를 쳐다봤다. 하루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기침은 밤마다 하루를 괴롭혔다. 폐허를 헤매는 동안 작은 상처나 감기는 흔한 일이었지만, 하루의 기침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이곳, 한때는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었을 ‘병원’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자. 외래 진료실 쪽만 잠깐 살펴보고 나와야 해.”
지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낡은 파이프 렌치를 든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천장은 곳곳이 무너져 내렸고, 창문은 모조리 깨져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가득했고, 그 위로 쌓인 먼지는 수십 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으스스한 침묵만이 이 거대한 폐허를 지배하고 있었다.
“누나가 감기약이라도 찾아내면 좋겠다.”
하루의 말에 지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앞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약은 보물찾기와 같았다. 운이 좋으면, 아주 운이 좋으면, 썩지 않은 약품 몇 개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항생제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해열제나 기침약이라도 하루에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복도를 따라 걷자 찢겨 나간 벽보들이 보였다. 화사한 미소를 짓는 아기와 가족의 사진, 의학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의사의 얼굴들. 이제는 빛바랜 기억 속 풍경이었다. 부서진 침대와 휠체어들이 복도 한쪽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발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지아는 매 순간 주변을 경계했다. 낯선 소리, 낯선 그림자. 이 폐허에는 그들 외에도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었다. 작고 빠른 쥐부터, 덩치 큰 포식자들까지.
“저기 봐, 누나.”
하루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약국’이라고 적힌 간판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른 곳보다 천장이 덜 무너진 곳이었다. 지아는 안도감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좋은 기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약국 입구에 다다르자, 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썩은 살 냄새와 금속 비린내가 뒤섞인 악취였다. 지아는 하루를 등 뒤로 숨기고 파이프 렌치를 고쳐 쥐었다. 침묵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스스슥.*
안쪽에서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날카로운 발톱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리 같았다. 지아는 하루에게 눈짓으로 ‘숨어’라고 지시했다. 하루는 알아들었다는 듯, 잔해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지아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약국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햇빛이 닿지 않는 안쪽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오직 그녀가 들고 있는 손전등의 좁은 불빛만이 길을 밝혔다.
선반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지만, 벽에 고정된 몇몇 장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위로 약 상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눈동자가 지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쉬이익-!
낮고 굵은 울음소리가 약국을 가득 채웠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거대한 쥐였다. 보통 쥐의 두세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몸집에, 털은 군데군데 빠져나가 역겨운 살덩이가 드러나 있었다.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길게 튀어나와 있었고, 꼬리는 마치 채찍처럼 바닥을 쳐댔다. 폐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변이된 쥐, ‘탐식자’였다. 탐식자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어 치웠고,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에게도 서슴없이 달려들었다.
지아는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탐식자는 지아의 허벅지를 스치듯 지나갔다. 녀석의 발톱이 긁고 지나간 자리에 찢어진 바지와 함께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지아는 파이프 렌치를 양손으로 쥐고 휘둘렀다.
*콰앙!*
쇠붙이가 뼈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약국을 울렸다. 탐식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녀석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광포하게 지아에게 달려들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드는 녀석의 눈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지아는 필사적으로 탐식자의 공격을 피했다. 녀석은 빠르고 힘이 셌다. 하지만 동시에 멍청했다. 지아는 쓰러진 선반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탐식자를 유인했다. 좁은 통로에서 녀석의 거대한 몸집은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누나! 이쪽!”
하루의 외침이 들렸다. 지아는 고개를 돌렸다. 하루가 깨진 창문 틈으로 손을 뻗어 약 상자 하나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탐식자는 그 소리에 순간적으로 하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찰나의 순간, 지아는 모든 힘을 모아 파이프 렌치를 휘둘렀다. 녀석의 옆구리를 정확히 노린 공격이었다.
*퍽!*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탐식자는 길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경련을 일으키던 몸은 이내 축 늘어졌다. 완전히 쓰러뜨린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할 터였다.
“하아… 하아… 괜찮아?”
지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루에게 다가갔다. 하루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는 방금 꺼낸 듯한 약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지아가 확인해보니, 다행히 항생제였다. 날짜도 아직 유효했다.
“잘했어, 하루.”
지아는 하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몸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아는 찢어진 바지 위로 흐르는 피를 애써 무시하며 선반에 남아 있는 약들을 긁어모았다. 몇 개의 진통제와 소독약, 그리고 해열제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폐허가 된 건물 안에서 더 오래 머무는 것은 위험했다. 언제 탐식자의 동족이 나타날지, 혹은 건물이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었다. 지아는 서둘러 약들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약국을 나와 다시 밖으로 향하는 길은 더 조심스러웠다. 탐식자의 시체는 여전히 약국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폐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붉고 어두운 노을이 잿빛 도시의 실루엣을 물들였다. 지아와 하루는 병원 잔해 더미 옆에 주저앉았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조각에 싸여 있던 말린 과일 조각을 꺼냈다. 아껴두었던 비상 식량이었다.
“하루, 이거 먹어.”
지아는 말린 과일 반쪽을 하루에게 건넸다. 하루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고는 오물거렸다. 작지만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 퍼지자 하루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지아는 하루의 손에 항생제 한 알을 쥐여 주었다.
“이거 먹으면 기침 좀 나아질 거야. 그래도 아직은 안심할 수 없어. 어둠이 완전히 깔리기 전에 쉴 곳을 찾아야 해.”
하루는 약을 삼키고는 고개를 들었다. 노을빛에 물든 그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다.
“누나, 고마워. 누나는 진짜 강하다.”
하루의 말에 지아는 피식 웃었다. 강하다니. 그저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하루의 말 한마디가 메마른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되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노을을 바라봤다. 하루의 어깨 위로 따뜻한 손이 얹혔다. 하루는 누나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지친 하루였지만, 함께라면, 이 지독한 폐허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노을은 점점 짙어지고, 도시의 그림자는 더욱 길어졌다.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그것이 또 다른 위험의 전조일지, 아니면 새로운 삶의 시작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