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독립적인 단편 소설

새 아파트. 고층의 통창 너머로 회색 도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강 미나, 20대 후반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나는 막 완벽한 보금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거실, 그림을 그리기 좋은 작업실, 아담하지만 깔끔한 침실. 모든 것이 새 시작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첫 일주일은 꿈만 같았다. 낯선 고요함 속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잠시 잊고 지냈던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했다.

그러다 사소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피곤해서 그랬겠거니 했다. 분명 싱크대 옆에 뒀던 찻잔이 거실 테이블 위에서 발견되거나,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아 올린 스케치북이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식이었다. 처음엔 “내가 깜빡했나?” “아니면 지진이라도 났었나?” 하고 웃어넘겼다. 혼자 사는 집이니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어느 날 밤, 작업실에서 밤늦도록 그림을 그리다 잠깐 졸았을 때였다. 창밖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휘황찬란했지만, 내 안의 공기는 이상하게 싸늘했다. 문득, 책상 위 연필꽂이에서 연필 한 자루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떨어진 연필은 이미 옆구리가 깎여 날카로워져 있었다. 나는 분명 어제 새 연필을 꽂아뒀고, 아직 깎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깎았나?”
내 손은 깨끗했고, 깎은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나는 애써 웃으며 “피곤해서 환각이 보이나?” 중얼거렸다.

점점 그런 일들은 빈번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문이 활짝 열려 있거나, 잠들기 전 분명 잠갔던 현관문이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화장실 거울에 김이 서린 채로 손가락으로 그린 듯한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아이의 장난 같기도, 혹은 경고 같기도 한 그 형상에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장난치지 마세요…”

나는 허공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화장실 변기 뚜껑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젠 내 귀까지 의심해야 하는 건가? 며칠 밤낮으로 잠을 설쳤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보려 했지만, 촬영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전원이 나가거나, 녹화된 영상엔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나를 놀리듯, 내가 증거를 잡으려는 순간만 교묘하게 피하는 것 같았다.

가장 기괴했던 건 냉장고였다.
나는 매일 냉장고 문에 작은 메모지를 붙여 그날 해야 할 일이나 장 볼 목록을 적어두곤 했다. 어느 날, ‘우유 사기’라고 적어둔 메모지 아래에 누군가 새로운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가지마’.

내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섰다. 내가 붙인 메모지가 아니었다. 내 글씨체도 아니었다.
누군가 이 집에 들어온 건가? 그러나 방범창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현관문은 이중 잠금장치까지 완벽했다. 도어록 기록을 확인했지만 외부 침입자는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메모지를 떼어냈다. 그 아래에 또 다른 메모지가 있었다.
‘보고 싶었어.’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누구세요…?”
내 목소리는 떨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그때,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나의 오래된 곰인형이 서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소중히 여겼던 그 인형의 눈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인형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집은 지옥이 되었다.
밤마다 가구가 제자리에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천장에서는 알 수 없는 물건을 끄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 손잡이가 제멋대로 돌아가며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심지어 내 앞에서 컵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나는 이제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온 집안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고, 미세한 소리 하나에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결국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 집은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이사를 결심하자, 기이한 현상들은 더욱 격렬해졌다.

내 손에 들린 캐리어 지퍼가 저절로 열리며 옷들이 쏟아졌다.
침실 창문이 쾅 하고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방 안을 휘몰아쳤다.
가장 끔찍했던 건 작업실이었다. 내가 아끼던 그림들이 벽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붓통의 붓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춤을 추듯 흔들렸다.
그리고 내 작업실 중앙, 내가 가장 아끼던 캔버스 위에, 붉은색 물감으로 글씨가 쓰여 있었다.

‘가지마. 너는 내 꺼야.’

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것은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이것은 나를, 강 미나라는 인간을 원하고 있었다. 이 집에 갇힌 무언가는 나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작업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거실로 향하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쏟아진 옷도, 열린 창문도, 바닥에 나뒹구는 그림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그러나 내 눈앞에 놓인 거실 테이블 위에는, 나의 어린 시절 곰인형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인형의 얼굴에는, 붉은색 물감으로 커다란 눈물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나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았다.
맨발로, 나는 현관문을 향해 달려갔다. 손잡이를 잡으려 하자, 차가운 금속이 마치 살아있는 듯 떨렸다. 있는 힘껏 돌려 문을 열었다.
복도.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뒤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미친 듯이 눌렀다.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뛰어들었다.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마지막으로 내 아파트의 문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희미한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창문 안에서 손을 흔드는 것처럼.
아니,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내내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이 도시의 어떤 아파트에서든, 내가 숨 쉴 수 있는 어떤 공간에서든, 그것은 나를 찾아낼 것이다.
나는 그날 밤, 내 아파트에서 도망쳤지만,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속삭임을 느꼈다.
‘가지 마…’
아니,
‘돌아와…’
내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나는 이 도시의 밤 속으로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