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굴러왔다. 굉음과 함께 들이닥친 빛은 기어이 시야를 잠식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나동그라지며 본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푸르렀고, 그 푸른빛은 온몸을 덮쳐오는 뜨거운 고통과 함께 점멸했다. 그래, 거기까지였다. 강민준의 29년 인생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눅진한 흙먼지 냄새와 귀를 찢을 듯한 정적이었다. 방금 전까지 눈부시던 푸른 하늘은 간데없고, 회색빛 먼지로 뒤덮인 뿌연 하늘만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목덜미와 팔다리가 쑤셨지만, 이상하게도 아스팔트 바닥에 긁혔을 상처 하나 없었다. 말끔한 몸뚱이. 어리둥절함에 주위를 둘러봤다.
“여… 여기가 어디야?”
목소리는 쉰 듯 갈라졌고, 입안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 질문에 답해줄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잿빛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잔해였다. 고층 빌딩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하늘을 찔렀고, 거리는 온갖 종류의 잔해와 폐기물로 뒤덮여 있었다. 길거리에는 녹슨 차량들이 뒤집히거나 찌그러진 채 버려져 있었고, 간혹 보이는 가로등은 기이하게 휘어진 채 전등갓이 깨져 있었다. 잿빛 먼지 바람이 불어와 모래알갱이를 흩뿌렸다. 씁쓸한 쇠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것은 꿈인가? 그는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따끔한 통증. 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지옥인가? 아니면 환생?
‘설마 이세계 전생?’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온라인 소설에서나 보던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믿기에는 눈앞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했다. 이세계라고 하기엔 너무나 익숙한 듯 낯선 풍경. 분명 도시였는데, 왜 이렇게 폐허가 되었지?
갈증이 목을 옥죄었다. 살갗은 건조했고, 햇빛은 없지만 희끄무레한 하늘에서 내리쬐는 열기는 피부를 따갑게 만들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살 만한 것을 찾아야 했다. 물이든, 뭐든.
휘어진 간판들이 매달려 있는 건물의 잔해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금이 간 콘크리트 파편이 널려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폐허가 된 상점가에 들어섰다. 텅 빈 진열대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찢어진 상품 포장지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먹을 만한 것도, 마실 만한 것도. 절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이렇게 죽는 건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도 황당한데, 이제는 낯선 폐허에서 굶어 죽으라는 말인가?
그때였다. 으스스한 그림자가 시야를 가로질렀다.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눈은 그림자가 사라진 방향을 쫓았다. 저건… 사람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기괴하게도 길쭉하고 비틀린 팔다리, 굽은 등,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얼굴이었다. 눈코입이 없는 매끈한 피부, 혹은 어둠이 응축된 듯한 검은 구덩이가 얼굴을 대신하고 있었다.
‘괴물…인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차가운 공포가 목을 조르고, 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벽 뒤에 바싹 몸을 붙였다. 괴물은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걷는다기보다는 흐느적거리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에 가까웠다. 부러진 전봇대 기둥을 짚고 서 있던 민준의 눈에, 괴물의 앙상한 손가락이 콘크리트 벽을 스치는 것이 보였다. 긁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민준은 더 깊이 숨었다. 들키면 죽을 거라는 본능적인 확신이 있었다. 그는 숨을 죽였다. 자신의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들킬 것만 같았다. 괴물은 느리지만 끈질기게 건물 안쪽으로 들어왔다. 민준이 숨어 있는 기둥을 지나쳐 복도 끝으로 향하는 듯했다.
‘지금이야.’
그는 몸을 돌려 반대편 출구로 달아났다. 최대한 소리 내지 않으려 발에 힘을 뺐지만, 깨진 유리 파편을 밟고 말았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깼다.
“크르르르르…”
뒤에서 들려오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 민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살아야 했다. 이유도 모른 채 죽는 건 억울했다.
거리를 가로질러 달렸다. 폐허는 복잡했고, 건물 잔해들은 미로 같았다. 뒤에서는 끈질긴 발소리가 따라왔다. 그것은 빠르지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처럼.
한참을 달리던 민준은 간신히 무너진 벽 틈새로 몸을 던졌다. 좁은 공간, 앞은 막혀 있었다. 사방이 콘크리트 잔해로 둘러싸인 막다른 골목이었다. 숨을 헐떡였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공간은 그에게 아무런 희망도 주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괴물이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벽 너머에서 그림자가 흔들렸다. 민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곤 바닥에 굴러다니는 녹슨 쇠막대기뿐이었다. 그는 쇠막대기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각이 손바닥에 선명하게 와닿았다. 싸워야 했다. 피할 수 없다면.
괴물이 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으며 들어왔다. 그 끔찍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역한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삼켰다. 공포가 온몸을 마비시키려 했지만, 그의 손은 쇠막대기를 꽉 쥐고 있었다.
괴물의 앙상한 팔이 뻗어 나왔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피했다. 팔이 벽에 부딪히며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녀석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죽을 수 없어!’
몸을 낮춰 괴물의 다리 쪽으로 쇠막대기를 휘둘렀다. 쾅! 무언가 단단한 것에 부딪힌 듯한 둔탁한 소리. 괴물은 잠시 휘청거렸지만, 이내 중심을 잡았다. 녀석의 다리는 돌처럼 단단했다. 그러나 민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휘둘렀다. 이번엔 좀 더 높게, 몸통을 겨냥했다. 녀석은 속도가 느렸다. 그 점을 노려야 했다.
하지만 폐허귀는 민첩성은 떨어져도,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민준의 공격을 피했다. 녀석의 팔이 다시 뻗어와 민준의 어깨를 스쳤다. 날카로운 통증. 살이 찢어진 듯했다. 그는 비틀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때, 민준의 눈에 괴물의 텅 빈 얼굴 한가운데, 아주 미세하게 움푹 들어간 부분이 보였다. 다른 부위와 달리, 약간 무른 듯한 질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곳이다.
“죽어!”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쇠막대기를 괴물의 얼굴을 향해 내리찍었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끈적한 액체가 튀었다. 괴물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녀석의 몸이 경련하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괴물의 몸은 먼지처럼 서서히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듯,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민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숨을 헐떡이며 상처 입은 어깨를 부여잡았다. 뜨거운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살았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괴물을 죽이고 살아남았다.
폐허귀가 사라진 자리에 작은 조약돌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검붉은 색의 돌멩이. 희미하게 맥박처럼 빛나고 있었다. 민준은 주저하며 손을 뻗었다. 차가운 돌멩이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자마자, 온몸에 알 수 없는 기운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랜 갈증에 시달리던 몸에 시원한 물줄기가 닿는 듯한 상쾌함. 그리고 동시에, 주변의 모든 것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듯한 감각. 흐릿했던 폐허의 모습이 마치 초점이 맞춰진 카메라처럼 또렷해졌다. 먼지 냄새는 더 강하게, 희미한 바람 소리는 더 날카롭게.
‘이건… 대체 뭐지?’
돌멩이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민준은 자신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직감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몸 안에 깃든 것만 같았다. 그는 돌멩이를 꽉 쥐었다. 이 미지의 힘이 무엇이든 간에, 이것이 그의 생존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겨우 몸을 추스른 민준은 폐허를 벗어나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갈증은 여전했지만, 조금 전의 절망감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돌멩이가 주는 미약한 변화가, 어쩌면 이 끔찍한 세상에서 그를 지탱해 줄 유일한 희망일지도 몰랐다.
그는 부서진 건물들 사이를 헤치며 나아갔다. 그의 눈은 이전보다 더 예리하게 주변을 살폈다. 어디에 물이 있을지, 어떤 길이 안전할지, 다음 위협은 어디서 올지. 모든 감각이 이 미지의 돌멩이로 인해 예민해진 듯했다.
오랜 시간 헤매다, 마침내 민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빗물에 잠긴 폐건물 지하였다. 지붕이 통째로 날아간 건물 한쪽, 빗물이 고여 고요한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흐린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 아직 오염되지 않은 듯 투명했다.
“물!”
그는 거의 울부짖다시피 외치며 웅덩이로 달려갔다. 무릎을 꿇고 손으로 물을 움켜쥐었다. 망설임 없이 입을 대자, 차갑고 신선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감각. 살았다. 정말 살았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나서야 민준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이 건물은 그래도 형태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붕괴된 잔해들 사이로, 잠시나마 비바람을 피할 만한 공간이 보였다. 이곳이라면 하룻밤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어깨의 상처를 확인했다. 깊지는 않았지만,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상처를 소독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그는 일단 주워온 천 조각으로 지혈을 했다.
고인 물웅덩이 옆에 쭈그려 앉아, 민준은 품속의 검붉은 돌멩이를 꺼냈다.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이 돌멩이를 ‘생명의 핵’이라고 멋대로 이름 지었다. 이 폐허에서, 그의 생명을 이어준,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줄 존재.
밤이 되자, 폐허는 더욱 음산한 침묵에 잠겼다. 멀리서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민준은 잠 못 이루고 주위를 경계했다. 그는 이곳이 더 이상 그가 알던 세상이 아님을 분명히 인지했다. 이곳은 죽음과 생존의 경계가 희미한 세계였다.
하지만 그는 깨달았다. 두려움 속에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투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경험은 그를 무력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심장을 더 강하게 뛰게 했다. 그는 이 끔찍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던져진 이곳에서, 그는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찾아낼 것이다. 이 황폐해진 세상의 끝에서, 어떤 의미를 찾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강민준은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폐허의 밤은 길었고, 내일도 오늘처럼 험난할 터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품속의 따뜻한 돌멩이가, 희미하게나마 그의 앞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생존은, 이제 그의 숙명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