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항상 오래된 건물에 가장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특히 학교 도서관의 폐쇄된 고문서 보관실이라면 더욱 그랬다. 퀴퀴한 종이 냄새와 먼지, 그리고 죽은 시간의 침묵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김현우는 낡은 서가를 힘겹게 밀어내고 있었다. 비시급 알바치고는 꽤나 고된 일이었다. 교내 최고(最古)의 도서관, 그중에서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 지하 깊은 곳은 마치 살아있는 무덤 같았다.

“젠장, 이게 무슨 무게야…”

투덜거리며 서가의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씩 천장에서 들려오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를 찢고 지나갔다. 곰팡이가 피어오른 벽면은 습기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닳고 닳은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삼켜버릴 듯한 정적이 찾아왔을 때. 서가를 완전히 밀어내자, 그 뒤편의 벽면에 희미한 선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그저 낡은 벽에 생긴 균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균열이 아니었다. 벽면의 돌들이 다른 모양으로 정확히 맞물려 형성된, 완벽하게 숨겨진 이음새였다. 손으로 더듬자, 차가운 돌 틈으로 손가락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평범한 균열이었다면 이런 기분이 들 리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벽의 한 부분을 눌러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다시 다른 부분을. 이윽고 손바닥을 대고 밀어보자,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벽의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동시에 어딘가에서 웅웅거리는 낮은 기계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밀려 들어간 벽은 옆으로 스르륵 움직이며 좁은 통로를 드러냈다. 통로 너머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세상에…”

현우는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서 안을 비췄다. 통로는 길지 않았다. 몇 걸음 옮기자 원형의 작은 방이 나타났다. 방의 벽은 거친 돌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위에는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지구상 어떤 문자도, 어떤 상징도 아니었다.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불규칙하게 얽혀 있었는데, 마치 눈으로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저절로 시선이 미끄러지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그것들을 똑바로 응시하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방의 중앙에는 원형의 낮은 단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단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무언가 있었던 자리 같았다. 움푹 파인 홈이 있었는데, 그 중앙에서 아주 희미한, 하지만 존재감을 지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옅은 보랏빛과 검푸른색이 뒤섞인 듯한 빛. 깜빡이지도, 흔들리지도 않고,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미세하게 팽창하고 수축하는 듯한 빛이었다. 그 빛은 주위의 어둠을 밀어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그 어둠의 일부인 것만 같았다.

현우는 단상 앞으로 다가갔다. 발소리가 먹먹하게 흡수되는 느낌. 빛에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서 희미한 이명이 울렸다. 그건 일반적인 이명이 아니었다. 수천, 수만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중얼거리는 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듯한, 비명과 탄식, 광기가 뒤섞인 소리였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그 소리는 귓속이 아니라, 바로 뇌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손을 뻗었다. 빛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존재했다. 손가락 끝이 빛의 경계에 닿으려 하자, 빛이 더욱 강하게 팽창하는 듯한 착시가 일었다. 동시에 현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찰나의 순간, 우주적인 비전이 스쳐 지나갔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요동치고, 셀 수 없는 눈동자들이 동시에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현우의 심장을 짓눌렀다.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시 플래시를 비춰보아도 그 빛은 여전히 단상 위에서 미약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그 비전이 현실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지나친 긴장으로 인한 환각이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이 방과 저 빛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현우는 서둘러 그 방을 벗어났다. 닫힌 문을 등지고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밀려들어간 서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현우는 더 이상 그 공간이 예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도서관 지하 깊은 곳,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어둠 속에 감춰진 것이 무엇인지를.

그날 밤, 현우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눈을 감으면 빛나던 단상의 보랏빛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이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때로는 저음의 웅얼거림으로, 때로는 고음의 비명으로 변하며 그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새벽 두 시. 잠자코 천장을 응시하던 현우는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똑, 똑, 똑. 마치 못으로 단단한 나무를 긁는 듯한 소리였다. 현우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향했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은 어둠 속에서 더욱 넓고 깊어 보였다.

소리가 멈췄다. 현우는 숨을 죽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헛것을 들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창밖은 완벽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파트 단지 특유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조차 그의 창문까지는 닿지 않는 각도였다. 검은 유리창 너머로 자신의 초췌한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그 순간, 현우는 얼어붙었다.

거울처럼 반사된 유리창 속 그의 두 눈동자가, 마치 도서관 지하의 그 단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희미한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섬뜩할 정도로 차갑고 깊은 빛이었다. 불과 몇 초였다. 보랏빛은 스르륵 사라졌고, 그의 눈은 다시 평범한 인간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현우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단순한 꿈이나 환각이 아니었다. 도서관 지하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대의 힘은, 그를 단지 ‘목격자’로만 남겨두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그것은 이미 그의 안에, 그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예감이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우연한 발견이 그의 삶, 아니, 인류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무언가를 깨웠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었다.

창밖의 어둠은 여전히 깊었다. 하지만 이제 그 어둠은 그저 밤의 잔상이 아니었다. 뭔가 거대하고 알 수 없는 존재가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존재는…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