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뼈에 스미는 곳. 그곳이 강찬의 전장이었다.
‘야차’. 육중한 기체가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지하 심연을 가로질렀다. 거대한 드릴이 회전하며 견고한 암반을 부수고 나아갈 때마다, 조종석 안의 강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산소 순환 시스템이 내뿜는 서늘한 공기가 축축한 땀으로 젖은 그의 얼굴을 스쳤다. 수백 미터 아래, 태고의 시간마저 잊은 듯한 깊은 지하에서, 그들은 인류의 지도를 새로 그릴지도 모르는 고대 유적의 비밀을 쫓고 있었다.
“찬, 전방 100미터 지점. 에너지 반응 미확인 물체 감지. 패턴 불규칙.”
옆자리에 앉은 서연의 차분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홀로그램 패널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은색 프레임 안경 너머로 빛나는 눈빛은 강찬만큼이나 예리했다. 이 지옥 같은 심연 속에서 그녀는 유일한 이정표이자 흔들림 없는 정신이었다.
“불규칙이라… 단순한 광맥은 아니겠군. 전력 더 올려. 뭐든 박살낼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
강찬의 손이 조이스틱을 꽉 쥐었다. 야차의 거대한 팔에 장착된 초고밀도 입자포가 굉음을 내며 장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수십 톤에 달하는 거신(巨神)의 모든 관절에서 희미한 전류가 흘렀다.
쾅!
마지막 암반이 부서져 내리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강찬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맙소사….”
서연의 나직한 탄성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동굴이 아니었다.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수정질 구조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얽혀 있었다. 수천 년은 족히 되었을 그 공간에는 공기의 흐름조차 멈춘 듯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이게… 진짜로 고대 문명이라고?” 강찬의 목소리엔 경외감이 섞였다.
“센서가 미쳐 날뛰어. 이런 규모의 에너지 서명은 처음 봐. 대기 조성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 아니, 차단된 게 아니라… 이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야.”
야차의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거대한 금속 다리가 고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묵직한 진동이 울렸지만, 수정 구조물들은 미동도 없었다. 마치 그들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것처럼.
“중앙으로 가보자. 이 모든 것의 핵심이 있을 거야.”
강찬은 전방에 우뚝 솟은 거대한 아치형 게이트를 향해 기체를 몰았다. 게이트는 어떤 문양도, 장식도 없이 매끈한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자체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야차가 게이트 앞에 멈춰 섰다. 서연이 조심스럽게 탐지기를 작동시켰다.
“특이점 감지. 게이트 안쪽에서… 압도적인 에너지 반응이 있어. 단순한 발전기가 아니야. 마치… 거대한 심장 같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게이트 중앙의 수정 표면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균열을 따라 번져나갔다. 이내 게이트는 거대한 눈처럼 활짝 열렸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어둠을 걷어내고 새로운 공간을 드러냈다.
미로처럼 얽힌 통로들. 천장을 알 수 없는 높이로 뻗어 나간 기둥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서, 하나의 거대한 오브젝트가 거대한 심장처럼 규칙적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젠장, 이걸 발견해버렸군. 본부에 보고해야….”
그때였다.
치이잉-!
사방의 수정 구조물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잠자고 있던 거대한 유적이 깨어나는 소리였다.
“경고! 미확인 비행체 다수 출현! 고대 방어 시스템 가동! 찬, 당장 회피!”
서연의 다급한 외침에 강찬은 본능적으로 야차를 뒤로 물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의 통로에서 수십 대의 작고 날렵한 기계들이 튀어나왔다. 날개 없는 잠자리처럼 생긴 그것들은 수정처럼 투명한 몸체에 푸른 에너지를 감싸고 있었다.
“수호자인가? 이딴 잡동사니들이 야차를 막겠다고?”
강찬은 비웃듯 중얼거렸다. 고대 방어 시스템이라 한들, 현대의 최고 기술력으로 무장한 야차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터였다. 그는 자신 있게 주포를 조준했다.
콰앙! 콰콰쾅!
야차의 주포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가 비행체들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푸른 에너지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비행체 몇 대가 폭발했다.
“이 정도인가….”
강찬의 표정이 굳어졌다. 폭발한 비행체들 잔해가 지면에 떨어지기도 전에, 남은 비행체들이 놀라운 속도로 다시 집결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한 포화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패턴으로 야차를 향해 돌격했다.
“젠장! 빠르잖아?!”
야차의 거대한 몸체는 민첩한 비행체들을 따라잡기 버거웠다. 수십 대의 비행체가 야차의 장갑을 긁고 지나가자, 충격음과 함께 경고등이 번개처럼 깜빡였다.
“실드 효율 20% 하락! 국부 장갑 손상 확인!”
“이 미친 고물들이….”
강찬은 조이스틱을 거칠게 꺾으며 야차의 팔을 휘둘렀다. 거대한 금속 주먹이 비행체들을 짓뭉개며 몇 대를 파괴했지만, 그들은 끝없이 몰려들었다. 압도적인 수로 야차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듯이.
“찬, 저 중앙의 오브젝트가 이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어! 저걸 파괴하지 않으면 끝이 없어!” 서연이 소리쳤다.
“알고 있어!”
강찬은 입술을 깨물었다. 야차의 다리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며 거대한 몸을 띄워 중앙 오브젝트를 향해 돌진했다. 비행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야차의 추진기를 공격했지만, 강찬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저 심장처럼 뛰는 푸른 오브젝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기서 끝내주마!”
야차의 팔이 뒤로 당겨졌다. 거대한 주먹에 에너지가 집중되고, 팔 전체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강력한 충격파를 담은 주먹이 오브젝트를 향해 내리꽂히는 순간,
우우웅-!
오브젝트에서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사방의 수정 기둥들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오브젝트를 감쌌다. 기둥들이 서로 연결되고 합쳐지며, 거대한 골렘 같은 형체가 만들어졌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신.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까지. 수정과 금속이 섞인 듯한 그 몸체에서는 압도적인 기운이 흘러나왔다. 고대 방어 시스템의 ‘핵심’이 직접 깨어난 것이다.
“젠장, 저건 또 뭐야!” 강찬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서렸다.
“데이터 없음! 센서 과부하! 에너지 패턴은… 저 비행체들과는 비교도 안 돼! 주포로는 어림도 없어!”
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거신은 방어 시스템의 일부라기보다는, 이 유적 자체의 수호신처럼 보였다.
크아아아-!
거신이 울부짖자, 주변의 비행체들이 일제히 야차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강찬은 이미 거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주먹을 쥔 채 다가오는 거신에게서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피해!” 서연이 경고했지만 이미 늦었다.
거신의 거대한 주먹이 야차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앙! 야차의 몸체가 바닥에 처박히며 지면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었다. 조종석 안의 강찬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경고등이 미친 듯이 울리고, 시스템 오류 메시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젠장!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이야!”
강찬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야차의 한쪽 팔이 너덜너덜하게 부서져 있었다.
“찬, 저 녀석… 이 유적의 에너지를 직접 끌어다 쓰고 있어. 이 모든 구조물이 저 녀석의 일부야!”
서연의 분석에 강찬은 이마를 짚었다. 거신을 파괴하는 것은 유적 전체를 파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약점을 찾아야 해. 아무리 강력한 시스템이라도 맹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야차가 부서진 팔을 끌며 거신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거신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야차를 쫓았지만, 야차의 기동성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강찬은 거신의 움직임, 에너지 흐름, 모든 것을 예민하게 관찰했다.
“서연, 저 녀석 몸체의 수정 구조물들, 자세히 살펴봐. 다른 곳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
“잠깐… 찾았다! 오른쪽 어깨 부근의 수정 구조물. 다른 곳보다 미세하게 에너지 흐름이 불안정해! 아마 봉인된 출력 장치나 제어 모듈일 거야!”
“좋아!”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야차의 남은 팔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부서지지 않은 주포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하고, 거신을 향해 겨눴다.
“간다! 이 고물 덩어리!”
야차가 맹렬한 속도로 거신에게 돌진했다. 거신은 거대한 팔을 휘둘러 야차를 막으려 했지만, 강찬은 마치 춤을 추듯 그 공격을 피하며 거신의 어깨로 기어올랐다.
콰앙! 콰앙! 콰아앙!
야차의 주포가 약점으로 지목된 어깨 부위를 맹타했다. 거신은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으며 몸을 뒤척였지만, 강찬은 멈추지 않았다. 부서진 팔의 잔해마저 이용해 거신의 어깨에 매달렸다.
“더! 더! 아직 부족해!”
야차의 마지막 남은 에너지가 주포에 집중되었다. 푸른 빛이 격렬하게 일렁이며 거신의 어깨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끼이이이익- 콰자작!
마침내, 거신의 어깨 부위 수정 구조물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산산조각 났다. 푸른 에너지의 폭주가 일어났고, 거신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몸을 지탱하던 푸른 에너지가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성공했어!” 서연이 환호했다.
거신은 결국 거대한 굉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사방의 비행체들도 에너지를 잃고 고철 덩어리가 되어 떨어졌다. 모든 것이 멈췄다. 유적은 다시 고요함에 잠겼다.
강찬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야차를 멈춰 세웠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휴우… 젠장, 목숨 줄 끊어지는 줄 알았군.”
“수고했어, 찬.” 서연의 목소리엔 안도감이 가득했다. “이제 저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 있겠어.”
야차가 조심스럽게 쓰러진 거신의 잔해를 지나, 빛을 잃은 오브젝트의 내부로 진입했다. 그곳은 모든 빛이 차단된 듯한, 텅 빈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나의 홀로그램 패널이 떠 있었다. 패널에는 고대 문자가 번개처럼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서연이 즉시 패널과 야차의 시스템을 연결했다. 수많은 데이터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가셨다.
“서연? 뭘 발견한 거지?”
“이건… 봉인 기록이야. 이 유적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어. 거대한 봉인 시설이야. 그들이… 이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가두기 위해 만들었어.”
“봉인? 뭘 봉인했다는 거야?”
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홀로그램 패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정교하게 그려진 하나의 그림이 떠올랐다. 뱀처럼 뒤틀린 형체, 온몸을 촉수로 휘감은 거대한 존재. 그리고 그 존재가 지상에 나타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끔찍한 이미지.
“그들은… 지구의 심장에서 태어난 재앙을 봉인했어. 우리가 방금 쓰러뜨린 거신은 그 봉인을 지키는 마지막 수호자였고.”
강찬은 멍하니 그림을 바라봤다. 그들은 지금껏 탐사라는 미명 아래, 인류를 지켜온 봉인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 거신은 침입자를 막으려 한 것이 아니라, 봉인이 풀리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우리가… 어쩌면 이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군.” 강찬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 기록이 말해줘. 봉인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우리가 파괴한 수호자는 봉인의 일부였어.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이대로 두면 언젠가 봉인이 약해질 거야.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막아야 해.”
두 사람의 시선은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봉인된 심연을 향했다. 그들은 엄청난 발견을 했지만, 그 무게는 그 어떤 보물보다 무거웠다. 그들의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전쟁의 시작.
야차의 엔진이 다시 한번 낮게 울렸다. 그들은 이제 임무를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 이곳에서 발견한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다가올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희미한 푸른빛만이 그들의 앞길을 비추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