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의 박동, 균열의 속삭임
“야, 하준! 거기 아직이야? 내려와서 점심 먹자니까!”
머리 위로 요란하게 울리는 동료의 목소리에 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거대한 시계탑 내부를 가득 채운 증기 소리와 톱니바퀴의 삐걱임, 철거 작업의 굉음 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녹슨 철골 구조물 사이로 희미한 햇빛이 부스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먼지와 쇳가루가 공중에 춤을 추는 이곳은 말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공간’이었다. 적어도 하준에게는 그랬다.
“알았어요! 거의 다 됐어요!”
하준은 마지못해 대답하며 손에 든 육각 렌치를 더욱 힘주어 돌렸다. 그가 맡은 구역은 오래된 시계탑의 가장 깊숙한 하층부였다. 수십 년간 한 번도 열린 적 없다는 거대한 구리 장치들은 먼지와 녹으로 뒤덮여 있었다. 도시 개발국에서는 이 ‘오래된 시계탑’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철거하기로 결정했지만, 그 결정 이면에는 알 수 없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음을 하준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탑의 건축 양식이나 내부 구조물은 그 어떤 알려진 기술 체계와도 달랐다. 분명 범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덜컹.
마지막 볼트가 풀리자, 거대한 증기압축기가 삐걱거리며 한쪽으로 기울었다. 하준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저 장치를 분해해서 올리면 오늘의 작업은 끝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는 다른 동료들의 망치질 소리와 무거운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때였다.
삭막한 기계음들 사이로, 불협화음처럼 섞인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먼 곳에서 박동하는 듯한 규칙적인 진동. 하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증기압축기의 잔류 에너지일 리는 없었다. 그건 이제 완전히 멈춰 섰으니까.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낡은 시계탑의 하층부는 미로와 같았다. 얽히고설킨 파이프와 톱니, 알 수 없는 용도의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진동은 분명 그의 발밑, 혹은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했다.
호기심이 그의 직업 정신을 자극했다. 그는 작업 도구를 내려놓고 진동의 근원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철골 구조물 아래, 거대한 증기 파이프가 지나가는 통로를 따라 그는 더욱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통로의 끝은 무언가로 막혀 있었다. 낡은 목재 패널과 철판이 무질서하게 덧대어진 벽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나?”
하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도시 개발국에서 준 도면에도 이런 곳은 없었다. 그는 손전등을 켜고 벽을 비췄다. 낡은 패널 사이로 희미한 틈이 보였다. 그 틈새로 진동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틈 안쪽에서 아주 미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맥박처럼 규칙적인 주기로.
이건 작업 구역이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 고의적으로 숨겨놓은 공간이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경계심과 함께 미지의 것에 대한 강렬한 갈증이 치밀었다. 그는 주변에 굴러다니던 쇠지렛대를 집어 들었다. 썩어가는 목재는 생각보다 쉽게 부서져 나갔고, 덧대어진 철판도 낡아빠진 볼트 몇 개로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끼이이익- 쾅!
낡은 철판이 떨어져 나가면서 좁은 통로가 드러났다. 하준은 손전등을 켜고 안을 비췄다. 통로는 길지 않았다. 몇 걸음 옮기자 원형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증기 파이프도, 톱니바퀴도, 기름때 묻은 기계 장치도 없었다. 매끄럽고 어두운 돌로 된 벽면은 주변의 낡은 철골 구조물과 완전히 이질적이었다. 공기는 차갑고 정적이었으며, 그의 숨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그리고 공간의 중앙, 검은 돌로 된 낮은 받침대 위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육면체였다.
아니, 완벽한 육면체는 아니었다. 마치 액체처럼 찰나의 순간마다 그 형태를 미세하게 왜곡하는 듯한 검은 돌 육면체.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듯 어두웠지만, 그 내부에서는 희미하고 붉은 빛이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수억 년 된 별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 같았다. 그 빛은 차갑고도 뜨거웠고, 고요하면서도 폭풍 같았다.
하준은 숨을 멈췄다. 그의 모든 공학적 지식, 모든 상식이 이 육면체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이것은 기계가 아니었다. 광물도 아니었고, 생명체도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육면체의 표면에 닿는 순간, 차가운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뇌리 속으로 수많은 이미지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거대한 유성들이 밤하늘을 가르고, 대지가 갈라지며 솟아오르는 검은 돌기둥들, 그리고 그 기둥 사이에서 피어나는 찬란한 빛의 기둥.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알 수 없는 형체들이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한 환상.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영겁의 시간을 통과한 것 같은 생생함이었다.
“으읍!”
하준은 저도 모르게 손을 거두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심장이 귓가에서 쿵쾅거렸다.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현실의 정적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육면체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의 손이 닿았던 부분이 더욱 진한 붉은빛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잠자던 거인이 깨어나는 것처럼.
그때, 하준의 등 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부숴놓은 철판이 바람에 의해 다시 벽에 부딪힌 것이었다. 순간, 원형의 공간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정적이 깨졌다. 육면체의 빛이 더욱 강렬해지더니, 주변의 어두운 돌벽에 붉은 문양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고대의 문자 같기도 하고, 복잡한 회로도 같기도 한 문양들이 빛을 내며 공간을 에워쌌다.
그리고, 바깥에서 다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가까워진 듯했다.
“하준! 거기서 뭐 해! 빨리 안 나오면 진짜 점심 혼자 먹고 간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비밀스러운 공간, 그리고 이 미지의 육면체가 동료들에게 발각된다면 어떻게 될까. 탐욕스러운 도시 개발국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하준은 재빨리 육면체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이 고대의 힘이 자신에게만 허락된 것이기를 바라며,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육면체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육면체가 손바닥에 완전히 감싸이자, 공간 전체를 뒤덮었던 붉은 문양들이 일순간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탑의 상층부에서 거대한 톱니바퀴가 이성을 잃은 듯 삐걱거리며 헛도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톱니바퀴의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철과 철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세상의 모든 증기기관이 동시에 멈춰 서는 듯한 끔찍한 소음이었다.
“하준! 무슨 일이야?!”
동료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물들어갔다. 그는 이 모든 비정상적인 현상이 육면체 때문임을 직감했다. 하준은 이를 악물고 육면체를 가슴에 품었다. 그의 심장이 육면체의 맥동과 하나가 되는 듯했다. 공간의 붉은 문양들은 그의 존재를 인식하는 듯,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문득, 그의 눈에 검은 돌벽 한쪽에 희미하게 드러난 틈새가 보였다. 너무나도 작고 미약하여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균열. 그 균열 속에서, 아주 잠시 동안, 차가운 눈동자 두 개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것은 착각일까? 아니면, 자신이 깨운 무언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하준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돌렸다. 동료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부서진 벽의 철판을 대충이나마 다시 세워 가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육면체는 그를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는 이미 현실 세계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의 손에 든 검은 육면체는 여전히 뜨겁게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이제 막 심장이 뛰기 시작한, 새로운 세상의 시작처럼. 혹은… 새로운 비극의 시작처럼.
하준은 서둘러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며 뒤를 돌아봤다. 닫혀버린 어둠 속에서, 붉은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균열 속 눈동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확신했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며, 이 육면체는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를 통해서, 세상에 다시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