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균열 (Cracks)

한낮의 햇살이 사무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지혁의 반들거리는 이마 위로 내려앉았다. 그는 회의실 한가운데 서서 막힘없이 유려한 언변으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슈트, 자신감 넘치는 표정, 흔들림 없는 시선. 그 모든 것이 그가 얼마나 견고한 위치에 서 있는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마치 태양처럼 모든 것을 비추며, 그림자 하나 없이 빛나는 존재처럼.

나는 빌딩 건너편, 어둡고 낡은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내 손에 든 낡은 커피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지만, 내 속은 이미 얼어붙은 지 오래였다. 저 위선적인 웃음, 저 거짓된 성공. 저 빛나는 허상. 곧 산산조각 날 거야. 반드시.

“…따라서 이번 분기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혁의 브리핑이 끝나자, 회의실 안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그의 능력에 감탄하고, 그의 리더십을 칭송했다. 그중에는 지난날, 나와 함께 밤을 새워가며 머리를 맞대던 동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지혁의 그림자 아래에서 그의 성공을 찬양하고 있었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가장 강한 빛을 쫓았을 뿐이니까.

내 입술 사이로 차가운 조소가 흘러나왔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는, 너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내가 존재한다.

***

그날 오후, 지혁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평소 같으면 스팸으로 분류되었을 법한 익명의 이메일 한 통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삭제하려던 찰나, 제목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데이터 복구 요청 건]**

왠지 모를 섬뜩함에 지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최근 어떤 데이터도 복구 요청한 적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열자, 본문에는 짧은 문구와 함께 첨부 파일이 하나 붙어 있었다.

**_‘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은, 언제나 잊고 있던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_**

첨부 파일을 열어보니, 난해한 암호화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오래된 코드 몇 줄이 보였다. 그것은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기억과 기묘하게 겹쳐졌다. 지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수롭지 않은 장난 메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묘한 불쾌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혹시 경쟁사에서 보내는 협박? 아니면 개인적인 원한?

그는 즉시 보안팀에 연락해 발신자 추적을 지시했지만, 돌아온 답은 허무했다. “해외 IP를 경유한 것으로 보이며, 추적이 어렵습니다.”

“말도 안 돼! 요즘 같은 세상에 추적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혁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

다음 날 아침, 지혁은 출근하자마자 또 다른 문제를 마주했다. 그가 총괄하는 핵심 프로젝트 서버에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데이터 유실은 없었지만, 시스템이 불안정해져 모든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담당 팀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지혁에게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어젯밤 퇴근 전까지는 아무 이상 없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었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고, 내부 시스템 충돌로 보입니다.”

지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 받은 그 이메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는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당장 모든 팀원들 동원해서 원인 분석하고 복구해. 이번 주 안으로 정상화 못 시키면 다들 책임져야 할 거야.”

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지혁의 마음속에는 이미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그의 세계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

퇴근 후, 지혁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그를 덮쳤다. 그는 침대 위에서 뒤척이다, 결국 벌떡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불안할 때마다 습관처럼 과거의 성공을 되짚어 보곤 했다. 그에게 성공은 곧 안정이었으니까.

그는 오래된 서랍 깊숙이 넣어둔, 첫 성공을 안겨주었던 프로젝트 자료들을 꺼냈다. 노랗게 변색된 문서들, 직접 손으로 그린 설계도. 그리고 그 자료들 사이에서 낯선 종이 한 장이 툭 떨어졌다.

그것은 흑백 사진이었다. 오래전, 나와 지혁, 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초기 팀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 우리는 모두 앳된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나는 가장자리에 서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흐릿한 글씨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지혁의 필체가 아닌, 낯선 필체로 쓰인 문장이 있었다.

**_‘모든 것은 그때 시작되었다. 네가 나의 모든 것을 빼앗던 그 순간부터.’_**

지혁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사진 속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그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사진 속 나의 눈동자가, 마치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똑바로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사진 속 나의 눈동자를 조금 더 확대했을 때, 선명하게 인쇄된 작은 점 하나가 보였다. 너무나 작고 미묘해서 평소에는 눈치채지 못했을, 그러나 지금은 섬뜩하게 다가오는 점. 그것은 다름 아닌, 소형 카메라 렌즈였다.

마치 그 카메라 렌즈를 통해, 누군가 자신을 지금 이 순간에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혁은 사진을 떨어뜨렸다. 종잇장이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고요한 서재를 날카롭게 찢었다. 그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맙소사. 이건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이건… 복수였다.

누구지? 대체 누가…

그때, 서재 창문 밖에서 바람 소리가 울렸다. 나뭇가지가 창문을 긁는 소리가 마치 짐승의 발톱 소리처럼 들렸다. 지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응시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바깥세상. 그곳 어딘가에, 그림자처럼 숨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눈동자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나지막하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어? 네가 잃어버렸던 것들 중에, 가장 소중했던 거.”

지혁의 몸이 경직되었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그는 감히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창문 유리에,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 나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손에 들린 것은, 오래전 우리가 함께 개발했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의 칩이었다. 빛에 반사되어 번뜩이는 그 칩은, 지혁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던 탐욕의 상징이자, 내 모든 것을 잃게 했던 파멸의 씨앗이었다.

“이제 시작이야, 지혁아.”

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해서, 오히려 지혁의 귓가에 섬뜩한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네가 나에게서 빼앗아간 모든 것들을, 이제 하나씩 되돌려줄게. 훨씬 더 잔혹한 방식으로.”

창밖의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지혁은 식은땀으로 젖은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흑백 사진을 움켜쥐었다. 사진 속 나의 눈동자에서, 비로소 잔혹하고 차가운 미소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의 완벽했던 세계에 드리워진 균열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