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톤에 달하는 강철 거인이 격돌하는 소리가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콰아아앙! 육중한 충격파가 관중석을 덮쳤고, 보호막 너머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강호진의 천뢰(天雷)는 백룡대사의 백룡기(白龍機)에게 밀리고 있었다. 백룡기는 말 그대로 흰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관절마다 황금빛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고풍스러운 종소리가 울렸다. 반면 천뢰는 검은색의 날렵한 형태, 번개처럼 뻗은 팔다리가 특징이었다.
“크윽…!”
호진은 조종석에 몸을 기댄 채 신음을 흘렸다. 백룡기의 주먹이 천뢰의 방패를 강타할 때마다 전신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백룡대사의 내공이 고스란히 기갑(機甲)에 실려 전달되는 것이 분명했다. 단순한 물리적 충격이 아니었다. 그의 기(氣)가 천뢰의 시스템을 간섭하며 호진의 정신마저 흔들었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
백룡대사는 무림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오십 년 전, 철마(鐵馬)의 난에서 홀로 수천의 기갑군을 막아냈다는 기록이 아직도 무림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의 무학은 단순히 육신을 단련하는 것을 넘어, 기갑과의 합일을 이룩한 경지였다. 마치 그의 백룡기가 거대한 팔다리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라.
백룡기의 주먹이 다시 쇄도했다. 이번에는 정면이 아닌, 천뢰의 옆구리를 노렸다. 호진은 재빨리 천뢰를 기울여 회피했지만, 백룡기의 등에서 솟아난 거대한 백룡 발톱이 그의 움직임을 읽고 따라왔다. 쩌저적! 천뢰의 어깨 장갑이 긁히며 불꽃이 튀었다.
“네놈의 잔재주로는 늙은 용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백룡대사의 목소리가 정신 연결망을 통해 호진의 뇌리에 직접 울렸다. 그 음성은 고요하면서도 심연처럼 깊었고, 압도적인 기운을 담고 있었다. 호진은 이를 악물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에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 천하무예대회는 단순히 무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천기정수(天機精髓)의 주인을 가리고, 파멸의 문턱에 선 강호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었다.
‘백룡의 기(氣) 흐름… 분명 어딘가에 빈틈이 있을 텐데.’
호진은 자신의 기를 천뢰의 센서에 집중시켰다. 전투의 격렬함 속에서도 그는 백룡기의 미세한 움직임, 기의 흐름을 읽으려 애썼다. 백룡대사의 무학은 ‘태극무신류(太極武神流)’. 유(柔)로 강(剛)을 제압하고, 흐르는 물처럼 상대의 힘을 흘려보내는 동시에 역이용하는 극강의 무예였다. 그가 조종하는 백룡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백룡기가 자세를 낮추더니, 마치 거대한 용이 몸을 웅크리듯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전신에서 흰색의 기운이 폭발하며 뿜어져 나왔다.
“백룡승천파(白龍昇天破)!”
대사의 일갈과 함께 백룡기는 거대한 발톱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렸다. 바닥의 강철판이 찢겨나가며 허공으로 치솟았고, 응축된 기(氣)의 파동이 거대한 회오리가 되어 천뢰를 향해 돌진했다. 막으면 부서질 것이고, 피하면 빈틈이 노출될 터였다.
호진은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피한다면… 다음 공격은?’
그는 눈을 감고, 백룡대사의 다음 수를 예상했다. 태극무신류는 한 번 공격을 시작하면 유기적으로 다음 공격으로 연결되었다. 백룡승천파로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린 후, 무방비 상태가 된 상대를 단번에 제압하는 것이 정석일 터.
“천뢰, 최대 가속!”
호진은 백룡승천파가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천뢰의 추진 엔진을 최대로 가동했다. 콰앙! 천뢰는 번개처럼 지면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백룡승천파의 회오리가 발밑을 스치며 천뢰의 다리 장갑을 태웠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공중으로 솟구친 천뢰는 백룡기의 등 뒤로 빠르게 이동했다. 백룡대사는 호진이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회피할 줄은 몰랐는지, 잠시 움직임이 삐끗했다. 아주 미세한 순간이었지만, 호진에게는 충분한 기회였다.
‘찾았다! 태극무신류의 진정한 약점은… 유연함 속의 경직이다!’
태극무신류는 흐름을 타는 무예. 흐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지면, 그 순간만큼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찰나의 경직이 생긴다는 것을 호진은 깨달았다. 백룡대사의 노련함으로 그 경직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지만, 호진의 천뢰는 기(氣)의 흐름을 읽는 특화된 센서 덕분에 감지할 수 있었다.
“천뢰, 번개 찌르기!”
호진의 외침과 함께 천뢰의 오른팔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팔꿈치와 손목의 기갑이 분리되며 섬광을 내뿜었고, 그 끝에 달린 강화 강철 너클이 백룡기의 등짝을 향해 날아갔다. 그곳은 백룡기가 방금 백룡승천파를 시전하며 기를 응축했던 부위, 즉 일시적으로 기운이 빠져나간 곳이었다.
쉬이이잉! 섬광이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백룡대사는 뒤늦게 자신의 등 뒤를 감지하고 백룡기를 회전시키려 했으나, 천뢰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콰지직!
강철과 강철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룡기의 등짝에 박혀있던 황금 문양 하나가 깨지며 푸른 섬광을 내뿜었다. 그 파편이 튀는 순간, 백룡기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호오… 제법이구나, 강호진!”
백룡대사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흥미가 섞여 있었다. 천뢰의 공격은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백룡대사의 철벽 같은 방어를 뚫고 일격을 가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였다.
호진은 천뢰의 팔을 회수하며 숨을 골랐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균형을 맞춘 것 같았다. 하지만 백룡대사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의 백룡기는 비록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 기세는 여전했다.
백룡대사가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깨진 황금 문양에서 푸른 섬광이 사그라드는가 싶더니, 이내 더욱 강력한 기운이 그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무예다, 젊은이.”
그의 눈빛이 깊은 호수처럼 고요하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광기가 번뜩였다. 백룡기의 파손된 등짝에서 푸른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주변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호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는 백룡대사가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뜻인가. 그가 온전히 힘을 해방한다면…
천뢰의 센서가 경고음을 울렸다. ‘에너지 반응 급증! 위험 수치 초과!’
백룡대사의 백룡기가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태고적부터 존재했던 신비한 용이 깨어나는 듯했다.
“받아라, 무신강림(武神降臨)!”
하늘을 뒤덮을 듯한 백룡기의 거대한 실루엣 아래, 호진은 천뢰를 단단히 붙잡았다. 전신에서 기(氣)를 끌어올렸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천하의 운명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