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밤은 깊고, 칠월검문(七月劍門)의 별채, 무영각(無影閣)은 고요에 잠겨 있어야 마땅했다.
그날 밤, 문주는 물론이고 칠월검문의 모든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대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십 년에 한 번 찾아오는 강호의 큰 손님, 천리만리에 명성을 떨치는 학사검객 백노인(白老人)을 맞이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연회장의 떠들썩한 웃음소리는 밤하늘을 수놓은 등불만큼이나 화려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광경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무영각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백노인이 잠시 쉬겠다며 들어간 지 두 시진이 넘었다. 평소라면 벌써 연회장으로 돌아왔을 시간이었기에, 시중을 들던 시비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백노인 어르신, 주무십니까? 소저입니다. 식혜를 가져왔습니다.”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고, 백노인을 부르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불안감을 느낀 시비는 문득 굳게 잠긴 문고리를 발견했다. 안에서 걸어 잠근 듯한 묵직한 쇠빗장이 단단히 걸려 있었다.

“문이 잠겼습니다!”

시비의 다급한 외침은 삽시간에 연회장으로 퍼져나갔다. 이내 문주인 천검자(天劍子)를 비롯해 몇몇 장로들과 호위무사들이 무영각 앞으로 달려왔다. 천검자의 얼굴에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백노인은 강호의 기인(奇人)으로, 그 행적이 늘 비밀스러웠고 적 또한 적지 않았다.

“문을 부숴라!”

천검자의 명령에 따라 건장한 호위무사 두 명이 합세하여 묵직한 나무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쾅! 몇 번의 육중한 충돌음 끝에, 문은 마침내 안쪽 쇠빗장이 부러지며 활짝 열렸다.

무영각 내부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호위무사들이 횃불을 높이 들자, 불길이 춤을 추며 방 안을 환하게 비췄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숨이 멎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서안(書案) 위, 붓이 든 채로 백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등에는 옥으로 만든 듯한 섬세한 비수(匕首)가 깊이 박혀 있었고, 검붉은 피가 서안 위로 흥건히 흘러내려 먹물을 삼키고 있었다. 이미 싸늘하게 식은 몸.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백노인!”

천검자의 절규와 함께, 방 안에는 경악과 혼란이 뒤섞인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위무사들은 즉시 방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내 멈춰 섰다. 방 안에는 백노인 외에 그 누구의 흔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창문은 안에서 굳게 걸어 잠겨 있었고, 창호지 또한 찢기거나 손상된 곳이 없었다. 완벽한 밀실. 밀실 살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장로가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안에서 문을 잠갔는데… 범인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다른 장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혼란의 와중, 한 무사의 외침이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바닥에 발자국이 있습니다!”

모두가 시선이 향한 곳은 백노인의 서안 옆, 먼지 앉은 마룻바닥이었다.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 하나.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 발자국은 서안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고, 방을 가로지르거나 외부로 향하는 다른 발자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범인이 백노인만을 찌른 후,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헛소리 마라!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말인가!” 천검자가 격노하며 소리쳤다. “설마… 유령의 짓이라도 한단 말이냐?”

그때였다.
소란스러운 무영각의 입구에, 조용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회색 도포를 입고,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했지만, 묵묵히 방 안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고 해진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한 서생! 자네는 대체 언제 온 건가?”

뒤늦게 그를 발견한 천검자가 반가움과 동시에 의아함을 표했다. 한백(韓伯). 그는 칠월검문의 손님 중에서도 가장 기묘한 인물이었다. 무예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병약한 몸에, 항상 책을 끼고 살며 온갖 괴팍한 서책만을 탐독하는 괴짜 학자. 하지만 그의 머리에는 강호의 어떤 고수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해결한 일화가 수없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를 ‘강호의 기린아’ 혹은 ‘천기(天機)를 읽는 자’라고 불렀다.

한백은 천검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침묵하며 방 안을 둘러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꼼꼼하게, 바닥의 먼지, 서안 위의 붓, 피의 웅덩이, 그리고 백노인의 시신, 마지막으로 창문과 문고리에까지 머물렀다. 한참을 그렇게 방 안의 모든 것을 눈에 담던 한백은, 비로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천검자님, 백노인께서는 연회장에 가기 전, 이곳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천검자는 잠시 당황했다.
“무엇을 하다니? 그저 잠시 쉬고 싶다며 들어오셨지. 백노인은 늘 홀로 있기를 좋아하시니…”

“아닙니다.” 한백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서안 위에는 먹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붓은… 쥐고 있던 손이 풀어지며 떨어졌을 때의 궤적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옆에는 막 꺼낸 듯한 비서(秘書)가 펼쳐져 있습니다. 백노인께서는 분명 어떤 책을 베껴 쓰고 계셨거나, 중요한 문서를 작성하고 계셨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서안으로 향했다. 과연 한백의 말대로였다. 쓰다 멈춘 듯한 먹물 자국이 선명했고, 백노인이 탐독하던 천년비서가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그것이 중요한가, 한 서생?” 천검자가 답답한 듯 물었다. “지금은 누가 백노인을 죽였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중요합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한백은 조용히 대답하며 백노인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비수가 박힌 백노인의 등을 훑었다. “범인은 백노인이 정신없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동안, 뒤에서 기습하여 치명상을 입혔을 겁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백노인의 몸에서는 그 어떤 저항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손톱 밑에 누군가의 살점이나 옷 조각도 없습니다. 그의 손은 붓을 쥐고 있었고, 그 상태 그대로 쓰러지신 겁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백노인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움직였다는 말인가?” 한 장로가 경악했다.

“혹은…” 한백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노인이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거나,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 말의 의미를 곱씹는 동안, 한백은 방바닥의 희미한 발자국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바닥의 먼지를 쓸어 올렸다. 먼지는 그의 손가락 끝에 묻어났다.

“이 발자국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서안 앞에서 시작되어 서안 앞에서 끝납니다. 마치 범인이 공중에서 내려와 백노인을 죽인 뒤, 다시 공중으로 사라진 듯합니다. 칠월검문에는 공중 부양술을 익힌 고수가 있습니까?”

천검자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한 서생! 농담이 과하군! 그런 무공은 전설 속에나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발자국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한백은 여전히 바닥의 먼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이 발자국은 분명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나 범인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한백은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한참 동안 천장의 들보와 서까래에 머물렀다. 그의 얼굴에는 미미한 미소가 피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닙니다.”

한백의 말에 천검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다시 한번 방을 훑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범인이 드나들었을 만한 구멍이나 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들은 완벽하게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서 있었다.

“한 서생, 자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우리가 이 방의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했네! 완벽한 밀실이 아니고서야, 범인이 백노인을 죽이고 어떻게 사라질 수 있었단 말인가!”

한백은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천장을 향해 있었다.
“물론입니다. 범인은 백노인을 죽이고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 밀실의 ‘트릭’은 완벽하게 저에게 드러났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칠월검문의 고수들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한백의 맑고 깊은 눈동자에는 이미 모든 답이 담겨 있는 듯했다.

“다만, 그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백은 서서히 천장에서 시선을 거두고 천검자를 바라봤다.
“이 무영각은 원래 백노인께서 머무실 방이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원래 배정되었던 방은 어디였습니까?”

천검자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이내 대답했다.
“원래는… 동쪽에 있는 낙엽각이었다네. 하지만 백노인께서 고요한 곳을 선호하신다며 직접 이 무영각으로 옮겨달라 하셨지. 이곳은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외진 곳이라…”

한백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역시… 그랬군요. 그렇다면 백노인께서는 이곳에서, 그 밀실의 ‘진짜 주인’을 만나셨던 겁니다.”

모두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진짜 주인’이라니?
한백은 그들의 당혹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다시 한번 천천히 방 안을 훑어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 트릭은… 단순히 문과 창문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방의 ‘구조’ 자체가 범인의 완벽한 도구였습니다.”

무영각의 밤은 깊어지고, 한천의 달빛은 핏자국이 선명한 방 안을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한백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차가운 비수가 되어 모두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밀실 살인의 완벽한 진실이, 이제 막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