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핏줄 같은 네온사인 강물 아래, 카인은 검은 후드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다. 미간에 드리운 그림자가 늘 그랬듯 그의 눈을 숨겼다. 손안의 낡은 데이터 칩이 희미하게 열을 뿜고 있었다. 스크린 위로 지직거리는 노이즈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카인, 이거 물건이야. 아니, 물건 중에서도 특급 물건.”
호기심 가득한 리리의 목소리였다. 언제나처럼 장난기 넘치지만, 그 속엔 칼날 같은 정보가 숨어 있었다. 카인은 칩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특급이라… 네 특급은 늘 내 등을 땀으로 적시더군.”
“이번엔 좀 달라. 진짜야. 어쩌면 네 평생의 숙제를 풀어줄지도 모른다고.”
리리가 보내온 좌표는 도시의 가장 깊은 심층부, 지도에도 없는 미등록 구역을 가리켰다. 그곳은 메가코프의 데이터베이스에서조차 ‘접근 제한’을 넘어 ‘정보 없음’으로 분류된 금지된 공간이었다.
“잊혀진 고대 유적. 농담이지?”
카인의 비웃음 섞인 질문에 리리는 쾌활하게 웃었다.
“농담 같지? 나도 처음엔 그랬어. 그런데 이 칩에서 발견된 암호 조각들을 조합해보니, 이 도시에 대한 오래된 전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고. 도시가 세워지기 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문명의 흔적.”
도시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낡은 모노레일의 흔들림이 카인의 심장을 울리는 것 같았다. 지상 위, 수천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신도시는 빛과 데이터로 번뜩였지만, 그 아래는 버려진 산업 단지와 폐기된 거주 구역들이 거대한 미궁을 이루고 있었다. 그 미궁의 더 아래에, 리리가 말하는 ‘고대’가 잠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도착했어.”
모노레일이 멈춰 선 곳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긴 폐쇄된 플랫폼이었다. 공기는 습하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카인은 나노 코팅된 손전등을 켜 주위를 비췄다. 녹슨 철골 구조물과 파괴된 보안 드론들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리리, 나만 여기 있는 것 같군.”
“아니, 네 뒤에 인기척이… 있을 리가 없지. 그 구역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봉인됐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야. 보안 시스템도 진작에 마비됐을 거고.”
그때, 카인의 귀에 연결된 이어폰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렸다. 리리의 목소리가 일그러졌다.
“잠깐, 이상해. 내 신호가 자꾸 끊겨. 이 구역에… 뭔가 방해 전파가 도는 것 같아.”
카인은 경계하며 한 손으로 총을 쥐었다. 이곳은 폐허였지만, 폐허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문객들을 품기 마련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삐걱거리는 금속 바닥을 딛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향했다. 리리가 보내준 좌표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무너진 콘크리트 벽 너머로 묘한 빛이 감지됐다. 푸르스름하고, 마치 생물체처럼 일렁이는 빛이었다.
“리리, 이 빛은… 뭐지?”
“내 스캐너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해! 단순한 누전은 아닌 것 같아. 에너지 서명 자체가… 이 시대의 기술이 아니야.”
카인은 조심스럽게 빛의 근원으로 다가갔다. 폐허가 끝나는 지점, 거대한 바위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바위벽 한가운데에, 푸른빛을 뿜어내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현대적인 스캐너로는 파악할 수 없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문양들이었다. 기하학적이고, 동시에 유기적인 곡선들이 서로 얽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고대… 문명이라더니, 진짜였나.”
카인은 문양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바위벽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그의 눈을 압도했다. 주변의 폐허가 흔들리고, 천장에서 먼지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젠장!”
카인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거대한 바위벽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거인이 기지개를 켜듯, 육중한 소리를 내며 두꺼운 돌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그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냉기 속에, 카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문 안쪽은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그 너머에서 거대한 공간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카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건 빛이 아니라, 수십 개의 붉은 점들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아니, *무언가의* 감시 시스템처럼.
“리리…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온 것 같지는 않군.”
카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고대의 문이 열리자마자, 잠들어 있던 미지의 존재가 깨어난 듯했다. 붉은 점들이 그의 위치를 정확히 조준하고 있음을 직감한 카인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폭발음이 폐쇄된 지하 공간을 뒤흔들며, 미지의 존재와의 첫 조우를 알렸다. 어쩌면 그는 도시의 심장이 아니라, 그 아래 잠들어 있던 거대한 그림자를 깨운 것일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