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고요한 서재에는 죽음의 눅진한 공기와 희미한 증기 냄새가 뒤섞여 떠다녔다. 톱니바퀴의 섬세한 째깍거림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뜨릴 뿐, 시간이란 개념마저 이 방 안에서는 멈춰버린 듯했다. 황동과 증기로 빚어진, 거대한 태엽 시계 같은 도시 ‘아르칸티아’의 심장부, 기계공작 폰 제피르의 서재가 바로 그곳이었다.

케일런은 바닥에 쓰러진 공작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백금발 머리칼이 흐트러진 채,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의 발명품, ‘천둥구름’이라 불리는 고압 증기 권총이었다. 흉갑 사이로 검게 타들어 간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누가 보아도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듯한 자세였다.

“공작님의 유언장이 발견되었습니다.” 한솔 경감이 초조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혼란이 역력했다. “자살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증거가… 그렇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케일런은 대답 없이 붉은색 벨벳 카펫 위를 천천히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재 안의 기압마저 미묘하게 바뀌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이 발목을 스치며 희미하게 흔들렸다.

“문은?” 케일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칼날 같은 명징함이 담겨 있었다.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육중한 강철 문이었죠. 저희가 도착했을 때, 문고리에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었습니다.” 한솔이 설명했다. “강제로 파손된 흔적은 일절 없습니다. 창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황동 프레임의 특수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그것도 모두 안쪽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유리창에도 어떤 파손이나 훼손도 없습니다.”

케일런은 창문으로 다가갔다. 바깥으로는 아르칸티아의 복잡한 톱니바퀴와 증기 파이프들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얽혀 있었다. 수백 미터 상공이라 인간이 접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는 창문 틈새에 손가락을 대고 미세한 먼지를 쓸어 올렸다.

“증기 파이프는 어떻습니까?” 케일런이 물었다.

“이 방으로 연결된 증기 파이프는 난방용과 공작님 작업대 쪽의 실험 기구용입니다. 모두 벽 안쪽으로 매립되어 있으며, 지름이 사람 몸이 통과할 수준은 아닙니다.” 한솔은 고개를 저었다. “환기구도 미세한 격자가 쳐져 있어 사람이 드나들 수 없습니다. 모든 경로가 봉쇄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군요.” 케일런이 몸을 돌려 시신 쪽으로 향했다. “공작은 왜 자신의 서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을까요? 그에게 유서는 자살을 택한 이유가 아닌, 자살을 위장하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집니다.”

“위장이라니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만.” 한솔이 의아해했다.

“그렇습니까? 자살을 한다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권총을 꽉 쥐고 있을 힘이 남아있었을까요? 공작의 손은 총을 꽉 쥐고 있기보다는, 마치 총이 그 손에 얹혀진 것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케일런은 허리를 굽혀 시신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의 눈동자는 공작의 손가락 마디마디, 그리고 권총의 섬세한 각인을 훑었다. 권총 표면에 희미한 얼룩이 있었다.

“이건…” 한솔은 케일런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숨을 들이켰다.

케일런은 손끝으로 권총 손잡이의 미세한 부분을 만져보았다. “이 얼룩은 공작의 피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특유의 광택… 기름이지요.”

“기름이요? 권총 관리에 사용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총은 발사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표면에 남아있는 기름은 완전히 굳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기름은… 희미하게 단맛이 납니다.” 케일런은 손끝을 코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미세하게 점성이 높군요.”

한솔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맛이 나는 기름이라니요? 그런 것이 살인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케일런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바닥, 벽, 그리고 천장의 모든 이음매를 훑었다. 특히 천장 중앙에 매달린 거대한 황동 샹들리에에 그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샹들리에는 복잡한 기어와 증기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끝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기계 새들이 매달려 있었다.

“공작의 서재는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살인범이 드나들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죠.” 케일런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살인범은… 이 방을 떠나지 않고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가설이 성립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한솔이 소리쳤다. “그럼 살인범은 지금도 이 방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케일런은 미소를 지었다. 싸늘하면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미소였다. “살인범은 이 방에 없지만, 살인 도구는 아직 이 방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살인 도구가 이 방을 나갈 필요조차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시신을 등지고 서재의 중앙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정확하게 샹들리에의 그림자가 떨어지는 지점에 멈춰 섰다. 케일런은 고개를 들어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황동 프레임 사이로 가늘고 투명한 선이 눈에 띄었다. 너무나 가늘어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이었다.

“살인범은 공작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을 자살로 위장했죠. 그 후 그는 유유히 방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케일런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리켰다.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그렇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을 잠근 것은 살인범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케일런의 눈이 섬뜩할 정도로 빛났다. “그는 이 방 안에서 살인을 저질렀고, 그 살인 도구는… 정확히 저기 있습니다.”

그의 시선은 샹들리에의 가장 높은 곳, 거대한 태엽 장치 속으로 사라지는 투명한 실의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작은 이 총에 남은 달콤한 기름 냄새를 맡고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게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겠죠.” 케일런은 낮게 읊조렸다. “그리고 이 투명한 실은 단순히 샹들리에를 매단 줄이 아닙니다. 이것은… 살인범이 남긴 마지막 흔적입니다. 밀실의 트릭을 풀어낼 열쇠.”

한솔은 케일런의 말을 따라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장식용 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케일런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 줄은… 이 투명한 줄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걸까요? 도대체 어떻게 살인범이 이 밀실을 떠날 수 있었단 말입니까?” 한솔의 목소리가 떨렸다.

케일런은 샹들리에 아래에서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모든 소리를 삼키는 듯했으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서재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이윽고 케일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복잡한 시계 장치의 마지막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발견한 자의 희열과도 같았다.

“한솔 경감.” 케일런이 나지막이 불렀다. 그의 시선은 샹들리에를 꿰뚫고 저 멀리, 서재 바깥의 아르칸티아 상공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이 모든 트릭은 바로 ‘시간’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란 녀석은… 때때로 가장 잔혹한 살인 무기가 되기도 하죠.”

그의 말이 끝나자, 서재 안의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짧게 ‘딸깍’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마치 그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밀실 살인의 베일이 서서히 걷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