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독립적인 단편 소설

지은은 퇴근 후 텅 빈 아파트에 발을 들일 때마다 희미한 안도감과 함께 깊은 고독을 느꼈다. 15층, 초고층 아파트의 깔끔한 스튜디오는 그녀에게 완벽한 은신처였다. 도시의 소음은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멀어졌고, 실내는 언제나 정갈하고 조용했다. 오늘 밤도 마찬가지였다. 현관문을 닫고, 열쇠를 홀더에 걸자 ‘딸깍’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가방을 소파에 던졌다. 식탁 위에는 어제 저녁 먹다 남긴 와인 잔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분명 어제 밤에는 깨끗하게 씻어 식기 건조대에 걸어두었던 잔이었다. 잠시 착각했나? 지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잔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들려온,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쨍한 소리.

“뭐야?”

돌아보니, 현관문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열쇠 홀더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가 방금 걸어두었던 열쇠는 온데간데없었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내가 제대로 안 걸었나? 아니, 분명 제대로 걸었는데….’

열쇠는 현관문 바로 아래, 차가운 타일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홀더를 툭 쳐서 떨어뜨린 것처럼. 지은은 찝찝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며 열쇠를 주워 다시 걸었다. 별것 아닐 거야. 그저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고 들리는 걸 거야.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지은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침묵 속에서 모든 소리가 증폭되는 듯했다. 저 멀리 도시의 웅웅거리는 소리, 에어컨의 미세한 팬 소리, 그리고… 톡, 톡, 톡.

침대 머리맡 벽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리였다. 처음엔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톡, 톡, 톡. 그 소리는 정확히 그녀의 귀가 향하는 방향, 베개 바로 옆 벽에서 들려왔다. 마치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

지은은 숨을 멈췄다. 소리가 멎었다. 다시 숨을 고르자, 톡, 톡, 톡.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고 경쾌하게. 마치 그녀를 놀리는 듯이.

“누구… 없지?”

작게 중얼거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환하게 밝아진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은 밋밋한 벽지 그대로였다. 그녀는 벽에 귀를 대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착각이었던 걸까.

다음 날 아침, 지은은 늦잠을 잤다. 샤워를 서둘러 하고 나왔을 때였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는데, 세면대 위에 놓여있던 칫솔꽂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용물인 칫솔 두 개는 멀쩡했지만, 꽂이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어제 밤 그녀가 잠들기 전 분명 멀쩡했던 것이었다.

“이게 대체….”

지은은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어제 열쇠, 밤에 들린 톡톡거리는 소리, 그리고 이제 칫솔꽂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기이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었다.

점점 더 기이한 일들이 이어졌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채로 갑자기 텔레비전이 켜졌다 꺼지고, 주방 찬장 문이 삐걱거리며 열려 있었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동안에는 거실에서 책장이 넘어지는 굉음이 들렸다. 황급히 뛰쳐나가 보면, 책들은 바닥에 흐트러져 있었고 책장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마치 투명한 손이 순식간에 책을 뽑아 던져버린 것처럼.

밤에는 더 심했다. 거실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문득 코끝을 스치는 싸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속삭임. ‘지은… 지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분명히. 귓가에 스치는 듯한,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

“누구세요?”

지은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아파트 안에, 그녀와 함께, 무언가가 있었다.

지은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잠을 잘 수 없었고,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들은 지은이 스트레스 때문에 헛것을 보는 것이라고 치부했다.

“지은아, 요새 일이 많아서 그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병원에 한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진짜라니까! 누가 내 물건을 막 옮기고, 내 이름도 불렀어…”
“진정해, 지은아. 네가 너무 피곤해서 현실이랑 꿈이랑 헷갈리는 걸 수도 있어. 우리 어제 너무 과음했잖아.”

그들의 무심한 위로는 오히려 지은을 더 깊은 고립감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였다. 이 기괴한 현상들과 오롯이 혼자 맞서야 했다.

어느 날 밤, 지은은 거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불은 모두 켜져 있었지만, 아무것도 그녀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때, 침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은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이 굳어버렸다. 침실 문이 천천히, 삐걱거리며 열렸다.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는 모습은 마치 심연의 입이 벌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혹시라도 녹화라도 해야 할까 봐. 하지만 손이 덜덜 떨려 제대로 조작할 수 없었다. 그때, 침실 안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소리와 함께 침실의 불이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지은은 숨을 헐떡였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용기를 쥐어짜 침실로 향했다.

문틈으로 보이는 침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옷장 문은 활짝 열려 속옷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화장품들은 모조리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거울은 깨져 있었고, 침대 시트는 구겨진 채 바닥으로 끌려 내려와 있었다. 마치 격렬한 싸움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그때, 침대 위, 베개 위에서 무언가가 지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어릴 적 사진이었다. 웃고 있는 어린 지은의 모습이 담긴 액자. 그것은 평소 거실 선반에 놓여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베개 위에 거꾸로 놓여 있었다. 액자의 유리는 산산조각 나 있었다.

지은은 털썩 주저앉았다. 입에서는 작은 비명 소리만 터져 나왔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건… 이건 분명히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지은의 머리 위, 천장에서 ‘투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차가운 액체가 그녀의 얼굴로 떨어졌다.
‘으윽…!’
끈적하고 비릿한 액체. 그녀는 급히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손바닥에는 검붉은 피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아니, 피였다. 분명 피였다.

‘콰앙!’

닫혀 있던 침실 문이 갑자기 맹렬한 기세로 닫혔다. 지은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닫힌 문을 두드리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나가! 당장 내 아파트에서 나가라고!”

답은 없었다. 하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소름 끼치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같기도 한, 섬뜩한 소리였다.

지은은 문고리를 잡고 잡아당겼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려는 그녀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공포는 이제 그녀의 이성을 완전히 잠식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문을 걷어차고 두드렸다. “열어! 열어줘!”

그때, 침실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닥이 울리고, 천장의 조명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벽에 걸려 있던 그림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화장대 서랍들이 제멋대로 열렸다 닫혔다.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지은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온기.

‘지은아…’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마치 썩은 물에 잠긴 듯, 왜곡되고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그녀는 감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 존재가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기어가는 자세로 침실 문으로 기어갔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는 순간, 문이 ‘스르륵’ 하고 열렸다.

지은은 미친 듯이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으로 향했다. 발 밑에 굴러다니는 물건들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오직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현관문에 다다르자, 그녀는 손이 떨리는 와중에도 간신히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복도 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살았다. 살았어!

그녀는 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지은은 숨을 헐떡이며 복도에 주저앉았다. 미친 사람처럼 온몸을 떨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아파트 문을 노려봤다. 그때였다.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명확하고 또렷한 목소리.

‘가지 마… 지은아….’

그녀의 이름이, 차갑고 섬뜩하게, 닫힌 문 너머에서 울렸다. 지은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문을 응시할 뿐이었다.

15층. 고요한 복도.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선명하게 박힌, 굳게 닫힌 아파트 문.
그 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그 문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도시의 불빛이 창밖에서 아스라이 빛나고 있었지만, 지은에게는 더 이상 어떤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녀의 아파트는 더 이상 그녀의 안전한 은신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그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차가운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