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제1장: 잿빛 도시의 방랑자**

지평선은 온통 잿빛이었다. 하늘도, 땅도, 닳고 닳아 사라진 문명의 잔해도 전부 회색빛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폐허의 바다 위를, 육중한 강철 거인이 느릿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거인의 이름은 ‘방랑자’.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자들의 발이자 방패, 때로는 유일한 친구였다.

조종석 안, 진우는 낡은 헤드셋을 고쳐 쓰고 조작 패드를 쥐었다. 진동과 함께 들려오는 웅웅거리는 모터 소리가 그나마 고요한 폐허 속에서 살아있는 소리였다. 이따금 고철 덩어리들이 발에 밟히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날카롭게 울리곤 했다.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 외부 스크린에는 부서진 고층 빌딩들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한때 번화했을 거리는 이제 녹슨 차량들의 무덤이 되어 있었고, 빌딩 벽면을 휘감았던 덩굴들은 마치 문명의 상처처럼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젠장, 오늘도 빈손인가.”

진우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사흘째였다. ‘핵심 전력 코어’를 찾기 위해 폐허가 된 ‘구역 7’을 뒤지고 있었지만, 수확은 없었다. 방랑자의 에너지 효율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고, 이대로는 다음 달을 넘기기 힘들 터였다. 그는 스크린 오른쪽 하단에 깜빡이는 배터리 경고등을 힐끗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 망할 고철 덩어리는 연료 탱크가 비는 것보다 이놈의 배터리가 먼저 나갈 판이었다.

그때였다. 헤드셋 너머로 ‘치지직’ 하는 노이즈와 함께 작은 신호가 잡혔다. 스크린 한쪽 구석에 희미한 녹색 점이 깜빡였다.

“…이건?”

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탐지기가 잡아낸 신호는 미약했지만, 분명 ‘에너지원’의 흔적이었다. 그것도 꽤 강력한. 이 잿빛 도시에서 이런 신호는 드물었다. 대개는 낡은 방어 시스템이나, 쓸모없는 고철 더미에서 나오는 잔류 에너지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희망과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이런 곳에 강력한 에너지가 남아있다면, 필시 그 주변을 지키는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폐허의 법칙은 단순했다. 귀한 것일수록 위험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방랑자를 조종해 신호가 잡힌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육중한 발소리가 폐허 속으로 스며들듯 조용했다. 거대한 폐상업 단지의 입구였다. 유리창이 모두 깨져나가 앙상한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음침하게 서 있었다. 녹슨 강철 문 사이로 방랑자의 거대한 발이 들어섰다.

내부는 더욱 암울했다. 천장이 무너져 내려 철골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바닥은 먼지와 부서진 파편들로 가득했다. 진우는 탐지기를 최대 출력으로 설정했다. 녹색 점은 점점 선명해졌다. 저 앞, 무너진 계단 아래에 무언가 있었다. 탐지기의 경고음이 점점 빨라졌다.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잔해를 헤쳐나가자,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면에는 복잡한 회로들이 얽혀 있었고, 중앙에서는 녹색 빛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진우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코어… 진짜 코어잖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탐지기가 잡아낸 것은 다름 아닌 작동 중인 ‘비상 전력 코어’였다. 그것도 아직 상당한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이 정도면 방랑자의 동력원을 교체하고도 남을 터였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이 코어만 있으면 당분간은 생존 걱정 없이 이 폐허를 누빌 수 있었다. 일주일, 아니 어쩌면 한 달을 더 버틸 수도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의 적막이 깨졌다. ‘쉬이이이익—!’ 하는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천장의 철골 사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젠장!”

진우는 반사적으로 방랑자의 팔을 들어 올렸다. 날아든 것은 낡은 ‘경비 드론’이었다. 외피는 녹슬고 찌그러져 있었지만, 여전히 불을 밝히는 붉은 센서 눈동자가 위협적이었다. 드론은 굉음과 함께 작은 기관포를 전개했다. 그 둔탁한 소리가 좁은 공간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따다다다다닥!’

강철 탄환이 방랑자의 장갑판에 튀면서 불꽃을 일으켰다. 진우는 곧바로 방랑자를 뒤로 물리며 반격했다. 방랑자의 오른팔에 장착된 낡은 충격 해머가 전개됐다. 전기가 흐르는 강철 둔기가 묵직하게 회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 주제에!”

그는 조작 패드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드론은 마치 이 코어를 지키려는 듯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진우는 건물 내부의 좁은 공간에서 방랑자의 거체를 조종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드론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다. 녹슨 천장 철골을 스치듯 날아다니며 맹렬하게 공격해왔다. 스크린에 경고음이 울렸다. 방랑자의 장갑판 한 귀퉁이가 움푹 패였다.

진우는 드론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했다. 드론이 코어 주변을 한 바퀴 빙 돌며 진우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척할 때, 그는 이미 해머를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드론이 폐기된 냉장고 더미 뒤에서 나타나는 순간, 방랑자의 거대한 충격 해머가 굉음을 내며 허공을 갈랐다.

‘콰아아앙!’

정확하게 명중했다. 드론의 외피가 찌그러지고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균형을 잃은 드론이 휘청거리며 옆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드론은 아직 살아있었다. 찌그러진 몸체에서 ‘삐이이이익—’ 하는 비명을 토해내며, 더욱 광란적으로 공격해왔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망가진 프로펠러가 기우뚱거리며 날아올랐다.

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 좁은 공간에서 오래 싸우는 것은 방랑자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드론의 날카로운 잔해들이 방랑자의 장갑에 흠집을 냈다. 그는 드론의 움직임을 피해 코어 뒤편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드론은 진우를 쫓아 코어 앞으로 돌진했다. 바로 그때였다.

“끝이다, 이 망할 고철.”

진우는 방랑자의 왼팔에 장착된 ‘고압 전자기 사출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낡았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무기였다. 방랑자의 왼팔 끝에서 파란색 섬광이 번쩍이며 전자기파가 발사됐다.

‘쉬이이이이잉— 즈으으으응!’

전자기파는 코어를 지나쳐 드론을 강타했다. ‘지이이이익!’ 하는 고압 전류음과 함께, 드론의 모든 시스템이 일시에 마비되었다. 드론은 허공에서 멈칫하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쿠우웅!’

묵직한 충돌음과 함께 드론은 마침내 움직임을 멈췄다. 붉었던 센서 눈동자도 꺼지고, 축 늘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조용해진 건물 내부에는 방랑자의 모터 소리만 낮게 울렸다.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자기 사출기는 한 번 사용하면 재충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기였다. 이번에도 성공했지만, 너무 위험했다. 조종석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그는 방랑자를 코어 가까이 가져갔다.

코어는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이 절망적인 세계 속에서 피어난 한 줄기 희망 같았다. 진우는 방랑자의 팔을 조심스럽게 뻗어 코어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강철의 감촉이 느껴졌다. 드론과의 싸움에서 방랑자의 장갑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코어를 얻은 것에 비하면 사소한 피해였다.

코어를 방랑자의 내부 격납고에 안전하게 보관한 후, 진우는 폐허가 된 건물을 빠져나왔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오랜만에 작은 불씨가 지펴진 듯했다. 그는 코어를 지키다 부서진 드론의 잔해를 힐끗 돌아봤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먼지 구름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저 멀리 솟아있는 가장 높은 빌딩의 실루엣. 그곳은 한때 ‘중앙 통제 타워’라 불렸던 곳으로, 모든 정보와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었다는 전설 같은 장소였다. 오래전,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또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했다.

“언젠가는… 저곳에도 가봐야겠지.”

진우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또 다른 위험이, 혹은 이 황폐해진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방랑자의 육중한 발걸음이 다시 폐허의 바다 위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잿빛 지평선 너머로, 진우의 새로운 여정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