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창문 밖으로 펼쳐진 도시는 거대한 유기체처럼 밤에도 쉬지 않고 빛을 뿜었다. 20층 높이, 오래된 아파트의 낡은 창틀에 기댄 나는 뜨거운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그 빛의 파도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준호, 서른세 살. 별 볼 일 없는 회사원. 그리고 지난 몇 주간, 나만의 우주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현상의 유일한 목격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 분명히 올려둔 열쇠가 다음 날 아침 현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거나, 냉장고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피곤해서 건망증이 심해졌나, 늙었나, 아니면 단순히 건물 자체가 낡아서 그런가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50년도 더 된 곳이었으니까. 한 달 전, 아파트 담보대출을 갚고 소유권을 완전히 내 이름으로 돌린 그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장 먼저 나를 등골 오싹하게 만든 건 커피였다. 아침마다 똑같은 컵에 똑같은 양의 인스턴트 커피를 타 마셨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컵 바닥에 미세한 소용돌이 모양의 거품이 생겨났다. 젓지도 않았는데. 처음에는 착각이겠거니, 물을 부을 때 생긴 잔상이라고 넘겼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는 매일, 점점 더 선명해졌다. 마치 누가 밤새도록 내 커피를 저어놓은 것처럼.

“씨발, 내가 드디어 미쳤나.”

밤늦게 퇴근해 거실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딸깍’ 소리와 함께 형광등이 깜빡거리며 희미한 빛을 토해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한순간 눈이 부셨지만, 이내 곧 익숙한 내 집 풍경이 펼쳐졌다. 낡은 소파, 책상, 그리고 벽에 걸린 텅 빈 액자들. 액자 속 사진들은 이사 오면서 정리해야지 하고 빼 두었던 것들인데, 이상하게 다시 끼워 넣기가 귀찮아서 그대로 두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내려는 순간, 거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발끝으로 곤두박질쳤다. 도둑? 아니, 누가 이런 낡은 아파트에. 손에 든 맥주캔으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며 거실로 향했다. 전등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소파 앞, 며칠 전부터 조금씩 옆으로 밀려나 있던 커피 테이블이, 이제는 완전히 벽 쪽에 붙어 있었다.

“이게… 뭐야.”

나는 내가 테이블을 밀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지난 주말, 친구 ‘민규’가 놀러 왔을 때도 테이블은 소파 바로 앞에 있었다. 분명히. 민규는 이런 장난을 칠 위인도 아니었고, 내가 잠든 사이에 누군가 들어와서 테이블을 옮겼을 리도 없었다. 문은 항상 잠겨 있었으니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린 채 천장을 바라봤다. 낡은 아파트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 모든 것이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내일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파트 관리실에 연락해서 CCTV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낡은 건물에 CCTV가 제대로 작동할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뭔가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일어났다. 어제는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기에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비틀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습관처럼 커피를 타기 위해 선반에서 컵을 꺼내는 순간, 헛것을 본 줄 알았다.

컵이… 공중에 떠 있었다.

내 눈앞, 선반 위에서 약 5센티미터 정도 떠올라 있었다. 투명한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나는 숨을 헙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했다. 이게 꿈인가? 환상인가?

“이, 이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왔다. 컵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 정지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흔들림 없이 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컵에 닿기 직전, 컵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뜨거운 물을 받치고 있던 커피포트까지 쓰러지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놀라움에 뒷걸음질 치던 나는 식탁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 엉덩이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 깨진 컵 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건… 이건 아니잖아.”

더 이상 환영이나 착각이라고 둘러댈 수 없었다. 내 집은, 내가 사는 이 공간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내 아파트에 침입해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귀신? 악마? 아니,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도대체 무엇이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지?
그때, 방금 전 컵이 떠 있던 선반 위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아주 작은, 마치 전자 기기의 대기 모드 불빛 같은 것이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인 간격으로 ‘반짝, 반짝’거렸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다가갔다. 선반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빛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벽? 천장?

손을 뻗어 빛이 나오는 지점으로 느껴지는 벽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차갑고 단단한 벽지 아래로 뭔가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내 등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준호. 드디어, 알아챘군.”

목소리는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혹은 인간의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금속이 긁히는 듯한 소리, 물속에서 울리는 듯한 먹먹함, 그리고 수천 개의 소리가 동시에 말하는 듯한 기이함이 뒤섞여 있었다. 소리는 내 뒤, 정확히 소파가 있던 거실 한가운데에서 울렸다.

나는 얼어붙은 채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거실은 여전히 형광등의 깜빡이는 빛 아래 평범하게 존재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의 잔향은 내 귀에 생생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소파 위, 평소라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뉴스를 보던 그 자리에, 아파트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을 배경으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마치 공기 중의 먼지가 한데 뭉쳐진 것처럼, 혹은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구멍처럼. 형체가 모호했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다.

그 순간, 아파트 전체의 전등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일제히 꺼졌다. 암흑이 찾아왔다. 도시의 불빛만이 창문 너머에서 흔들릴 뿐, 내 아파트는 완벽한 어둠 속에 잠겼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졌다. 아니, 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림자 안쪽에서 두 개의 붉은 점이, 나를 꿰뚫어 볼 듯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공포가 내 온몸을 마비시켰다.
그 붉은 점들이 나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속삭였다.

“환영한다, 이준호. 우리의 행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