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잿빛 마을은 늘 그랬다. 해가 뜨기 전부터 굴뚝에서는 매연이 뿜어져 나왔고, 제국군 순찰대의 낡은 부츠 소리는 골목의 돌바닥을 무심하게 울렸다. 희망은 고사하고, 당장 내일 끼니조차 버거웠다. 황혼녘에 빵 부스러기라도 구하려면 제국이 내려준 ‘배급점’ 앞에서 몇 시간이고 줄을 서야 했고, 그마저도 고되게 일한 자들만이 겨우 맛볼 수 있는 사치였다.

리안은 오늘 아침부터 바빴다. 낡은 천막 안에서 손톱만 한 조명등에 의지해 어제 들어온 수선품들을 고쳤다. 제국의 직물 공장에서 버려진 자투리 천을 기워 만든 옷들이었다. 바늘에 실을 꿰는 손놀림은 정확하고 빨랐지만,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흐렸다. 어제 들었던 소문 때문이었다.

“가론 노인이 사라졌어.”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말은 한결같았다. 잿빛 마을에서 가장 현명하고, 때로는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가론 노인. 그는 늘 제국이 싫어하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 그리고 먼 옛날, 아직 제국이 이 땅을 지배하기 전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은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또 어디 잠시 가신 거겠지.” 늙은 어부 에반이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께선 늘 어딘가 가실 땐 미리 말씀하셨잖아요.” 리안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섞였다.

그녀는 어제 저녁, 가론 노인과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지친 표정으로 리안에게 말했다. “세상은 변하고, 시간은 흐르지만, 기억은 남는단다. 잊지 마라, 리안. 우리가 누구였는지.” 그때는 그저 노인의 흔한 잠꼬대 같은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은 뼈아픈 예언처럼 그녀의 귓가를 맴돌았다.

리안은 수선하던 옷을 내려놓고 천막 밖으로 나섰다. 탁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잿빛 건물들 사이로 굳게 닫힌 가론 노인의 집 문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피어있던 창가의 작은 화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제국군은 노인이 단순 실종이라며 수색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론 노인의 집 주변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경고의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제국은 늘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들을 조용히 지워버렸다.

“젠장.” 리안은 작게 욕설을 읊조렸다. 어딘가 이상했다. 가론 노인이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강한 직감이 그녀를 덮쳤다. 노인은 절대 무언가를 두고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그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기억’들에 대한 단서라면.

밤이 깊어지고, 제국군 순찰대의 발소리가 뜸해질 무렵, 리안은 조용히 가론 노인의 집으로 향했다. 낡은 나무 문은 잠겨 있었지만, 그녀는 노인이 늘 쓰던 비밀스러운 틈을 알고 있었다. 손잡이 아래의 삐걱거리는 나무를 밀자, 얕은 공간에서 긁힌 쇠붙이 소리와 함께 빗장이 풀렸다.

내부는 황량했다. 누군가 급하게 훑고 지나간 듯, 책들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고, 식기들은 깨져 있었다. 그러나 리안의 눈은 날카로웠다. 제국군 병사들은 거칠고 투박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찾을 줄 알았지, 작은 흔적까지 쫓는 섬세함은 없었다.

“노인께선…” 리안은 허물어진 벽 한쪽, 그림 액자 뒤에 숨겨진 작은 틈새를 찾아냈다. 노인이 어릴 적부터 가장 아끼던 그림이었다. 조심스럽게 액자를 떼어내자, 틈새 안에서 작고 낡은 나무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고대 문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손을 뻗어 상자를 꺼내려던 순간, 등 뒤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다. 리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제국군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이곳을…

그녀는 재빨리 상자를 낚아채고, 원래대로 액자를 걸었다. 그리고는 몸을 숨기기 위해 벽장 안으로 파고들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녀는 숨을 죽인 채 문틈으로 바깥을 엿보았다.

두 명의 제국군 병사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횃불을 들고 방 구석구석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쳇, 노인네 하나 찾는 게 이렇게 힘들어? 윗분들이 아주 난리다.” 한 병사가 투덜거렸다.
“입 조심해. ‘별똥별’이 관련된 일이라 쉬쉬하는 거야. 정보국 놈들이 직접 나섰잖아.” 다른 병사가 낮게 경고했다.

‘별똥별’. 리안은 그 단어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것은 가론 노인이 들려주던 옛이야기 속에서, 제국의 지배를 받기 전, 자유를 갈망하던 이들이 사용했다던 비밀 결사의 이름이었다. 설마 노인이…

병사들이 집요하게 수색을 계속했지만, 그들은 벽장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겨우 몇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병사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는 욕설을 뱉으며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리안은 천천히 벽장에서 나왔다. 손에 쥐어진 나무 상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서둘러 집을 나와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온 그녀는 조명등 아래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낡은 양피지 한 장과,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정교하게 조각된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돌멩이에는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가론 노인이 자주 언급하던, 제국이 가장 증오하는 상징. 바로 ‘밤하늘의 등불’이라 불리는, 멸종된 줄로만 알았던 새의 형상이었다. 그 새는 어두운 밤을 가르는 희망이자, 제국의 심장부를 겨누는 반역의 상징이었다.

양피지를 펼치자, 희미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대어로 쓰인 난해한 문장이었지만, 리안은 가론 노인이 가르쳐 준 몇몇 단어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단어들을 조합하자, 하나의 문장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밤하늘 아래, 별똥별은 다시 떠오르리라. 잿빛은 희망을 삼키지 못하리니, 심장을 관통하라.*

리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가론 노인은 단순한 옛이야기꾼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 거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고, 그 진실은 제국이 목숨 걸고 숨기려 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그 진실의 조각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잿빛 마을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섬광 같은 깨달음이 리안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가론 노인의 실종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별똥별’이라는 이름이 다시금 그녀의 가슴을 울렸다. 제국에 맞서는 평민들의 오래된 반란. 그것은 전설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리안은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멀리, 제국의 휘황찬란한 첨탑들이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그 빛은 잿빛 마을의 어둠을 더욱 깊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녀 안의 불씨를 더욱 활활 타오르게 했다.

그녀의 손에 든 ‘밤하늘의 등불’ 새가 차갑게 빛났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