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심우주의 심연, 그 끝없는 침묵 속을 ‘아스트라리스’는 유영하고 있었다. 인류의 항성 지도가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 푸른색 항성 광선조차 희미하게 바래버린, 망각된 우주의 가장자리였다. 함교의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수백만 개의 별들이 점멸했지만, 그것들은 아스트라리스와 그 승무원들을 더욱 고독하게 만들 뿐이었다. 길고 지루한 탐사 항해 끝에 모두의 정신은 끈적한 피로감에 절어 있었다.

“캡틴, 벌써 3개월째 외부 통신 두절입니다.”

전술 장교 진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는 항상 그랬듯 무감한 표정으로 주 항해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에너지 파동 차트가 깜빡이고 있었다. 언제나 신중하고 과묵한 진은 아스트라리스의 침묵하는 그림자 같았다.

이시안 캡틴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짚었다. 수십 년간 우주를 항해한 베테랑이었지만, 이런 깊은 고독은 그에게도 익숙지 않았다. “알고 있다, 진. 보고서에 작성해 두게.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나?”

“아직 없습니다. 모든 시스템 정상 범위. 다만, 목적지까지의 예정 경로상에 변칙적인 중력장이 관측됩니다. 그리 큰 위협은 아닙니다만….” 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눈동자가 찰나의 흔들림을 보였다.

그때였다. 징- 하는 날카로운 비상 경고음이 함교를 가득 채우며 주 스크린이 섬뜩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젠장! 무슨 일이야?!” 이시안이 소리쳤다. 그의 피로감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비상 사태! 비상 사태! 미확인 에너지 파동 감지! 좌표 델타-792에 거대 이상체 출현!” 수석 엔지니어 카이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찢고 들어왔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장난기 어린 활기가 넘쳤지만, 지금은 그 속에 경악이 섞여 있었다. 그는 평소라면 상황을 비꼬거나 농담을 던졌을 터였다.

“카이,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고해!” 이시안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명령했다.

“죄송합니다, 캡틴! 그런데… 이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카이가 흥분하여 더듬거렸다.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주변 항성계 데이터베이스에 없던 겁니다! 중력장이요? 그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행성급 질량입니다! 근데… 반응이 없어요! 빛을 흡수하고 있어요!”

홀로그램 스크린의 중앙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주변의 모든 별빛이 그 존재에 의해 빨려 들어가는 듯,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집어삼키며,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섬뜩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빛을 흡수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냐, 카이?” 이시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정확히는 반사율이 0%에 수렴합니다, 캡틴! 빛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자기파에 반응이 없어요! 그리고… 내부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 파동이 감지됩니다. 기존에 알려진 어떤 물질이나 에너지 형태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치… 잠자고 있는 심장 같아요.” 카이는 여전히 흥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조차도 이 현상을 분류할 수 없다는 듯, 당혹감이 역력했다.

“수석 엔지니어의 상상력은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탐사 전문가 세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는 평소라면 어떤 새로운 발견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았지만, 지금은 두 눈을 빛내며 홀로그램 스크린에 달라붙어 있었다. 고고학적인 유물이나 고대 문명에 대한 탐구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세라였다. “캡틴, 저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제 추측으로는… 인공 구조물이에요.”

진이 무심하게 말했다. “위험합니다, 캡틴. 미지의 존재에 근접하는 것은 정찰 프로토콜에 위배됩니다. 만약 적대적인 존재라면….” 그의 손이 자동적으로 옆구리의 무기 조작 패드로 향했다.

이시안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안전 프로토콜은 알아서 한다, 진. 세라, 인공 구조물이라고 확신하나? 그 규모는 행성급인데?”

“확신합니다, 캡틴. 저 압도적인 규모와 완벽한 비대칭성,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 공간의 왜곡 패턴이 단순한 중력 붕괴 현상과는 다릅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저걸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마치… 신들이 직접 조각한 조형물 같아요.” 세라의 목소리에 학자의 열정이 묻어났다. 그녀의 눈은 이미 수억 년 전의 비밀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시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거대한 검은 그림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인류가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우주의 끝에서 발견된, 상상조차 불가능한 미지의 존재.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 스캔 최대 출력으로 돌려. 모든 센서 작동. 진, 비상 탈출 경로 확보. 에너지 보호막은 50%로 유지하고 즉시 최대 출력으로 올릴 수 있게 대기시켜. 세라, 탐사 드론 준비시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그의 명령이 함교에 울려 퍼졌다. “아스트라리스, 전방 0.5 광초 지점까지 저속으로 접근한다.”

우주선은 거대한 검은 그림자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가까워질수록 그림자의 윤곽이 선명해졌다. 그것은 행성이 아니었다.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검은 건축물. 별들의 빛을 전부 빨아들여 만든 것처럼, 절대적인 어둠으로 빚어진 기둥과 벽들이 우주 공간에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수백 개의 거대 항성계를 통째로 삼킬 것 같은 크기였으며, 표면은 수많은 기하학적 문양과 알 수 없는 심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이 특정 형태로 굳어버린 듯한,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한 불멸의 존재처럼 보였다.

“이게 대체… 뭐야?” 카이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넋 나간 목소리였다. 그의 스캔 장비는 광적으로 삐삐거렸지만, 유의미한 데이터를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세라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광기에 가까운 탐구열로 불타고 있었다. “오 세상에… 이런 걸 본 적이 없어. 기록에도 없어. 이건… 이건 문명의 유물이 아니에요, 캡틴. 이건… 우주 자체가 품었던 가장 오래된 꿈의 잔해 같아.”

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통신 패드는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위험을 감지하는 그의 본능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때, 구조물의 가장 거대한 기둥 중앙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주변의 어둠을 잠시 몰아내는 듯한, 아주 미세한, 그러나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빛이었다. 마치 심연 속에서 잠들어 있던 거인이 눈을 뜨려는 것처럼, 빛은 서서히 커져갔다.

“감지했습니다, 캡틴! 구조물의 중심부에서 강력한 에너지 서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존 파동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뭔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카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이시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희미한 빛이 깜빡인 곳, 그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 문 안쪽은 외부의 어둠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한 심연이었다. 그 심연 속에서, 아주 먼 옛날의 메아리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마저 들었다. 마치 고대 신의 심장이 다시 박동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전방 스크린 확대! 모든 탐사 드론 발진 준비! 진, 무기 시스템 활성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시안의 명령이 함교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의 심장이 거대한 미지의 존재를 마주한 흥분과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격렬하게 뛰었다.

“캡틴… 저 안에… 뭔가 있어요.” 세라의 목소리가 거의 속삭이듯 들렸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열린 문 안쪽의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들어가야 해요.”

고요했던 심연이 거대한 입을 벌리자, 아스트라리스의 승무원들은 숨을 죽인 채 그 태고의 부름 앞에 얼어붙었다. 인류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를, 혹은 인류를 집어삼킬지도 모를 미지의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