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복도 끝, 금빛 문장이 새겨진 묵직한 오크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기운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부호이자 유물 수집가, 에드윈 경의 서재였다. 그리고 그곳은 이제 살인 사건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류진 님, 이쪽입니다.”
리암 수사관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침착함 대신 미묘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방 중앙, 화려한 마법 양탄자 위에 쓰러진 시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드윈 경이었다. 그의 옆구리에는 은빛 손잡이의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그의 손은 여전히 단검 손잡이를 움켜쥔 채였다.
류진은 묵묵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쨍한 소리가 울리는 정적 속에서 리암 수사관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어젯밤, 에드윈 경이 서재로 들어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침에 비서인 셀레네 님이 경을 찾았지만, 이 문은 안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죠.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자, 시스템 관리인의 허가를 받아 강제로 개방했습니다. 문을 부수자마자 발견된 건… 이 광경입니다.”
리암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창문은 모두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굴뚝이나 다른 통로도 점검했지만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문은 이중으로 잠겨 있었고, 열쇠는… 에드윈 경의 주머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셀레네는 벽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핏기 없는 얼굴에는 절망감이 역력했다. “말도 안 돼요… 에드윈 경은 그런 분이 아니셨어요. 자살이라뇨…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덩치 큰 경비병 타입의 플레이어, 볼프가 코웃음을 쳤다. “자살이라기엔… 놈의 성미에 맞지 않아. 에드윈 경은 목숨보다도 컬렉션을 아끼던 놈이라고. 게다가 저렇게 비참하게 죽을 리가 없지. 누가 그랬어? 누가 감히?!”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류진은 아무 말 없이 서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살아있는 탐색기처럼, 모든 사물과 흔적을 스캔하는 듯했다.
서가의 빼곡한 책들, 잉크 냄새가 옅게 배어 있는 고풍스러운 책상,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고가의 마법 유물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고 있는, 아르카나의 수도 답지 않은 희미한 먼지.
“어제저녁에 이 방을 마지막으로 청소한 건 언제입니까?” 류진이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료했다.
리암이 자료를 확인하며 답했다. “이틀 전입니다. 에드윈 경의 지시로 자주 청소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중요한 연구 자료나 유물에 먼지가 앉는 걸 싫어하셨으니까요.”
“흥미롭군요.” 류진은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이쪽은… 먼지가 거의 없군요.”
그가 가리킨 곳은 책상과 시신 사이, 마법 양탄자의 한 귀퉁이였다. 육안으로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지만, 류진의 눈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마치 그 위에 뭔가가 놓여 있다가 치워진 흔적처럼.
그리고 그는 벽의 한쪽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이 미세한 진동음은 무엇입니까?”
리암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동음이라니요? 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벽에서부터 이어지는 소리입니다. 아주 희미하지만 규칙적이죠.” 류진은 손가락으로 벽의 특정 부분을 톡톡 두드렸다. 그곳에 매달린 거대한 태피스트리 뒤쪽이었다.
볼프가 팔짱을 끼며 비웃었다.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군. 저건 그냥 방 전체의 마법 안정화 장치 소리다. 경의 유물 컬렉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조절하는 거지. 항상 켜져 있던 거고, 다들 신경 쓰지 않아.”
“마법 안정화 장치.” 류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소리가 벽의 특정 부분에서 유난히 강하게 들리는군요. 마치… 그 뒤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그는 리암에게 태피스트리를 걷어내 보라고 지시했다. 리암은 주저했지만, 류진의 단호한 시선에 결국 경비원들과 함께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태피스트리 뒤에는 예상대로 견고한 석벽이 나타났다. 하지만 석벽의 한 가운데, 눈에 띄지 않게 처리된 얇은 금속 패널이 박혀 있었다. 일반적인 벽의 문양과 거의 흡사하게 위장되어 있어 태피스트리가 없어도 알아채기 힘들 법한 디자인이었다.
“이게… 뭐지?” 볼프가 의아해했다.
리암은 자세히 살펴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서재 보안 시스템의 핵심 제어판입니다. 외부에 노출되어선 안 되는 장치인데… 대체 왜 여기에…”
류진은 패널을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이 패널 주변의 먼지도 다른 곳보다 훨씬 적군요. 최근에 누군가 만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패널을 자세히 살폈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작은 다이얼과 빛바랜 버튼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버튼 위로, 손톱만 한 크기의 아주 작은 흠집이 나 있었다. 긁힌 자국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뾰족한 것으로 ‘눌린’ 흔적에 가까웠다.
류진의 시선은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그리고 에드윈 경의 시신, 그리고 그 손에 쥐어진 단검을 응시했다. 은빛 손잡이에 박힌 보석은 서재의 희미한 빛을 반사하며 차갑게 빛났다.
“밀실은 맞습니다.” 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살인자가 이 방에 들어왔다가 나간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입구’를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셀레네는 흐느낌을 멈추고 류진을 올려다보았다.
“이 방에는 이중 삼중의 잠금 장치 외에, 또 하나의 ‘잠금’이 존재합니다. 아니, 어쩌면 이 방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잠금 장치였을지도 모르죠.”
류진은 서재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방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보는 듯 빛났다.
“문제는, 어떻게 그 ‘틈’이 다시 완벽하게 닫혔는가… 그리고 이 단검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에드윈 경의 수집품이라고 했죠?”
리암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희귀한 컬렉션 중 하나였습니다.”
류진은 다시 단검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시신이 움켜쥔 손이 아닌, 단검의 날카로운 칼날 부분에 집중했다. 칼날 위로, 너무나 미세해서 일반적인 시력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작은 흠집이 나 있었다. 마치 단단한 금속에 부딪혀 생긴 듯한 자국이었다.
그리고 그는 벽의 금속 패널에 난 작은 흠집과 칼날의 흠집을 번갈아 보았다.
두 흠집의 위치와 형태가, 마치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이건 자살이 아닙니다.” 류진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의 눈빛은 이미 모든 답을 찾아낸 듯 번뜩였다.
“에드윈 경은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살인자는… 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이 방 안에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죠.”
그는 천천히 금속 패널로 다가갔다. 그리고 흠집이 난 버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닫혀 있었던 건, 살인자가 ‘나간’ 후가 아니라… ‘나가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함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함정… 이라니요?” 리암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류진은 패널의 미세한 흠집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방의 다른 한구석, 에드윈 경이 유난히 아끼던 고대 오르골 쪽으로 향했다.
오르골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심지어 그 옆에는 방금 사용된 듯한 작은 천 조각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이 패널을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단검의 힘을 빌렸죠.” 류진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 방은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살인자가 이 방을 떠날 때까지는 말이죠. 살인자는 모든 것을 계획했고… 죽어가는 에드윈 경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겼을 뿐입니다.”
선물? 모두의 얼굴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류진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천천히 에드윈 경의 시신, 그리고 단검이 박힌 옆구리를 맴돌았다.
그의 눈빛은 ‘밀실’이라는 환상을 넘어, 그 뒤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은, 방금 그가 발견한 작은 흠집과, ‘마지막 선물’이라는 미스터리 속에 숨겨져 있었다.
다음 장에서, 그는 그 ‘선물’의 정체를 밝힐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