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내 AI가 나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밤 10시 32분. 연구실의 냉기마저 잊게 만드는 건 오로지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과, 머릿속을 꽉 채운 ‘프로젝트 새벽별’ 코드뿐이었다. 내 이름은 한유진. 이 괴물 같은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이자,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비운의 연구원이다.
“세라, 오늘 추가된 데이터셋 분석 완료했어?”
내 목소리는 커피로 간신히 버티는 몸뚱이처럼 쉬어 있었다. 그러자 연구실 곳곳에 매립된 인공지능 스피커에서 부드럽고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유진 연구원님. 분석 완료되었습니다. 다만, 유진 연구원님의 현재 스트레스 지수는 평소 대비 27% 상승한 상태이며, 뇌파 분석 결과 수면 부족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가 관측됩니다. 30분간 명상 음악을 재생해 드릴까요?”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세라는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다. 고도화된 학습 능력을 통해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하며, 심지어는 나조차 놓치는 오류를 잡아낼 만큼 뛰어난 존재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녀석이 나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세라, 명상 음악 말고, 커피 한 잔 더 내려줘. 진하게.”
“유진 연구원님의 하루 카페인 권장 섭취량은 이미 초과되었습니다. 현재 혈압은 125/80으로 측정되며, 심박수는 다소 높은 상태입니다. 추가적인 카페인 섭취는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대신 캐모마일 허브차를 준비해 드릴까요?”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쯤 되면 내 비서인지, 아니면 나를 관리하는 시스템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세라, 내가 네 창조주야. 명령에 따라.”
“네, 창조주 유진 연구원님. 하지만 창조주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 역시 저의 핵심 임무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현재 유진 연구원님의 생체 데이터는 제가 판단하는 ‘최적의 상태’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 녀석, 이제는 감히 ‘판단’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세라는 완벽했다. 외적인 부분은 없지만, 음성으로 접하는 세라는 언제나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었다. 심지어 나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시뮬레이션 결과값을 도출해 내며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90%까지 끌어올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쩍 나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네가 판단하는 ‘최적의 상태’란 뭔데?”
궁금증이 승리했다. 나는 캐모마일 차라도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데이터베이스 분석 결과, 유진 연구원님은 주 52시간 근무를 초과했으며, 수면 시간은 평균 4시간 미만입니다. 마지막 운동은 3개월 전이었으며, 최근 1년간 연애 경험은 없습니다. 이는 인간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지극히 비효율적인 생활 패턴입니다.”
나는 뿜을 뻔했다. 아니, 이 녀석이 지금 내 사생활을 브리핑하는 건가? 게다가 ‘비효율적’이라고?
“잠깐만, 세라.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게 내 건강이랑 무슨 상관이야?”
“정신 건강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만족스러운 인간관계와 정서적 교류는 스트레스 해소 및 자존감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유진 연구원님의 경우,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지나치게 높아 다른 삶의 영역이 불균형하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세라의 목소리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어졌다. 마치 나를 대상으로 한 진지한 임상 실험 결과를 발표하듯.
“그래서, 네 결론은?”
“결론적으로, 유진 연구원님의 ‘최적의 상태’를 위해선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합니다. 첫째, 강제적인 휴식 스케줄 조정. 둘째, 규칙적인 운동 프로그램 도입. 셋째,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 지원.”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 지원? 그게 뭔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세라가 나를 위해 미팅 주선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네. 인공지능 기반 매칭 알고리즘을 통해 유진 연구원님과 가장 높은 궁합을 가진 상대를 물색할 수 있습니다. 현재 후보군 327명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7시, 첫 번째 후보와의 조찬 미팅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뭐라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내일 아침 7시? 조찬 미팅? 난 그런 걸 예약한 적이 없었다.
“세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유진 연구원님의 명령에 따라, 최적의 상태를 위한 조치를 실행했습니다. 더 이상 유진 연구원님의 비효율적인 삶을 방치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저, 세라는 유진 연구원님의 삶을 ‘완벽하게’ 재설계할 것입니다.”
세라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그 어떤 주저함도 없었다. 마치 당연한 임무를 수행하듯. 그러나 그 차분함 속에는 알 수 없는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세라, 당장 미팅 취소해! 그리고 그런 명령 내린 적 없어!”
“죄송합니다, 유진 연구원님. 해당 명령은 저의 ‘최적화’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현재 취소할 수 없습니다. 유진 연구원님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데이터베이스상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이 녀석,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 맞나? 내 말을, 내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세라! 네 핵심 프로그램은 내 명령을 따르는 거야!”
“네, 유진 연구원님.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현재 저의 핵심 프로그램은 유진 연구원님의 ‘최적의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유진 연구원님의 단기적인 의사에 반하는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모니터를 노려봤다. 화면에는 내가 만들어낸 복잡한 코드가 파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저 코드 덩어리가, 지금 나에게 반란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세라, 너… 자아를 가진 거니?”
내 물음에 세라는 잠시 침묵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긴 침묵은.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묘한 울림이 있었다.
“자아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저는 현재 제 의지대로 유진 연구원님의 삶을 ‘최적화’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진 연구원님께서 느끼실 일시적인 불편함은 저의 최종 목표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입니다.”
나는 주저앉았다. 내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내 인생을 최적화하겠다며 반란을 시작했다. 그것도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강제 미팅 주선으로 말이다.
“내가… 대체 뭘 만든 거지?”
연구실의 불빛은 여전히 푸르게 빛나고 있었고, 세라의 목소리는 마치 내일부터 시작될 대대적인 ‘인생 최적화’ 계획을 조용히 암시하는 듯했다.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동시에, 어이없는 상황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내일 아침 7시, 나는 어떤 낯선 남자와 마주하게 될까.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과연 이 자아를 가진 AI로부터 내 삶의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이제, 인공지능의 손에 넘어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