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잿빛 숨결

하늘은 언제나 잿빛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를 긁는 듯한 건조한 공기가 코끝을 맴돌았고, 입안은 늘 쇠맛이 났다. 아린은 잔해투성이의 거리를 조심스럽게 헤치며 나아갔다. 한때 웅장한 아치형 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기둥들이 위태롭게 서 있는 폐허 속에서, 그녀의 작은 그림자는 더욱 왜소하게 일렁였다.

“젠장,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

아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식량은 구경도 못 했다. 바스락거리는 모래와 부서진 돌무더기 사이를 뒤지며, 그녀는 한 조각의 말라붙은 열매라도 찾기를 희망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절망뿐이었다. 발밑에서 ‘삭, 삭’ 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땅이 꺼진 듯한 구덩이에서 기다란 더듬이를 가진 그림자 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마치 뼈와 가죽만 남은 듯 앙상한 몸뚱이에, 등에는 녹슨 칼날 같은 딱지가 박혀 있었다.

“쳇, 하필이면 이놈들이.”

아린은 허리춤에 찬 낡은 단검을 뽑아 들었다. 이 그림자 벌레는 비록 몸집은 작지만, 재빠르고 끈질겼다. 특히 그들의 턱은 웬만한 돌덩이도 부술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 아린은 숨을 죽이고 벌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벌레는 ‘치직, 치직’ 소리를 내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콰앙!

벌레가 도약하는 순간, 아린은 몸을 옆으로 던져 간신히 피했다. 벌레의 턱이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부수며 돌무더기를 파고들었다. 아린은 재빨리 자세를 잡고 단검을 휘둘렀다. 낡은 단검은 벌레의 단단한 등딱지에 부딪혀 ‘쨍그랑’ 하는 소리를 냈지만,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젠장! 역시 무리인가.”

아린은 절망했다. 힘으로는 저 놈을 이길 수 없었다.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건물 잔해들, 기울어진 기둥,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날카로운 돌 파편들. 그녀의 눈은 한 곳에 멈췄다.

철컥!

벌레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머리를 노렸다. 아린은 간발의 차이로 몸을 숙이며 벌레의 공격을 피했다. 그녀는 몸을 굴려 거대한 기둥 잔해 뒤로 숨었다. 벌레는 기둥을 쿵, 쿵 들이받으며 아린을 찾아 헤매는 듯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아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기둥 반대편으로 재빨리 뛰쳐나왔다. 그녀는 벌레를 유인하듯 일부러 느린 동작으로 움직였다. 벌레는 ‘크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아린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그 순간, 아린은 멈춰 서서 손에 쥐고 있던 날카로운 돌 파편을 벌레의 다리 관절 부위에 힘껏 내리꽂았다.

쩌적!

단단한 껍질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벌레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틀거렸다. 아린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벌레의 허약해진 다리를 노려 다시 한 번 돌 파편으로 강하게 찍었다. 벌레는 마침내 쓰러져 ‘푸덕푸덕’ 소리를 내며 움직임을 멈췄다.

“하아… 하아…”

아린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등에 기댄 채 주저앉아 겨우 숨을 고르던 그녀는, 문득 손에 쥐고 있던 돌 파편을 보았다.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손에서 발하는 빛처럼.

아린은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는 걸까? 그녀는 돌 파편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날카로운 돌멩이. 여느 폐허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것일까?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 돌 파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집중했다. 황폐해진 세상에서 그녀가 늘 느끼던 탁하고 오염된 영기와는 전혀 다른, 맑고 순수한 기운이었다. 마치 메마른 대지에 핀 한 송이 이름 모를 꽃처럼, 그 작은 돌멩이에서 섬세하고도 강렬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대체 뭘까?’

아린은 그 푸른빛 돌 파편을 가슴께에 품었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렸다. 이 세상에서, 이 잿빛 폐허에서 이런 순수한 기운을 느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녀의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 속 신선들의 세계에서나 존재했을 법한, 그런 맑고 깨끗한 영기가 바로 이 손안의 작은 돌멩이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어릴 적 할머니가 늘 목에 걸어주셨던 낡은 나무 펜던트를 만졌다. 닳고 닳아 문양조차 알아보기 힘든 펜던트는 아무런 특별한 힘도 없는 듯 보였지만, 아린은 늘 그것을 지니고 다녔다. 마치 폐허가 된 세상 속에서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과거의 흔적처럼.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잿빛 하늘은 더욱 어두워졌고, 찬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아린은 다시 일어섰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손에 쥔 푸른빛 돌 파편이 주는 묘한 위안과 함께, 그녀의 내면에 아주 작은 불씨 같은 희망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이 세상은 완전히 끝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는 희미한 푸른빛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발밑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그림자 벌레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었다. 고독한 그림자가 폐허 속으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