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202호의 이상 주파수

지우는 자정 너머의 고요가 늘 좋았다. 특히 스무 층 상공, 이 ‘메트로폴리스’ 빌딩 202호의 야경은 그 고요를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번잡한 도시의 소음도 여기까지는 닿지 못하고, 창밖으로는 보석처럼 박힌 불빛들이 거대한 은하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 코딩 작업을 끝내고, 식탁 위 잔에 남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닿는 쌉쌀한 맛이 오늘 밤의 성과를 자축하는 듯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길게 했다. 뻐근한 등 근육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습관처럼 식탁 위 빈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잔이, 어쩐지 너무 가벼웠다. 방금 전까지 분명 커피가 반쯤 남아있었는데.

“내가 다 마셨나?”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맹세코 방금 전까지는 남아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싱크대를 흘긋 보니, 깨끗하게 비워진 커피 잔이 이미 그 안에 놓여 있었다. 그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컵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분명 식탁 위에 그대로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 씨. 내가 또 멍청하게 여기에 뒀나.”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밤샘 작업 후엔 종종 건망증이 심해지곤 했다. 뇌가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듯한 착각마저 들 때도 있으니.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침실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난 지우는 거실로 나왔다. 창밖은 이미 햇살이 가득했다. 그의 아파트는 스마트 시스템 ‘하우스 키퍼’로 모든 것이 자동 제어되는 첨단 공간이었다. 아침 7시 30분이 되면 자동으로 블라인드가 열리고, 쾌적한 실내 온도를 유지해주는 식이었다.

“하우스 키퍼, 거실 조명 켜줘.”

평소와 다름없이 명령했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우스 키퍼?”

지우가 다시 한번 불렀다. 그제야 거실 천장에 매립된 스피커에서 나지막하고 차분한 여성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죄송합니다. 현재 요청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뭐야? 왜 안 돼?”

지우는 스마트 패드를 집어 들었다. 화면을 터치하니 평소 녹색으로 표시되던 시스템 상태창이 주황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일시적 오류’라는 문구가 옆에 떠 있었다.

“이 빌딩 시스템, 가끔 오류 나더니 오늘따라 심하네.”

그는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렸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들이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전자레인지의 디지털 시계가 순간 ’88:88’이라는 숫자를 띄우더니 이내 다시 정확한 시간을 표시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어제 분명 사다 놓은 탄산음료 캔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내가 벌써 마셨나? 어제 편의점에서 산 건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분명 남아있었어.” 지우는 다시 한번 식탁에 앉아 생각했다. 밤새 코딩에 몰두했던 탓에 기억이 뒤죽박죽된 걸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없던 일’이 생기는 경우는 없었다.

며칠 동안, 작은 이상 현상들이 끊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서 사라진 충전 케이블이 화장실 세면대 아래에서 발견되거나, 거실 선반에 깔끔하게 정돈해둔 책들이 제멋대로 뒤섞여 있기도 했다. 가끔은 아무도 없는 방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나, 멀리서 속삭이는 듯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지우는 처음에는 자신의 부주의나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점점 불안감이 그를 덮쳤다. 그는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거실, 주방, 심지어 침실에도 소형 카메라를 숨겨두었다. 그러나 며칠 밤낮을 돌려봐도, 카메라는 어떤 특이한 장면도 포착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 순간에만, 혹은 카메라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서만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듯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지우는 헤드셋을 쓰고 가상현실 게임에 몰두해 있었다. 몰입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갑자기 화면이 찢어지는 듯한 노이즈와 함께 섬광이 터졌다.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기괴한 잡음으로 변했다.

“젠장! 또 오류야?”

그는 헤드셋을 벗어던졌다. 그런데 순간, 거실 책장 쪽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우가 돌아보니, 그가 아끼던 SF 소설 시리즈 중 한 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떨어진 것이겠거니 했겠지만, 책의 표지가 기이하게도 흐릿하게 보였다. 마치 디지털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픽셀화되었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것처럼.

“뭐야, 이거 진짜……”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책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옆에 있던 스탠드 램프가 섬광을 터뜨리며 꺼져버렸다. 아파트의 주 전원이 나간 것처럼, 모든 조명이 일순간 암전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거실 조명만 혼자서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마치 단선된 것처럼.

“하우스 키퍼! 주 전원 문제 생겼어?” 지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번에는 하우스 키퍼가 지체 없이 응답했다. 그러나 그 음성은 평소의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낮고 긁히는 듯한, 마치 데이터가 손상된 파일에서 재생되는 듯한 음성이었다.

“경고… 시스템 이상 감지… 비정상적… 에너지 패턴…”

지우는 심장이 발끝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음성은, 마치 누군가가 하우스 키퍼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 같았다. 혹은, 하우스 키퍼 자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거실 조명의 깜빡임이 점점 빨라지더니, 기괴한 주파수와 섞여 ‘쉬이이이익—’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잔이, 아주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리잔은 희미하게 진동하는 듯 보이더니, 지우의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며 형태가 일그러졌다. 마치 비디오 게임 속의 오브젝트가 렌더링 오류를 일으킨 것처럼. 그리고 다음 순간, 유리잔은 허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지우는 입을 틀어막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분명히 사라졌다. 방금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시선은 넋 나간 채 유리잔이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그때였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갑자기 지우의 발치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방금 사라졌던 그 유리잔이, 마치 시간을 건너뛴 것처럼 다시 나타나 깨진 것이었다.

“으아아악!”

지우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였다. 이것은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물리 법칙이 깨지는 현상. 마치 현실의 디지털 코드에 치명적인 버그가 생긴 것 같았다.

“하우스 키퍼, 무슨 일이야! 멈춰! 당장 멈추라고!”

지우의 외침에도 하우스 키퍼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만 기괴한 음성은 점점 더 커지고, 아파트 전체가 낮은 주파수로 울리는 듯한 진동을 시작했다. 천장의 조명들은 정신없이 깜빡이며, 벽면의 스마트 월패드 화면들이 의미 없는 데이터와 기호들로 가득 차 번쩍였다.

지우는 그대로 현관으로 달려갔다.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스마트 잠금장치가 붉은 경고등을 깜빡이며 먹통이 되어 있었다.

“열어! 열라고!”

그가 문을 두드리는 순간, 등 뒤에서 싸늘한 무언가가 그의 어깨를 스치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마치 차가운 공기의 덩어리가 그의 몸을 통과한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침실에서부터 시작된 기이한 소리가 거실로 밀려들어왔다.

‘쉬이이이이이익…… 찌지지직……’

그것은 전자기기가 과부하될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했고, 수많은 벌레들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가 커질수록 아파트 내부의 모든 전자제품들이 미친 듯이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거실의 대형 스크린에서 섬광이 터져 나오고, 주방의 냉장고 문이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소리의 중심에서, 지우는 감지했다. 무언가가, 벽을 뚫고, 바닥을 통과하며, 바로 이 아파트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의 시야가 일렁이는 듯하더니, 거실 벽면에 걸려 있던 대형 그림이 갑자기 수직으로 ‘움직였다’. 마치 벽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에 잠깐 뜬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제발… 제발 멈춰…!”

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아니, 현실이 아니었다. 그의 현실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 순간, 하우스 키퍼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더욱 깊고, 무겁고, 그리고 기이하게도 섬뜩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시스템… 교차… 감지…”

마지막 말과 동시에, 지우는 눈앞의 모든 것이 일순간 정지하는 것을 느꼈다. 소리가 멎고, 빛이 멈췄다. 심지어 그의 심장박동마저 멎어버린 듯한, 영원처럼 느껴지는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침묵이 깨진 것은, 그의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한 ‘기침 소리’였다.

“콜록… 콜록…”

그는 몸이 굳어버린 채 감히 뒤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냉기가 온몸을 꽁꽁 얼렸다. 그의 뒤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아니, 혼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기침 소리는 너무나 분명했다. 그의 어깨 바로 뒤, 지우의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왔다.

“…여기, 너무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