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빗줄기 사이로 도시의 불빛들이 뭉개져 번졌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등뼈가 닿는 감각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것이 끝났다는 서늘한 안도감만이 폐부를 찔렀다. 쏟아지는 비가 눈물인지 땀인지 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차피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나 강민준의 모든 것이, 이 비처럼 차갑게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민준아, 믿어봐. 내가 누군데? 네 제일 친한 친구잖아.”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다고 믿었던 친구, 이진우의 것이었다. 믿음. 그래, 그 단어가 모든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의 그렁그렁한 눈빛에 속아, 그의 친절한 미소에 취해, 나는 내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이 차가운 바닥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내 연구는 그의 이름으로 발표되었고, 나의 명성은 그의 발판이 되었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은 그의 팔짱을 끼고 나를 비웃었다.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나는 사기꾼이 되었고, 표절범이 되었고, 한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진 루저가 되었다.

“하아… 하…”

피 섞인 침이 쿨럭이며 넘어왔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을 찔렀다. 트럭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환영처럼, 모든 것이 느리게 돌아가는 듯했다. 빗물에 번져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운전사의 경악한 표정이 보였다.

‘끝이다.’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복수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나는 이미 부서져 버린 조각들이었다. 그저, 이 고통이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쾅!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살점이 찢어지는 비명. 머릿속이 새하얗게 불타올랐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둠만이, 나를 집어삼켰다.

***

“으읍… 큭!”

숨이 막혔다. 폐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고통에 눈을 번쩍 떴다. 칙칙한 회색빛 천장. 익숙한 듯 낯선 풍경. 낡은 형광등이 깜빡이며 기분 나쁜 소음을 냈다. 순간,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쿵! 엉덩이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여… 여기는?”

방은 좁고 비좁았다. 책상 위에는 쌓여있는 전공 서적들, 대충 널려 있는 옷가지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아이돌 포스터까지.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마치 어제의 일처럼.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허우적거리며 책상 위를 더듬었다. 낡은 스마트폰. 액정에는 오늘 날짜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20XX년 5월 12일 화요일]

“…거짓말.”

내 눈은 흔들렸다. 그 날짜는, 내가 이진우에게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를 건네주었던 날의 ‘하루 전’이었다. 모든 악몽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내 손이 떨렸다. 침대 옆에 놓인 거울 속에는, 스물두 살의 내가 서 있었다. 다크서클 하나 없이 맑고 순진한 눈빛. 아직 배신과 좌절에 찌들지 않은, 어리숙한 내 모습. 분명히 3년 전의 나였다.

몸을 만져보았다. 찢어졌던 피부도, 부러졌던 뼈도, 그 어떤 상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겪었던 지옥 같은 고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었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건 꿈일 거야.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찧어봤다. 아팠다. 생생한 고통이 현실임을 증명했다.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이진우의 웃는 얼굴. 내가 모든 것을 잃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순간에도, 그는 아마도 승리에 취해 환호하고 있었겠지.

갑자기, 내 온몸을 핏빛 광기가 휘감았다. 꿈이 아니었다. 환각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 비참한 죽음 끝에서, 나는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진우….”

입술 사이로 그의 이름이 찢어지듯 튀어나왔다. 목소리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순수했던 청년의 눈빛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차갑고 서늘한 증오만이 자리 잡았다.

‘그래. 좋다. 아주 잘 됐다.’

이제 나는 안다. 모든 것이 어떻게 흘러갈지. 네가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식으로 내 등을 칠지.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맺혔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복수심만이 모든 감각을 지배했다.

일어나야 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을 막아야 했다. 아니, 막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네가 나에게 안겨준 고통의 백배, 천배를 되갚아줄 테니까.’

나는 옷을 대충 걸치고 방을 나섰다. 퀴퀴한 복도 끝, 공동 휴게실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중 가장 크고 경박한 웃음소리는 단 하나였다. 이진우.

심장이 다시 한번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분노와 증오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차갑고 냉정한 이성이 내 감정을 짓눌렀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저 망할 놈의 목을 조르고 싶지만….’

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표정 근육을 움직여 어색하지만 평온한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아직은 그의 가면을 벗길 때가 아니었다. 아직은, 내 가면을 써야 할 때였다.

휴게실 문을 열자, 이진우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중앙에 앉아 사람들을 선동하듯 떠들고 있었다. 눈과 눈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 민준아! 드디어 일어났냐? 야, 너 어제 코 골아서 아주 죽는 줄 알았다니까?”

능글맞은 말투. 장난스러운 표정.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한 ‘친구’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하하… 미안. 많이 피곤했나 보다.”

내 목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더 침착하게 나왔다. 이진우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어서 와서 좀 앉아봐. 우리 지금 점심 뭐 먹을지 회의 중이었거든.”

그의 눈은 선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빛이 섬뜩한 독사처럼 보였다. 그 선함 뒤에 숨겨진 탐욕과 비열함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그의 옆자리였다. 마치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는 듯. 그가 나를 끌어내릴 심연의 바로 옆자리.

“오늘은 내가 쏜다! 김치찌개 어때? 어제부터 계속 생각났는데.”

이진우는 해맑게 웃으며 주변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모두가 그의 말에 동의하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이진우에게 집중된 틈을 타, 그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이진우. 너는 정말 완벽한 포식자였어.’

친절한 가면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이빨. 사람들을 속이고 조종하는 데 탁월한 재능. 나는 그 모든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조용히 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에는 오늘 날짜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오늘, 그리고 내일. 그 이후의 시간들.

‘이제부터는 네가 내 먹이가 될 차례다.’

입술 끝이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괴물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진우가 내 등 뒤에 꽂아 넣었던 칼을, 그의 심장에 정확히 박아 넣을 준비를 시작했다. 차갑고, 계산적이며,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복수의 서막은, 그렇게 아주 평범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