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계무도대회: 묵룡, 각성
천외천(天外天), 일곱 태양이 불타는 성계의 중심. 우주를 가로지르는 수십 개의 거대 궤도선과 행성 간 도시들 사이, 은하의 심장이 고동치는 듯한 이 장엄한 공간에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바로 천하의 명운을 건 무신(武神)들의 대결장, ‘천룡 경기장’이었다.
수백억 인류의 시선이 집중된 곳. 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홀로그램 비전에는 각 무신구(武神具)의 격투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관객석을 가득 메운 인간과 이종족, 심지어 고대 기계 종족들까지 열광적인 환호성을 토해냈다. 그들의 함성은 은하계의 먼 변방까지 전파되어,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곳은 단순한 경기가 아니었다. 수천 년 역사의 무림 강호(武林江湖)가 우주로 확장되며 빚어낸, 새로운 시대의 ‘성계무도대회(星界武道大會)’였다.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승자는 천하를 제패한다.
“크아아아악! 광무문(狂武門)의 ‘광뢰신(狂雷神)’이 폭주한다!”
비전에서 터져 나오는 해설자의 목소리는 이미 쉬어 있었다. 광활한 아레나 위, 고대 무림의 살법(殺法)을 기반으로 한 맹렬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무신구 ‘광뢰신’이 거대한 손톱으로 바닥을 찢으며 돌진했다. 붉은 섬광을 뿜어내는 기체는 마치 살아있는 맹수 같았다. 그 안에는 광무문의 젊은 대주(代主), 혈기 넘치는 ‘진천풍’이 탑승해 있었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선대부터 이어진 ‘천하제일’의 칭호를 되찾는 것이었다.
진천풍의 광뢰신은 아레나를 종횡무진하며 압도적인 기세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광뢰신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고, 맞으면 행성 요새마저도 부술 것 같은 일격이 쏟아졌다. 그의 상대는 거대하고 화려한 여타 무신구들과는 사뭇 다른, 검은색 외장으로 덮인 낡아 보이는 기체였다.
“묵룡(墨龍)… 저 무신구는 대체 뭐지? 어디 문파의 것인지 기록에도 없는데!”
“저 조종사는 또 뭐야? 표정이 전혀 없잖아! 광뢰신을 상대로 저렇게 버티다니, 괴물이군!”
묵룡. 검은 용이라는 이름처럼, 묵직하고 고풍스러운 외형의 무신구는 광뢰신의 맹렬한 공격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번개처럼 쏟아지는 주먹과 발길질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거나 흘려내며, 마치 태풍 속의 바위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강혁(姜赫)이 앉아 있었다.
강혁은 묵룡의 조종석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내면은 고요한 호수와 같았다. 수백 번, 수천 번을 반복했던 훈련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기체에 흐르는 자신의 기(氣), 묵룡의 강철 골격에 새겨진 고대 무술의 흔적들. 이 모든 것이 강혁의 육신과 영혼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긴장이 아닌, 기운의 흐름을 조절하는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버텨라, 묵룡. 아직은 아니다.*
강혁의 내면에서 깊은 목소리가 울렸다. 이 묵룡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유산이자, 한때 강호를 지배했던 고대 무신(武神)의 혼이 깃든 전설의 기체였다. 그러나 그 전설은 이제 잊혀진 과거가 되어버렸고, 묵룡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고철 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강혁은 알고 있었다. 묵룡의 내면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궁극의 힘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이봐, 쥐새끼! 그깟 방어만으로 언제까지 버틸 셈이냐! 광뢰신의 주먹 맛을 제대로 보여주마!”
진천풍의 거친 외침이 강혁의 귀를 때렸다. 광뢰신의 거대한 팔뚝에서 푸른 전기가 번쩍였다. 진천풍은 ‘광무팔괘장(狂武八卦掌)’의 궁극기인 ‘뇌신쇄파(雷神碎破)’를 시전할 참이었다. 팔괘를 그리며 회전하는 광뢰신의 몸체는 엄청난 속도로 가속했고, 그 끝에서 터져 나오는 주먹은 아레나의 보호막마저 뒤흔들었다.
콰아아아앙!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날아든 주먹이 묵룡의 흉갑을 강타했다. 묵룡은 거대한 충격에 뒤로 밀려났지만, 균형을 잃지 않았다. 강혁은 기체에 흐르는 충격파를 온몸으로 느끼며 더욱 깊이 눈을 감았다.
*때가 왔다.*
강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동자에서 희미한 푸른 빛이 스쳤다. 조종석의 조작 패널이 아닌, 오직 정신과 육체의 연결만으로 묵룡의 모든 회로가 깨어났다. 묵룡의 검은 외장 곳곳에 숨겨져 있던 푸른색 마노(瑪瑙) 장식들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낡고 투박했던 묵룡의 기체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고대의 용이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뭐… 뭐야! 갑자기 기운이…!” 진천풍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강혁은 묵룡의 조종석에서 손을 뻗어 허공을 잡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의 손끝에서 무형의 기운이 묵룡의 팔을 타고 흘러갔다. 묵룡의 거대한 팔이 허공에 원을 그리며 ‘태극권(太極拳)’의 ‘운수(雲手)’ 자세를 취했다. 느릿하면서도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광뢰신이 다시 한번 ‘뇌신쇄파’를 준비하며 돌진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묵룡의 움직임이 달랐다. 묵룡은 진천풍의 공격 방향을 예측하는 듯, 몸을 비틀어 힘을 흘려내며 동시에 광뢰신의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말도 안 돼! 저 속도에… 저렇게 유연하다고?!” 진천풍은 경악했다.
묵룡은 광뢰신의 거대한 몸체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광뢰신의 턱밑으로 파고들었다. 강혁의 입술이 비틀렸다.
“묵룡비공(墨龍飛空), 칠성권(七星拳)!”
강혁의 두 팔이 마치 용의 춤처럼 유려하게 휘둘러졌다. 묵룡의 양 주먹이 맹렬한 속도로 광뢰신의 취약점을 노렸다. 파앙! 파파팡! 파바바박! 일반적인 기체가 낼 수 없는, 오직 무술 고수의 내공이 깃든 주먹만이 낼 수 있는 연타였다. 첫 주먹은 광뢰신의 보호막을 꿰뚫었고, 두 번째는 장갑을 찌그러트렸다. 세 번째, 네 번째… 일곱 번째 주먹이 터져 나갈 때마다 광뢰신의 기체는 엄청난 충격에 휘청거렸다.
콰드드드득!
마지막 주먹이 광뢰신의 동력로 바로 아래를 강타했다. 푸른 번개를 뿜어내던 광뢰신의 움직임이 순간 정지했다. 그리고 이내 전신에서 스파크가 튀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말도 안 돼! 감히 광무문의 광뢰신을…!”
진천풍의 절규가 끝나기도 전에, 묵룡은 다시 한 번 고대의 권법을 펼쳤다. 이번에는 ‘용비승천(龍飛昇天)’의 자세. 거대한 몸체가 회전하며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리고는 낙하하는 힘을 이용해 광뢰신의 정수리를 향해 묵직한 발길질을 날렸다.
퍼억!
그 한 방에 광뢰신의 머리 부분이 통째로 찌그러들었다. 기체는 균형을 잃고 아레나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처참하게 고꾸라졌다. 광뢰신의 몸에서 푸른 전기가 사그라들고, 이내 모든 불빛이 꺼졌다.
장내는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수백억 관중의 시선이 움직임을 멈춘 광뢰신과, 그 옆에 묵묵히 서 있는 검은 무신구 ‘묵룡’에게 꽂혔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폭발과도 같은 환호성이 천룡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우오오오오! 묵룡! 묵룡! 저게 대체 어디 문파의 무신구란 말이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천하제일의 칭호를 노릴 진정한 존재가!”
강혁은 묵룡의 조종석에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승리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 성계무도대회에는 묵룡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숨겨진 힘을 가진 무신구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모두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궁극의 비밀에 닿아 있었다.
아레나의 중앙 비전에는 강혁의 이름이 선명하게 빛났다. ‘강혁, 다음 라운드 진출’.
경기장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VIP 관람석. 그곳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이 강혁의 묵룡을 응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잊혀졌던 묵룡의 기운이… 마침내 깨어났는가.”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의 심연처럼 어두웠다. 노인의 옆에 서 있던 그림자 같은 인물이 낮게 속삭였다.
“예상보다 빠릅니다, 문주(門主). 그 아이는… 위험한 변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노인은 피식 웃었다. 왠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변수라… 재미있지 않은가. 어차피 이 대회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묵룡이라면… 어쩌면 오랜만에 흥미로운 광경을 보여줄지도 모르지.”
그의 시선은 다시 아레나의 묵룡을 향했다. 검은 용은 모든 이의 시선을 받으며 묵묵히 다음 도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혁은 이 거대한 대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터였다. 아버지의 유산을 짊어진 자로서, 묵룡의 진정한 힘을 각성시켜야만 했다.
성계무도대회의 막이, 비로소 제대로 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