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독립적인 단편 소설

우주선 ‘별똥별호’는 고독하고 광대한 심우주를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빛의 속도로 수십 년을 달려야 하는 미지의 영역, 오직 망원경만이 보던 희미한 점들이 이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는 곳. 그곳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선장님, 감지기에 이상 신호가 잡힙니다. 극히 낮은 확률로, 인공 구조물일 가능성이 0.001% 존재합니다.”
함선 AI 에디슨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함교에 울려 퍼졌다. 0.001%. 확률만으로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자’는 말이 먼저 나올 법했지만, 이곳은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심우주였다. 0.001%의 가능성은 곧 100%의 미지로 통했다.

“박진우 항해사, 즉시 좌표 확인 후 최단 거리로 접근 준비해.”
한재혁 선장은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메인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눈은 늘 그랬듯 침착하고 이성적이었지만, 미세하게 번지는 호기심의 빛을 이서아 수석 연구원은 놓치지 않았다.

“선장님, 신중해야 합니다. 미지의 구조물은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무방비로 접근하는 건… 비이성적입니다.”
서아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특유의 냉철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직업은 늘 완벽한 논리와 데이터 분석을 요구했기에, ‘비이성적’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느끼는 불쾌감을 표현하는 최고 수준의 수식어였다.

“이 박사님, 우리는 탐사선이지 회피선이 아닙니다. 인류는 미지의 것을 향해 나아갔을 때 비로소 진보했습니다. 그게 별똥별호의 존재 이유죠.”
재혁은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의 미소는 언제나 서아의 냉철한 분석에 미묘한 균열을 일으켰다. 말도 안 되게, 꽤나 잘생겼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크흠, 크흠. 선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언제든 돌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박진우, 우주 대탐험의 선봉장!”
진우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는 재혁과는 다른 의미로 서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데 특화된 인물이었다. 낙천적이고, 활발하고, 늘 배고팠다.

결국 별똥별호는 미지의 신호원을 향해 움직였다. 몇 시간 후, 그들은 거대한 어둠 속에 떠 있는 ‘그것’을 발견했다. 완벽한 구형에 가까운 형태로, 표면은 은은한 무지갯빛을 띠며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크기는 소형 탐사선만 했다.

“이 박사님, 어떠십니까? 생체 반응은?”
재혁의 물음에 서아는 현미경에 눈을 고정한 채 입술을 비죽였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흔한 탄소 기반 유기물 흔적조차 없어요. 구성 성분도 지구상의 어떤 물질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비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유물은 이따금씩 섬광처럼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은 어쩐지 알 수 없는 온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선장님, 저거 진짜 외계인들의 로맨틱한 선물 아닐까요? 혹시 커플링의 거대 버전이라거나…?”
진우가 엉뚱한 상상을 늘어놓았다.

“박 항해사, 불필요한 상상력은 이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회수 준비. 저것은 인류에게 중요한 발견이 될 겁니다.”
재혁의 지시가 떨어졌다. 유물은 조심스럽게 별똥별호의 격리된 실험실로 옮겨졌다. 서아는 수십 대의 스캐너와 분석 장비를 동원해 유물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날 밤, 별똥별호에는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선장님, 현재 함선 내 승무원들의 비이성적 행동 패턴이 87% 증가했습니다. 원인 불명입니다.”
에디슨의 보고에 재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87%? 구체적인 예를 들어봐, 에디슨.”

“예를 들어, 박진우 항해사는 방금 자신의 슬리퍼에게 ‘너의 부드러움은 마치 내 첫사랑 같아’라고 속삭였습니다. 김미영 기관사님은 자신의 커피잔에 입술 자국을 남기고는 ‘사랑스러운 자식’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이서아 수석 연구원께서는…”
“잠깐! 에디슨, 이 박사님 얘기는 됐어.”
재혁은 서둘러 에디슨의 보고를 막았다. 괜히 서아의 괴상한 행동까지 듣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혁 자신도 무언가 이상했다.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간질거리고,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던 사소한 것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특히… 이서아 수석 연구원의 존재감이 그랬다.

다음 날 아침, 모두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선장님, 저… 잠이 안 와서 어젯밤에 망원경으로 선장님 방을…”
“박 항해사! 그 이상은 듣지 않겠다!”
재혁이 경악하며 진우의 말을 잘랐다. 진우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하지만 선장님의 별자리 지도가 너무 아름다웠는걸요!”라고 덧붙였다.

서아는 실험실에서 유물을 노려보고 있었다. 유물은 여전히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신적인 교란… 의도적으로 감정을 증폭시키는 건가?’
그때, 실험실 문이 열리고 재혁이 들어섰다. 그는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서아의 눈에는 문을 여는 재혁의 모습이 마치 미지의 행성을 탐험하는 용감한 선구자처럼 보였다. 그의 제복은 완벽하게 재단되어 있었고, 그의 짙은 눈동자는 어둠 속의 별처럼 깊었다.

‘아니, 미쳤군. 어젯밤에 제대로 못 자서 헛것을 보고 있어.’
서아는 속으로 자신을 다그쳤지만, 심장은 쿵쾅거렸다.
“이 박사님, 잠은 좀 주무셨습니까?”
재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아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마치 심우주를 가로지르는 달콤한 세레나데처럼 들렸다.

“선… 선장님도요. 오늘따라 선장님의… 그… 어깨선이… 매우… 비대칭적입니다. 완벽하게 비대칭적이에요.”
서아는 횡설수설했다. 칭찬을 하려는데, 뇌의 회로가 엉킨 것 같았다.
재혁은 서아의 엉뚱한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의 눈에는 연구복을 입은 서아의 모습이 마치 별똥별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우아해 보였다. 그의 심장도 터질 듯 뛰었다.

‘이런, 이 박사님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아니, 잠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어제 그 유물 때문인가?’
“이 박사님, 혹시… 저 유물이 뭔가 감정적인 파동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요?”
재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았다.

서아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재혁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아직 정확한 데이터는 없습니다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승무원들의 비이성적 행동 증가는 분명해요. 선장님은 혹시… 어떤 이상 증상을 느끼시나요?”
서아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재혁의 입술에 자꾸만 머물렀다.

재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음… 저도 좀… 그러니까, 이 박사님을 볼 때마다… 제 심장이 마치 추진기가 과열된 것처럼 요동칩니다. 그리고… 이 박사님의 지성미는 마치 우주의 미지의 현상처럼 저를 끌어당깁니다.”
재혁의 솔직한 고백에 서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이성적인 선장의 것이 아닌, 무언가에 홀린 듯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장님! 제게 그런 말을 하시다니… 비과학적입니다! 지성은 그저 정보 처리 능력일 뿐… 하지만… 하지만 선장님의 그 추진기 같은 열정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군요!”
서아도 걷잡을 수 없이 고백을 쏟아냈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본 채 숨을 헐떡였다. 실험실 안은 순식간에 어색하면서도 묘한 로맨틱 기류로 가득 찼다. 유물은 그들의 뒤에서 더욱 강렬한 무지갯빛을 뿜어냈다.

“선장님! 이 박사님! 비상입니다! 함선 내 모든 전자 기기가 오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진우 항해사가 함선 외벽에 하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에디슨의 절규 섞인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터져 나왔다.
“젠장! 유물 때문인가!”
재혁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서아도 안경을 고쳐 쓰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에디슨, 유물의 에너지 패턴을 분석해! 어떤 주파수가 이 혼란을 야기하는지 찾아내!”
재혁의 명령에 에디슨은 즉시 데이터를 쏟아냈다.
“분석 완료. 유물은 특정 정신 감응 주파수를 발산하며, 이 주파수가 강해지면 주변의 전자 기기까지 간섭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역주파수를 발산하여… 간섭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즉시 실행해!”
재혁이 외쳤고, 이내 함선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유물의 빛이 순식간에 희미해지더니, 이내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은은한 상태로 돌아왔다. 함선의 경보음도 멎었다.

그리고 정적.
재혁과 서아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방금 전까지 터져 나오던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어색함만이 남았다.

“음… 이 박사님… 방금 그… 발언들은… 그 유물 때문이었겠죠?”
재혁이 헛기침하며 물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서아도 귀 끝까지 빨개져 있었다.
“물론이죠, 선장님. 그 외계 유물이 일으킨 비이성적인… 정신 교란 현상이었습니다.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재혁의 시선이 예전과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미묘한 잔상을 품고 있었다.
“하하, 그렇겠죠. 저도 제가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재혁은 멋쩍게 웃으며 실험실을 나섰다.

서아는 재혁이 나간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심장이 여전히 아까와 같은 속도로 뛰는 건 착각일까?
그녀는 유물을 응시했다. 무지갯빛이 완전히 사라진, 그저 평범한 쇠붙이 같은 구형의 유물.
‘과연… 그게 정말 전부 유물 때문이었을까?’

며칠 후, 별똥별호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진우는 다시 슬리퍼 대신 우주 식량에 애정을 쏟았고, 기관사는 커피잔 대신 엔진에 사랑을 속삭였다.
재혁과 서아도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했다.

“이 박사님, 다음 목적지 좌표 분석이 끝나면 제게 보고해주십시오.”
재혁이 평소처럼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서아도 평소처럼 냉철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치다 어깨가 스치는 순간, 두 사람의 심장이 동시에 쿵 하고 울렸다.
재혁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멀어져 가는 서아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서아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재혁이 있는 쪽을 향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미소 지었다.

‘젠장, 아직 유물 때문인가?’
서아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불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꽤나 괜찮은 혼란인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유물은, 단순히 감정을 증폭시킨 것이 아니라… 억눌린 진심을 드러내 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할까.
심우주에 떠있는 별똥별호에는, 이제 막 싹을 운 은하계급 로맨스가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