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해 질 녘, 고즈넉한 산골 마을은 저녁 연기로 나른하게 물들고 있었다.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사내는 물결만큼이나 잔잔한 눈빛으로 황혼을 응시했다. 그는 강류(江流). 이름처럼 흐르는 물 같았고, 스치는 바람 같았다. 한때 강호를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존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모습이었다. 낡은 무명옷에 그을린 얼굴, 거친 손은 나무를 패고 밭을 일구는 데 익숙해 보였다.

“오늘은 영 물고기가 없구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강류는 낚싯대를 걷었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불평 한 조각 없었다. 그저 느긋하게 일어나 흙먼지 묻은 바지춤을 털었다.

그때였다.
정적을 깨고 저 멀리 산길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사람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흙먼지 하나 일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 건드리지 않는, 숙련된 고수의 발소리. 강류의 무덤덤했던 눈빛에 일순 섬광이 스쳤으나 이내 다시 가라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내가 강류의 눈앞에 나타났다. 회색 도포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 그의 등 뒤에는 가느다란 검이 매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오랜 세월 강호의 풍파를 겪어온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강류를 보자마자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오랜만이십니다, 강 대협.”

강류는 그를 알았다. 아니, 정확히는 과거의 자신과 연관된 인물이었다. 무림맹의 집행부 일원, 진무학(陳武學).

“대협이라니. 이제 나는 그저 늙은 어부일 뿐이오.”

강류는 담담하게 말했다. 진무학은 그의 말을 듣고도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어찌 대협 같은 어부가 있겠습니까. 저는 대협의 힘이 필요한 자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나는 이미 강호와는 인연을 끊은 지 오래요. 더 이상 나를 찾아올 이유도, 명분도 없을 텐데.”

강류는 발길을 돌리려 했다. 산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무학은 한 발 더 다가서며 강류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눈빛은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협, 천하의 명운이 걸린 일입니다. 무림맹은 더 이상 홀로 이 짐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오직 대협과 같은 분들의 힘만이 이 위기를 막을 수 있습니다.”

강류는 진무학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천하의 명운이라니. 과거에도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때마다 피바람이 불었고, 수많은 이들이 쓰러져 갔다. 그리고 자신 또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얻고 이 산속으로 도피했었다.

“무슨 일이오?”

결국 강류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강류가 알던 진무학은 좀처럼 허투루 말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가 이토록 절박한 얼굴을 하고 찾아올 정도라면, 필시 보통 일이 아닐 터였다.

진무학은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북방의 흑마교(黑魔敎)가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흑마공은 과거보다 더욱 강력해졌고, 어둠의 세력은 갈수록 기세를 더하고 있습니다. 무림맹은 몇 차례 토벌대를 보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은 듯합니다.”

흑마교. 강류의 뇌리에 어둠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과거 강호를 공포에 떨게 했던 사악한 집단. 그들이 다시 일어섰단 말인가.

“그래서… 무림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청룡대회(靑龍大會)입니다.”

진무학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강류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 청룡대회. 무림의 최고수들을 한자리에 모아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을 통해 무림지존(武林至尊)을 선발하는, 수백 년 만에 한 번 열린다는 전설적인 대회. 과거에는 전쟁을 막고, 분열된 강호를 통합하기 위해 열렸다고 전해지는 대회였다.

“청룡대회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설마…”

“그렇습니다, 대협. 흑마교의 위협이 단순히 무림의 문제가 아니라, 이 강산 전체의 명운을 좌우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습니다. 각 문파와 세가는 물론, 황실과도 논의하여 청룡대회를 다시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진무학은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고급 비단에 정교하게 수놓아진 문양, 그리고 봉인된 붉은 인장은 그 권위를 짐작게 했다.

“이것은 무림맹과 구파일방, 오대세가가 공동으로 발송한 초청장입니다. 그리고… 흑마교에 맞설 무림지존을 선발할 지상 최대의 무술 대회. 오직 천하제일의 고수만이, 그들의 흑마기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강류는 말없이 두루마리를 받았다. 서늘한 비단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초청장을 펼치자, 붓으로 힘 있게 쓰여진 글자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청룡대회에 초대합니다. 천하의 명운을 건 싸움에 동참할 지존을 찾습니다.」

그 아래에는 대회의 목적과 참가 자격, 그리고 대회 장소와 일시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 강류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이제 늙고 지쳤소. 더 이상 그런 거창한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소.”

강류는 두루마리를 접어 진무학에게 돌려주려 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강호에 대한 환멸과 과거의 아픔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다시 그 피비린내 나는 아귀다툼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진무학은 그의 손을 잡지 않고 굳건히 서 있었다.

“대협. 천하에는 대협과 같은 고수가 많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대협이 유일할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영광을 떠나서라도, 이 강산의 백성들을 위해… 한 번만 더 검을 들어 주십시오.”

진무학의 목소리에는 애원과 함께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단호함이 섞여 있었다. 강류는 진무학의 눈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절박함뿐만 아니라, 진정한 강호인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강류의 시선이 다시 개울가로 향했다.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낚시. 그러나 물속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평화로운 풍경이, 흑마교의 그림자에 의해 위협받고 있었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강류의 머릿속을 스쳤다. 함께 싸웠던 동료들의 얼굴,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랐던 수많은 백성들의 눈빛. 그들의 염원이 강류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대회는 언제 어디서 열리오?”

강류의 나지막한 질문에 진무학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초청장에 모든 것이 적혀 있습니다. 대략 보름 후, 낙양(洛陽)의 무림맹 본가에서 예선이 시작됩니다.”

강류는 다시 초청장을 펴들었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확고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오. 그리고… 나의 검을 찾아야겠군.”

강류의 시선은 산 너머로 길게 드리워진 석양을 향했다. 붉게 물든 하늘은 마치 피로 물든 강호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맹수처럼,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강 대협. 천하의 백성들이 대협의 용기에 감사할 것입니다.”

진무학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강류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느긋하지 않았다. 강호의 부름에 응답하듯, 강하고 묵직한 걸음이었다.

깊은 산속, 은거했던 전설적인 고수, 강류. 그는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하의 명운을 건 청룡대회를 향해. 그의 검이 다시 한번 강호를 가를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