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새벽 공기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창문 너머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내 눈꺼풀은 밤새 한 점 잠도 허락하지 않았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스마트폰 액정이 미미한 빛을 내뿜었다. 20XX년 X월 X일. 그 지옥 같은 날들이 시작되기 불과 몇 달 전의 과거.

“돌아왔어.”

목소리는 쉬어 있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붙잡았던 마지막 이성,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되감아진 시간. 어제의 악몽이 생생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차가운 길바닥에 나동그라져 마지막 숨을 내쉬던 순간, 귀에 박혔던 뉴스 앵커의 목소리. ‘지후 씨의 전 공동 대표, 기준 씨, 혁신적인 기술로 업계의 주목….’ 그 날카로운 비수 같은 문장들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천장, 낡았지만 편안했던 내 아파트.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에서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곰팡이 냄새 대신 은은한 섬유유연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이 모든 것이 진짜였다. 다시 얻은 기회. 혹은, 되갚아 줄 기회.

손을 뻗어 아직 멍울이 남아있는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그때의 배신감은 단순히 ‘친구에게 당했다’는 허울 좋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열정, 내 꿈,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쳐 일궈낸 사업. 그것을 단숨에 짓밟고,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양 찬탈해버린 기준. 그 과정에서 나를 사기꾼으로 만들고, 나락으로 떨어뜨린 치밀함은 악마조차 경탄할 수준이었다.

“그래, 기준아. 그때는 내가 순진했지.”

나는 피식 웃었다. 씁쓸함보다는 차가운 결기가 더 강하게 솟아올랐다. 그때의 나는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의 제안에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고, 그가 내미는 모든 계약서에 맹목적으로 서명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빈털터리, 사회적 매장, 그리고 외로운 죽음.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기준이 어떤 카드를 꺼낼지, 어떤 말로 나를 현혹할지, 심지어 그의 작은 버릇과 숨겨진 욕망까지도. 이것은 불공평한 싸움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이번엔, 내가 학살자가 될 차례였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켰다. 로그인 화면을 응시하는 내 눈동자에 섬뜩할 정도의 냉기가 감돌았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기준이 나를 속이기 위해 심어둔 초기 단계의 덫들이었다. 아마도 지금쯤 그는 슬슬 그 덫의 미끼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예상대로, 수십 개의 미확인 메시지 중 기준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있는 메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기준: 지후야, 우리 아이디어 대박 터질 것 같아!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중요한 얘긴데.]

나는 메시지를 클릭하지 않고 그대로 삭제했다. 그가 보낼 법한 모든 내용을 머릿속으로 재생했다. 아마 ‘이번 투자 건이 성사되면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는 식의 감언이설이 주를 이룰 것이다. 과거의 나는 그 말에 홀려 이성을 잃었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은, 내 복수의 지도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작은 점에 불과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문을 열었다. 낡은 작업복과 평범한 면 티셔츠들. 한때는 이것들이 나의 전부였고, 순수한 열정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지후는 알고 있었다. 이 소박함이 결국 얼마나 큰 칼날이 되어 돌아올지.

“준비해야지.”

중얼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 입던 것보다 단정하고,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느낌을 주는 복장이었다. 오늘 내가 갈 곳은, 과거의 내가 절대로 가지 않았던 곳이었다. 기준의 뒤를 캐고, 그의 약점을 찾아내고, 그의 추악한 민낯을 폭로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곳.

오래전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우연히 기준의 수상한 행동을 목격했던 한 장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작은 소매치기 사건.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단순한 절도가 아닌, 기준이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 벌인 한 가지의 큰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현장을 다시 찾아가, 당시의 CCTV 영상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면…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충분했다.

아파트 문을 나섰다. 복도 끝,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딘가 익숙한 향수 냄새.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지후야! 아침부터 어디가? 내가 부르려고 했는데, 우린 역시 통하는구나?”

기준이었다.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는 그늘 한 점 없었다. 순수한 미소. 그러나 내 눈에는 그 미소 뒤에 도사린 악의가 투명하게 비쳤다. 녀석은 아직 모를 것이다. 자신이 누구와 마주하고 있는지를.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기준아. 오랜만이네. 응, 잠깐 볼일이 있어서.”

기준은 내 어깨를 툭 치며 친근하게 굴었다. “볼일? 중요한 일이야? 설마 나랑 상관있는 건 아니겠지? 우리 사업 말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나의 사업이라니. 피식,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사업은 결국 기준의 것이 되었고, 나는 그 사업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글쎄, 너랑도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의미심장하게 답하자 기준의 얼굴에서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이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하하, 지후는 농담도 잘해. 아무튼, 오늘 저녁에 내가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그래. 우리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리는 나란히 탑승했다. 기준은 계속해서 사업 구상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의 눈은 반짝였고,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넘쳤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듯한 자신감. 과거의 나는 그 모습에 매료되어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의 모든 몸짓과 표정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의 자신감은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의 확신은 나를 이용하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녀석의 눈은 빛나고 있었지만, 그 빛은 이글거리는 불꽃이 아니라 나를 태워버릴 차가운 불꽃이었다.

“기준아.”

내가 그의 말을 끊고 나지막이 불렀다. 기준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봤다.

“응? 왜, 지후야?”

“우리 사업,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 질문에 기준의 미소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왼쪽 위로 향했다.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그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았다.

“당연하지!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지후 너도 나를 믿잖아?” 그는 다시 웃으며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물론이지. 그런데 혹시, 예전에 네가 말했던 그 ‘비밀 프로젝트’는 아직도 진행 중인 거야? 그건 왜 그렇게 비밀스럽게 진행했던 건지 아직도 궁금하네.”

기준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가 애써 웃는 얼굴 뒤에 숨기려던 당혹감이 역력했다. ‘비밀 프로젝트’는 기준이 나 몰래 진행했던,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끈 핵심적인 꼼수 중 하나였다. 그때의 나는 그 질문을 할 용기가 없었다. 아니,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기준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아, 그거? 에이, 별거 아니었어. 그냥 잠깐 아이디어 구상해본 건데, 생각보다 별로라서 접었어. 우리 메인 사업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낫지.”

그의 거짓말이 내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거짓말을 할 때, 녀석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1층에서 ‘띵’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래. 그렇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섰다.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럼 이따 저녁에 보자, 지후야!”

그는 여전히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그를 등진 채 걸어가며, 입꼬리를 올렸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였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어제 밤새 뒤져 찾아낸, 오래된 뉴스 기사 하나가 떠 있었다. 10년 전, 기준이 한 작은 회사에서 횡령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 기사 속에는 그의 탐욕의 씨앗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싹트고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담겨 있었다.

“기준아, 네가 말했지? 우리 사업은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내 중얼거림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복수는 차갑게 식혀 먹는 요리랬지. 하지만, 나는 뜨겁게 달궈서 먹을 거야. 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

차갑고도 잔혹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는 새로운 복수의 무대에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