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첫 만남은 언제나 최악이었다

“아, 진짜 망할 커피 머신!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낡아빠진 에스프레소 머신을 퍽퍽 때리며 잔뜩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부터 삐걱거리더니 기어코 손님에게 엉뚱한 라떼를 내보내고 말았다. 하필이면 매일 아침 정확히 8시 5분, 카푸치노를 마셔야만 직성이 풀리는 옆 건물 세무사 아저씨에게! 덕분에 그의 하얀 셔츠에는 거품 반, 우유 반의 예술적인 라떼 아트를 수놓고 말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백 번은 한 것 같다.

“하은 씨, 괜찮아요?”

주방에서 갓 구운 스콘 냄새를 풍기며 나온 선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을 리가. 오늘 아침부터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알람은 안 울리고, 출근길에는 똥 밟고, 겨우 도착한 카페에서는 머신이 사고 치고… 이게 다 무슨 조화야!

“선배, 저 그냥 오늘 죽을 운명인가 봐요. 그냥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웹툰이나 그릴래요….”

내가 영혼 없이 중얼거렸다. 웹툰 작가를 꿈꾸며 휴학까지 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낡은 카페에서 최저 시급 받고 일하며, 밤에는 간신히 몇 컷 끄적이는 게 전부였다. *젠장, 재능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 시간만 있으면 내가 이 빌어먹을 현실 따위…!*

“하은 씨, 힘내요! 퇴근하고 맥주 한잔할까요?”

선배의 위로에도 내 기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악!”

“하은 씨!”

몸을 돌리다 미처 보지 못한 물웅덩이에 발이 미끄러졌다. 균형을 잃고 뒤로 나자빠지려는 찰나, 눈앞에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낯선 이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뭐야?”

나를 잡아챈 손은 이상하리만큼 차가웠다. 마치 얼음장 같았다. 뻣뻣하게 굳은 자세로 그와 마주 보았다. 그는 새까만 슈트 차림에 완벽하게 정돈된 머리칼, 그리고 새하얗게 질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비현실적인 외모였다. 그리고 그의 눈. 무감정한 듯 차분했지만, 묘하게 붉은 기가 돌았다.

그는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듯 놓아주더니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훑어봤다.

“이봐요, 사람 잡아 놓고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댁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요!”
아니, 죽을 뻔한 건 내가 미끄러져서지만,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이리저리 던지는 건 또 뭐람?

그는 내 말을 무시하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예정된 시간이 아닌데… 착오인가.”

“예정된 시간? 무슨 소리예요? 혹시 저 스토커예요? 죄송한데 저 남자친구 있어요!”
*없지만 일단 질러놓고 보자.*

그는 내 허세 섞인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다. 잠시 착각했다. 당신은 아직 때가 아니다.”

“때가 아니면 뭔데요! 아저씨 이상한 사람이에요? 경찰 부를까요?”
나는 잔뜩 경계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어라, 저 잘생긴 얼굴이 찌푸려지니 살짝 무서워지는데?*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때를 담당하는 자다.”

“내 때를 담당해요? 내 뭘 담당하는데요? 카페 청소? 설마 진상 손님 담당은 아니겠죠?”

내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그는 한숨처럼 낮은 소리를 내뱉었다.

“이봐요, 당신. 나는 당신의….”

그가 말을 끝맺으려 할 때였다.

“제하 씨! 여기였군! 어르신 놓치겠어!”

갑자기 카페 문이 활짝 열리며 또 다른 새까만 슈트 차림의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그 역시 묘하게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아까 그 남자, 그러니까 ‘제하’ 씨를 다급하게 끌어당겼다.

“어르신이 지금 저기 길 건너 병원 응급실로 가고 계신다니까? 늦으면 큰일 나! 신참이라 아직 멀었구만!”

“하지만… 이 여자는.” 제하 씨가 나를 다시 쳐다봤다. 붉은 기가 돌던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 여자는 나중에 처리해! 빨리 가자고!”

“나중에 뭘 처리해요! 아저씨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혹시 장기…!”

내가 소리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순식간에 카페를 빠져나갔다.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는 모습에 나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가 뒤늦게 달려와 내 어깨를 흔들었다.

“하은 씨, 괜찮아요? 아까 그 사람들은 누구예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몰라요….”

나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카페 문이 닫힌 곳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비현실적인 남자와 그의 동료. 나중에 ‘처리’하겠다니. *무슨 소리야, 도대체?*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내가 미끄러졌던 물웅덩이 옆에 떨어져 있는, 반짝이는 검은색 명함 한 장. 얇고 단단한 종이 위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붓글씨체로 단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승.**

나는 명함을 주워 들었다. 차가웠던 그의 손처럼, 명함도 섬뜩하리만치 차가웠다. 등골에 오싹한 한기가 스쳤다.

*아까 그 남자, 김제하… 설마 진짜 이세계에서 온 사람인가? 아니, 그보다… 나중에 처리하겠다는 건 무슨 뜻인데?*

오늘 하루가 끝날 때까지도, 그 명함과 김제하라는 남자의 얼굴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 창백한 피부, 그리고 묘하게 붉던 눈동자.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던, 세상에 없는 것 같은 서늘한 향기.*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뒤척였다. 이상하게도 아까 그 남자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설마… 내가 꿈에서 본 건 아니겠지?*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카페에 도착했다. 불안한 마음에 어제 일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제 그들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저기요… 문은 아직 안 열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어제 그 남자였다. 김제하.

그는 어제와 똑같은 검은 슈트 차림으로, 손에는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쪽이… 저를 담당하시는 분이었죠?”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뭐라고? 담당?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장미를 내밀었다. 붉은 장미가 그의 창백한 손과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죄송하다. 어제 업무에 착오가 있었다. 당신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하지만 당신과 나는 엮여버렸다.”

“엮여… 엮이다니요? 무슨 개똥 같은 소리예요!”

그의 말에 나는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그는 태연한 얼굴로 장미를 내 손에 쥐여주며, 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듯이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저승사자 김제하. 오늘부터 당신의… 운명을 담당하게 됐다.”

그의 말은 마치 차가운 강물처럼 내 심장을 휘감았다.
*저승사자? 운명을 담당?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 이대로 죽는 거야?*
내 눈앞이 아찔해졌다.

“뭐…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