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가운 새벽 공기가 유리창 너머로 아파트 단지의 불빛을 희미하게 흔들고 있었다. 지혜는 늦은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현관문을 닫았다. 묵직한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길게 울렸다 사라졌다. 시계는 이미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익숙한 공간인데도 어딘가 싸늘하고 낯선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누군가 침묵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등 뒤로 오싹한 한기가 스쳤지만, 지혜는 피곤함 탓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아… 피곤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신발을 벗었다. 거실의 작은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두고 들어왔기에, 집안은 대부분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익숙한 암흑이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주방 쪽에서 희미한 ‘똑, 똑’ 하는 물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소리였다.

‘설마. 분명 잠갔는데.’

지혜는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피곤해서 헛것을 들었거나, 잠그는 것을 깜빡했을 수도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개수대 위로 수도꼭지는 멀쩡히 잠겨 있었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은 없었다.

“……?”

지혜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냈다. 컵에 물을 따르려는데, 컵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컵이 없었다. 분명 어제 저녁에 설거지까지 다 마치고 제자리에 두었던, 아끼던 머그컵이었다.

“뭐야, 어디 갔지?”

지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컵은 엉뚱하게도 식탁 모서리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누가 건드린 것처럼. 지혜는 자신이 술에 취했거나, 혹은 과로로 정신이 몽롱한 탓이라 생각했다.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누가 여기를 들어오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어딘가 불안하게 떨렸다.

생수를 마신 후, 지혜는 겨우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묘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방금 전 컵 사건과, 수도꼭지 소리, 그리고 등골을 스치던 한기까지.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거실 스탠드 불빛이 침실 문틈으로 희미하게 스며들어왔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잠들고 싶었지만, 왠지 오늘은 불을 끄기가 망설여졌다.

‘그냥 켜놓을까…?’

그 순간이었다.

거실 쪽에서 ‘스스슥’ 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엇인가가 바닥을 긁으며 움직이는 듯한 소리.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혜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지? 바람 소리인가?’

하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스스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깝게, 그리고 좀 더 선명하게. 마치 누군가 맨발로 마루 위를 끄는 듯한 소리였다.

지혜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피곤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분명 이 아파트 어딘가, 이 공간 어딘가에…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있었다.

‘설마… 도둑?’

덜컥 겁이 났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도둑이라면 이렇게 대놓고 소리를 내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느껴지는 기척은 사람의 그것과는 달랐다. 무언가 차갑고, 습한, 그리고… 묘하게 축축한 기운이었다.

지혜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자신의 귓속에서 울리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를 듣기 힘들 정도였다.

그때였다. 거실의 스탠드 불빛이 ‘팟’ 하고 한 번 깜빡이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흐읍!”

지혜는 작게 비명을 삼켰다. 온 세상이 암흑으로 변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마저도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침실은 완벽한 어둠 속에 잠겼다.

‘고장났나? 어제 멀쩡했는데…’

아니, 고장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침실 문이, 천천히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혜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을 떠도 어둠뿐이니 감는 것이나 뜨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굳어버린 듯했다. 공포가 온몸을 마비시켰다.

문이 완전히 열리는 소리가 들린 후, 침실 안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들어서는 듯한 둔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뚜벅…’

맨발이었다. 차가운 마루바닥을 맨발로 걷는 듯한 소리였다. 분명한 발소리.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더 지혜의 침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혜는 이를 악물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제발 아무것도 아니기를. 꿈이기를. 피곤해서 헛것을 보고 듣는 것이기를.

발소리는 지혜의 침대 바로 옆에서 멈췄다.

‘스읍… 스읍…’

귓가에 희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축축하고, 어딘가 차가운, 그리고 썩은 내가 섞인 듯한 숨결이었다. 마치 자신의 머리맡에 누군가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

아니, 기분이 아니었다.

침대 매트리스가 미세하게 푹 하고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 침대에 걸터앉은 것처럼.

“흐으윽…!”

지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눈을 번쩍 떴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침대 끝에 앉은 듯한 무게감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있으면… 안 돼…’

차가운 기운이 뺨을 스쳤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얼굴에 손을 뻗어 만지는 것처럼. 그 손길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뼈만 남은 듯 거칠었다.

지혜는 전신에 소름이 돋아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커녕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몸을 뒤척이며 그 손길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때였다.

‘툭.’

침대 옆에 있던 협탁 위, 어제 저녁 무심코 던져놓았던 지혜의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툭’ 하는 둔탁한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소리와 동시에 침대 매트리스를 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숨소리도, 차가운 손길도,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혜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겨우겨우 손을 더듬어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자, 밝은 빛이 침실을 비췄다.

텅 비어 있었다.

침대 끝도, 방안도, 그 누구도 없었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져 있던 스마트폰 화면 속, 액정에 금이 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금 간 액정 위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검붉은 손자국 하나가 찍혀 있었다.

손가락 다섯 개. 길고 가느다란. 마치 오래된 피가 말라붙은 것 같은.

지혜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갈랐다.

그녀의 눈에 공포가 가득 찼다. 이젠 알 수 있었다.

이 아파트는 더 이상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아니, 무언가가 그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밤을 지배하고 있었다.

창밖의 도시 불빛이 아득하게 멀어져 가는 밤, 지혜는 자신의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다음 날의 새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이한 힘이 그녀의 스마트폰을 부쉈듯이, 그녀의 일상도 산산조각 내어버릴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