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세이 호 – 심연의 눈동자 (최신화)
차가운 금속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박서연 수석 과학자의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오디세이 호’의 미미한 진동마저도 오늘은 거대한 미지의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들렸다. 격리실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히자, 묵직한 침묵이 그녀를 짓눌렀다. 안쪽은 마치 우주 그 자체를 압축해 놓은 듯 어둡고 고요했다.
유물은 그곳에 있었다. 방사선 차폐막과 자기장 봉쇄막으로 겹겹이 보호된 강화유리 너머, 검은 벨벳 천이 깔린 받침대 위에 놓인 그것은 마치 빛을 삼키는 구멍 같았다. 며칠 전, 외행성계 바깥의 성간 물질 구름 속에서 포착된 비정상적인 에너지 신호를 따라가다 발견한 미지의 조형물. 처음 발견되었을 때의 격렬한 전율은 이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바뀌어 승무원 모두의 신경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직도 아무것도 분석이 안 되는 겁니까, 박 박사?”
등 뒤에서 들려오는 최민호 보안팀장의 목소리에 서연은 어깨를 살짝 움찔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그의 그림자가 유물과 서연 사이에 드리워져 있었다.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는 언제나처럼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네, 팀장님. 외부 물질 구성은 전혀 파악되지 않고, 내부는 말할 것도 없죠. 레이더도, 분광 분석기도, 하다못해 열화상 센서조차 무용지물입니다. 마치…… 모든 파장을 흡수하는 것 같아요.”
서연은 유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낮게 속삭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데이터 패드는 빈 화면을 띄운 채 무력하게 깜빡거릴 뿐이었다. 유물은 어떠한 빛도 반사하지 않았고, 그 어떤 전자파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저 검고, 매끄럽고, 완벽한 구형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구형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모르게 기분 나쁜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보는 각도에 따라 그 형태가 미세하게 왜곡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단 한 가지, 변함없는 건 이것뿐입니다.”
서연이 데이터 패드를 들어 올리자, 흐릿하게 나마 숫자 하나가 떠올랐다. ‘36.5℃’.
“놀랍게도 항상 이 온도를 유지합니다. 우주 공간의 극저온 속에서도, 함선의 격리실 내부의 안정된 온도 속에서도, 단 1도도 변하지 않아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체온처럼.”
민호는 유물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미심쩍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요? 돌덩이가?”
“돌덩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저희가 아는 그 어떤 물질적 특성과도 부합하지 않아요. 중력은 미미하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내부에는 분명히 무언가 들어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서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유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보았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 너머로 유물의 미묘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어제부터 미약한 진동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해서 거의 인지하기 힘들 정도지만, 분명히 내부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민호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
“꿈틀거린다고요? 박 박사, 너무 피로하신 거 아닙니까?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피로 문제가 아닙니다, 팀장님. 이건 직감 같은 거예요. 이 유물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하고 있어요. 혹은…… 우리가 무언가를 느끼게 하고 있죠.”
그때, 서연의 헤드셋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박 서연 박사, 최민호 팀장. 함교로 집합.
이정훈 선장의 호출이었다. 둘은 무언의 시선 교환 후 격리실을 나섰다.
함교는 평소보다 더 긴장감이 흘렀다. 이정훈 선장은 늘 그랬듯이 함교 중앙 사령석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굳게 다문 입술과 미세하게 떨리는 손에서 그의 심상치 않은 심경이 읽혔다. 맞은편 항해석에는 김은지 항해사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홀로그램 데이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두 왔나.”
정훈 선장의 목소리는 낮고 무게 있었다.
“은지 항해사, 브리핑을 시작해라.”
은지는 손짓 한 번으로 홀로그램 스크린을 조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함선 시스템의 실시간 모니터링 데이터였다.
“보고드리겠습니다. 지난 24시간 동안 오디세이 호 전역에서 미세한 시스템 오류가 17회 발생했습니다. 통신 두절 3건, 함내 조명 시스템 불안정 5건, 그리고… 생명 유지 장치 일시 정지 2건입니다.”
서연과 민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생명 유지 장치 일시 정지라는 말에 민호는 반사적으로 허리에 찬 권총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이게 다 그 유물 때문입니까?” 민호가 날카롭게 물었다.
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류 발생 시점과 유물의 진동 패턴이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유물의 진동이 강해질 때마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고, 특히 생명 유지 장치 일시 정지는 진동의 피크 지점에서 발생했습니다.”
“말도 안 돼. 유물이 에너지를 내뿜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파장도 감지되지 않는데 어떻게 시스템에 영향을 줍니까?” 서연이 반문했다.
“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 박사님. 하지만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또한, 승무원들의 정신 상태에도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
은지는 다시 홀로그램 스크린을 전환했다. 이제는 승무원들의 정신 건강 데이터가 보였다. 몇몇 승무원의 스트레스 지수와 불안 지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나 있었다. 특히 유물 격리실 근처에서 근무하는 인원들의 수치가 압도적이었다.
“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승무원이 셋, 악몽에 시달리는 승무원이 다섯입니다. 특히 기관실의 이병장이 오늘 새벽,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며 격렬한 히스테리 증세를 보였습니다. 지금은 의무실에 격리되어 있습니다.”
정훈 선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함께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이 모든 게 그 유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 은지 항해사?”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장님. 마치 유물이 함선 전체를…… 감염시키는 것 같습니다.”
민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럼 답은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파괴해야 합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미지의 물체를 함선 안에 둘 수는 없어요! 당장 사출시켜야 합니다.”
“파괴는 불가능합니다, 팀장님.” 서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직접 모든 종류의 절단기를 사용해봤지만, 표면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설령 파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파괴는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대로 손 놓고 당하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승무원들이 정신이상이 오고, 생명 유지 장치가 정지하고! 다음엔 대체 뭐가 일어날지 누가 압니까!” 민호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함교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훈 선장은 침묵한 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이 순간에도 꾸준히 깜빡이는 유물의 진동 그래프에 고정되어 있었다. 진동의 폭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커지고 있었다.
“진동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은지의 목소리도 한층 더 경직되었다. “에너지 방출은 여전히 없지만, 내부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어요.”
바로 그때, 함교 전체에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신 시스템을 통해 들어온,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절규였다.
“메인 연구실! 메인 연구실에서 비상 신호입니다!” 은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민호는 이미 문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젠장! 내가 분명히 통제 인원 외에는 유물에 접근 금지라고 경고했을 텐데!”
정훈 선장은 차분하게, 그러나 굳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박 박사, 은지 항해사, 지금 즉시 민호 팀장을 지원하고 상황을 보고해라! 나는 함선 제어 시스템을 점검한다!”
세 사람은 동시에 함교를 박차고 나갔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불안한 침묵을 찢었다. 메인 연구실로 향하는 통로 중간,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지 조명이 번쩍거리며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그 짧은 암전의 순간마다, 마치 우주의 깊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기어 나오는 듯한 섬뜩한 착각이 그들의 심장을 조여왔다.
메인 연구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안쪽은 아수라장이었다. 연구용 장비들이 바닥에 뒹굴고, 테이블은 뒤집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유물의 격리실 바로 앞이었다.
“강 박사!” 서연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메인 연구실의 강 박사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로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고, 두 눈은 초점이 없었다. 그의 손에는 유물 분석에 사용되던 고성능 탐사 로봇의 부품이 쥐여 있었다. 부품의 끝은 날카롭게 꺾여 있었다.
“강 박사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민호가 권총을 겨눈 채 다가갔다.
강 박사는 민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공허한 눈으로 유물 격리실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꺾인 로봇 부품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더니, 천천히 힘을 주었다.
“안 돼!” 서연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민호의 제지가 더 빨랐다. 민호는 강 박사를 강하게 밀쳐내며 그의 손에서 부품을 빼앗았다. 강 박사는 무력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유물 격리실 내부의 강화유리가 굉음을 내며 깨지기 시작했다. 유리가 금이 가고, 갈라지는 소리는 마치 비명처럼 공간을 울렸다.
“유리벽이!” 은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봉쇄막이… 뚫리고 있습니다!”
유물의 검은 표면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 섬광은 짧았지만, 너무나 강렬해서 모두의 눈을 멀게 할 지경이었다. 빛이 사라진 후, 유물은 이제 더 이상 검은 구형이 아니었다. 표면에는 미세한 틈들이 생겨나 있었고, 그 틈 사이로 붉고 어두운 빛이 맥동하듯 흘러나왔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그 빛은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그리고 그 맥동이 일어날 때마다, 연구실 전체의 전등이 깜빡이며 공포스러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강화유리에 마지막 금이 쩍 하고 갈라지는 순간, 유물은 마치 숨을 쉬듯 크게 한 번 부풀어 올랐다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유물의 표면에 붉은 빛을 머금은 수천 개의 작은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그 눈동자들은 연구실에 서 있는 세 사람을 향해 동시에 일제히 고정되었다.
알 수 없는 고대의 공포가 그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듯했다. 그 눈동자들이 너무나도 차갑고, 너무나도 깊어서, 그들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연의 귓가에 들려왔다.
— *우리가 왔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언어가 아니었다. 그저 어떤 ‘생각’이 그녀의 뇌리에 직접적으로 박히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었다.
유물의 봉쇄막이 완전히 파열하며 파편들이 튀어 올랐다. 붉은 빛의 맥동이 더욱 강해졌다. 그 안에서, 수천 개의 눈동자들이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디세이 호는 이제 심연의 눈동자에 갇히게 된 것이다. 다음은 무엇인가? 다음 비명은 누구의 차례인가?
**오디세이 호 – 심연의 눈동자, 다음 화에 계속.**
